-
-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숲으로 온통 뒤덮인 작은 마을 보발의 1999년 12월, 아홉살 난 레미가 사라진다. 아니 레미는 죽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레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실종된 거라고 믿었다. 바로 옆집,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열두살 난 앙투안에 의해 레미는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앙투안은 친구들과 함께 숲에 오두막을 지으며 놀곤 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은 숲에서 노는 것보다는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것에 더 취미를 붙였고 그 무리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앙투안은 자기만의 비밀 오두막을 만들어보겠다며 숲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금발버리를 한 에밀리를 데려오고 싶은 응큼한 계획도 있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레미네집 개인 윌리를 오두막으로 올릴 도르래도 만들어놓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는 차에 치였고, 그렇게 가쁜 숨을 내쉬는 윌리를 본 레미의 아버지는 앙투안의 눈앞에서 가차없이 윌리에게 총을 쏜다. 그리고는 윌리를 폐기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던져버린다. 앙투안은 충격을 받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해서 자기 오두막을 때려부수며 화를 삭이고 있었는데 저만치에서 레미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급작스럽게 분노가 치민 앙투안은 작대기를 집어들고 레미를 후려쳤고, 작고 어린 레미는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렇게 앙투안은 열두살에 살인자가 되었다.
앙투안은 레미를 숲속 어딘가에 밀어넣고 집으로 돌아오고, 마을은 이미 사라져버린 어린 레미를 찾는 일로 시끌벅적하다. 앙투안은 누군가 자신이 한 일을 알아챌까봐, 경찰이 자신을 찾아와서 레미를 왜 죽였느냐고 할까봐 걱정하는 마음과 이 끝도 없는 불안이 차라리 빨리 끝나버리도록 누군가 레미의 시신을 얼른 찾아내고, 레미를 죽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이혼 후 자신만을 위해 힘들게 살고 있는 엄마를 더 이상 힘들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온힘을 다해 불안감을 감춘다. 레미를 찾는 수색대가 결성되고,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는 등 사건은 시시각각 다르게 변하며 앙투안을 압박한다. 레미의 사건은 갑작스럽게 마을을 뒤덮은 수해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마을 전체가 피해자가 되어버렸고, 그로 인한 인명피해도 있었기에 이제 레미나 레미의 가족만이 피해자는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꼬마 아이의 실종, 에 대한 반응이라기엔 과한 앙투안의 상태에서 앙투안의 엄마도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녀는 입을 닫고,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되도록이면 고향마을로 돌아오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앙투안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 고향마을에서 의사노릇을 하게 된다.
앙투안은 고의로 레미를 살해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화가 난 상태였고, 그저 작대기를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게 치명타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죄책감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편하게 살지 못했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다시 그 작은 마을로 돌아와 봉사하며 죄를 갚으며 살고 있다, 고 말할 수도 있다. 레미의 사건을 앙투안이나 앙투안의 엄마 입장에서 보자면 그가 짊어진 죄책감 때문에 한번도 편히 살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가 우러러보기까지 하던 열두살 형을 향해 다가갔다가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레미나 그런 레미를 잃어버린 채 평생을 살아야 했던 레미 부모의 입장에서도 죄책감으로 무거워진 앙투안의 삶이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앙투안의 사건은 고의가 이니기 때문에 잔인한 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다음을 계획하는 앙투안을 보면서 좀 무서웠다. 작품 속에서 앙투안은 12살이라고 했다. 아마도 우리 나이로는 초등학교 6학년이거나 중학교 1학년일 수 있을 것이다. 축 늘어진 레미를 보고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숨길 수 있을지 걱정했고, 자신이 시신을 숨기는 동안 잃어버렸을 증거물에 대해 걱정했으며, 자신이 레미를 본 마지막 목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계획했고, 결국 조여오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게 될거라면 차라리 마을을 떠나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짐을 싸기까지 했다. 의외의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수해로 마을이 휩쓸려버려 레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걸 보고 안심했다. 물론 극심한 불안감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약장의 약들을 털어넣기도 했지만 살아났다.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먹지도 못하고 결국엔 약을 먹은 앙투안을 본 엄마는 무언가를 알아챘고 왕진을 온 의사에게는 상한 고기를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앙투안이 앓아 누운 사이 앙투안이 싸놓은 가방 속의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앙투안과 엄마는 공범인 셈이다. 점점 더 잔인해지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오래 전 함무라비 법전에 나온 것처럼 누굴 죽이면 당연히 죽인 사람도 죽여버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으로 극단적인 처벌을 할 수도 없거니와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가장 원론적인 의문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살인자가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고 해서 그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혹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죽인다면 나는 또 그 누군가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는데 그 다음은 어찌 되는가, 하는.
이 작품을 읽고 지금 로랑 고데의 <세상의 마지막 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의 시작도 어린 소년이 갑작스럽게 날아든 총탄에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태 읽었던 어떤 책보다 가장 강렬하고도 선명한 어머니의 분노를 보았다. 그녀는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들의 무덤에 세운 비석까지도 저주했다. 레미를 잃은 데스메트 부인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마도 나도 누군가의 어미이기 때문일테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앙투안의 어미는 또 달랐겠지 싶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게다가 순간순간 앙투안의 나이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죽인 한 사람의 인생에 깜빡이도 없이 등장하는 사건의 그림자들이 내 가슴마저도 조여오게 만들었다. 급박한 스릴러도 아닌데 읽는 내내 애간장이 타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그 마지막 순간에 나도 큰 한숨을 내쉬게 만든 잘 짜여진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