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휴대전화도 특정하게 머무르는 주소도 없이 떠도는 전직 헌병 출신의 잭 리처는 뉴욕의 새벽 2시 지하철 안에서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한 여자를 마주하게 된다.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은 리처 자신을 포함해 모두 6명, 다른 이들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일터로 가는 길인지 모르겠으나 대체적으로 피곤해보이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면 리처의 눈에 띈 그녀는 자살폭탄 테러범이 가진 11가지의 특징을 모조리 가지고 있다. 날씨와 걸맞지 않게 두껍고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크고 검은 패딩, 무언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작은 소리로 계속 웅얼거리며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리처는 만약 그녀가 자살폭탄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에서 그녀를 멈춰야 할지, 어떻게 멈춰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그녀 앞에 다가섰을 때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한 정의 총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눴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총을 발사한다. 테러범이 아니어서 큰 인명피해가 없었던 점 혹은 리처 자신을 향해 발사한 것이 아닌 점을 감안한다면 최소한의 피해인가 싶기도 하지만 195센티의 거구인 자신을 경찰로 소개하자 압박을 받은 그녀가 목표를 바꿔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닌지 어느 정도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죽음을 목격한 같은 칸의 승객들 중 한명은 사라지고 경찰 이외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여러 무리들이 달려들어 리처가 그녀로부터 무언가를 건네받은 것은 아닌지를 확인하려 든다. 그러자 리처의 레이다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고, 리처는 사건의 한가운데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를 구분할 수 있는 12가지 행동지침을 이스라엘 군이 작성하여 배포했다고 하는데 리처의 눈에 띈 그녀의 모습은 실제로 정확히 테러범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최악의 상황 때문에 공포에 질린 채 어찌할 바 모르던 상태였을 뿐이다. 그녀가 들고 있던 총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자신을 해하기 위해서였는지 지하철 6호선 안에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태였으나 리처의 등장으로 그녀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고 폭발했다. 국가의 정부기관, 사설조사관등이 리처에게 접근했고, 죽은 그녀가 남겼다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했고 그 와중에 지금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치인의 이름까지 수면으로 올라왔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위험할 것 같고, 복잡한 사건에 얽힐 것 같다, 하는 생각 따위는 리처에게 통하지 않는다. 궁금하니 찾아가서 물어보고, 안 알려준다고 하면 머리를 굴려 알아낼 방법을 강구해낸다. 왜? 잭 리처니까.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체인의 약한 부분' 혹은 '맹점'이 있는데 그들의 가장 가깝고도 애정하는 사람이거나 심지어는 동물('존 윅'은 자기 애완견이 죽어서 그 모든 일을 벌였지 않은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잭 리처에겐 그런 것이 없으니 어지간하면 적당히 하고 돌아서라고 권하는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움직인다. 물론 대충 움직여도 팔이든 다리든, 코뼈든 뭉개놓을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그렇겠지만.
테러리스트를 처치하거나 정부기관이 숨기고 싶어하는 일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류의 영화들을 보고 뭔가 대단한 걸 배우거나 얻을 수 있지 않은 것처럼 잭 리처의 이야기도 그런 것보다는 한편의 신나는 액션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가 머릿 속에서 리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스타일이라서 더 그렇다. 거구의 몸을 한 리처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악당들의 팔을 꺾고,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정치적으로 대단한 인물이든 아니든 간에 기죽지 않으며 자기가 할일을 해내고는 툭툭 털고 떠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적이다. 꽃미남보다는 가장 헐리우드적인 마초남의 전형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