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첫 책: 애초에 ‘우먼스플레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제목은 불쾌감과 현실감이라는 느낌을 모두 준다. 불쾌감은 나를 알지도 못하는 ‘그 성별’이 날 가르치려 하는 미지의 상황에서 느낄 법한 감정이다. 동시에, 현실감은 ‘맨스플레인 현상’은 특정 미디어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닌 전세계 여성들의 주변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느낀 데서 오는 감정이다.책을 읽으면서 몇 개월 전 처음 악플을 받았을 때가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페미니즘 문학을 접한 후의 소회를 적었을 당시, 나는 그 어떤 남자도 무자비하게 저격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 누군가는 내게 여성비하적 발언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 상황이 과연 내가 페미니즘 문학 리뷰를 공개적인 공간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일인 걸까? 장담하건대 내 성별이 남자였다면, 그 댓글을 올린 사람의 입장은 윷놀이 윷을 뒤집듯 달라졌을 것이다(나는 악플을 확인한 후 바로 고객센터에 신고글을 넣었고, 댓글을 단 그 사람은 향후 모니터링 조치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프닝이 일단락 되었다).저자 레베카 솔닛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무한 긍정’의 메시지만 전하지는 않는다. 객관적 근거 자료들과 아나 떼레사 페르난데스의 작품들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앞으로의 페미니즘의 방향성 등을 묵묵히 설명해줄 뿐. 오래된 일기장에 묻어있는 먼지처럼 고일대로 고여버린 남성적 가치관과 내가 형성해온 가치관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한줄평으로 이 책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무래도 작가의 여성관을 지식적으로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입사만큼 중요한 퇴사퇴사하기 직전부터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인터뷰집이라 읽는 데 딱히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인터뷰어의 메인 질문은 자금을 마련해두고 퇴사를 했는지, 퇴사 후 후회는 없었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한지 등이었다. 결론적으로 퇴사 역시 입사만큼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근래 겪은 나의 퇴사는 마음 가득 상실감을 안겨준 퇴사였다. 하지만 이 책이 스스로에게 너무 자책 말라는 메세지를 남겨주었다. 나름 어떤 확신감에 퇴사라는 카드를 꺼내든 거였는데, 한편으로는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기에 결국 이 책을 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러 매체에서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너무 가볍게 퇴사를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퇴사를 단지 무겁게만 느끼지 말라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한 회사에 몸 담그다 내뺄 때(?) 최대한 신중히 여기되 나간다고 모두가 욜로 라이프를 즐기는 건 아니라는,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게 되었다.
3월의 첫 책: 코지모의 뚝심, 자기 해방의 시작이전에 초반부까지 읽었다가 하차한 책을 퇴사한 이후에 다시 꺼내들었다. 요즘 같았으면(라떼는 말이야 뉘앙스는 아님..) 한 ‘똘끼’ 하는구나 라는 얘기를 들었을 법한 주인공 코지모는 열두 살의 어느 날 달팽이 요리를 먹지 않겠다는 선포를 내던진 후 나무 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작품 해설 속에서 이야기하는 코지모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상이라고 묘사하는데, 사실 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애초에 이렇게까지 자신만의 길을 잘 개척하는 인물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중 가장 지배적인 건 위협적인 가시밭길로 발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의 용기를 코지모는 주저함 없이 표출했다는 생각이었다. 다소 보수적인 귀족 가문의 문화에 불만이 있던 그가 나무에 올라가 다시는 땅에 내려오지 않은 행위는 단순히 한 가정의 자녀가 반항의 일환으로 불러온 결과가 아니었다. 나무에서 의식주 해결하기, 각종 범죄를 일삼는 집단과 친목을 다지기, 열렬한 사랑을 해보기, 학문적으로 깊게 파고들기 등 코지모의 인생 2막은 바로 나무 위에서 시작된 것이다(하기야 열두 살에 올라갔으니 인생 2막 치곤 좀 이른 감이 있긴 하다).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전작 <반쪼가리 자작> 이후에 접한 신선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쓰인 당대 배경을 더 디테일하게 파악한 후에 읽었더라면 코지모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더 긍정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2020년 1월의 첫 책: 이 세상 부모들보다 성숙한 아이에 대한 단상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이 문장이 긍정적으로 성립하는 가정이 몇이나 될까? 풀리지 않을 듯한 의문점을 달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NC 센터의 어린 아이들은 ‘참부모’를 만나기 위해 페인트를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좋은 프리 포스터를 만나 센터를 퇴소하고, 제노301과 같은 또다른 누군가는 수차례 페인트를 시도하다가 일정 나이가 되면 자동 퇴소하기도 한다. 프리 포스터를 만나 행복에 겨워하는 아이들을 향해 비판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다. 다만, 이야기의 가장 큰 교훈은 모든 관계의 중심인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라는 걸 체감한다. 그 이후에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제노301이 엄마가 아기를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으로 다 큰 아이가 뒤늦게 엄마, 아빠를 찾는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 머리가 띵했다(이쯤 되면 애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니야?). 아이도,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법. 그가 만난 하나와 해오름과의 관계처럼 부모라는 경계를 넘어 가장 친한 친구로 가는 길은 만들기 나름이다.박 가디를 향한 아이들의 마음은 ‘짠내 폭발’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주고 있기에 세상의 따뜻한 구석을 느낄 수 있다. 이토록 숙성된 공간에서 어른들보다 위대한 생각을 하는 아이들, 청소년의 미래가 눈부시게 밝다. 부디 지금처럼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현실을 견뎌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