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의 전설을 넘어 - 당비생각 03
마르코스 외 지음, 박정훈 엮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노무현에 대해 비판적인 것과는 별개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브라질의 룰라에 대해선 일종에 동경에 가까운 목소리가 있었다. 필자나 나나, 적어도 중남미의 정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볼땐 어처구니없는 말씀들이었다. 하긴 도대체 한국의 정치세력이라는 곳들이 세계의 문제에 대해 진중한 고민을 언제 했었으랴.

또... 정치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적어도 2차원 이상의 좌표를 가지는 입체적인 것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작년이었던가, 재작년이었던가 분명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진보누리에 등장했던 영국 친구들의 이념적 좌표찾기라는 것을 꽤 많은 사람들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념적 좌표라는 것에 대한 테스트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동일한 문제나 사건'에 대해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당위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같은 번역자에 의해 소개되었던 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에 대한 세간을 평가를 다시 되돌아보면,  좌파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단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동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코스의 신화깨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던 책임에도 '세계관의 혼란'이 생긴다니. 사실 사람에 대한 지나친 기대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는 주범이라는 일상에서의 경험칙들과도 비슷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선거 슬로건중에 하나는 브라질의 룰라가 썼었던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그 정책과정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에게 호소했었을때 싸늘한 반박이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본다면... 정작 똑같이 왼쪽 깜빡이 켜고도 우회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룰라나 차베스의 상황에 대한 냉정한 분석은 물론, 그에 따른 평가와 반성 그리고 녹녹치 않은 신자유주의라는 장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차베스와 룰라를 보면서 노무현이 생각났던 것도 그 때문이고... 노무현 이후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정말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이들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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