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끌기
제임스 모로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수송중이던 원유 유출사고를 일으킨 후 죽어가는 수 많은 바다 생명체들을 보면서 죄의식에 시달리던 선장 앞에 어느날 갑자기 천사가 나타납니다. 자신의 죄를 씻겠다고 성당안의 분수에서 목욕하던 그 앞에 나타난 천사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돌아가셨다고, 배를 줄테니 하느님의 시신을 북극까지 끌고 가서 매장해드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시작부터 만만찮은 이 소설을 두고 시카고 트리뷴은 이렇게 평가를 했다더군요. "살만 루시디에게 이런 기막한 풍자실력에 있었다면 고생 없이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이 말이 뭐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신이 사람과 같은 형상(그러나 절라 큰, 3200m가 그 키니까... ^^;;)을 하고 적도 부분으로 떨어졌다는 상황으로 놓고보자면 케빈 스미스의 <도그마>에 필적하는 불경함입니다만... 그 발칙한 영화가 주던 재미에 상응하면서도 좀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돌아가셨다는 이 초유의 사태를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를 관찰하는 재미가 <도그마>가 주던 재미보다 쫌 더 낫습니다. 천사들끼리 하느님의 무덤을 어떻게 꾸밀가를 가지고 논란을 벌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짐작하실 수 있죠? ^^;;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한 페미니스트 과학자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하느님의 시신을 가라앉히겠다는 음모를 꾸미고, '절대적 가치'역시 죽었다고 믿어버린 선원들은 선상반란을 일으켜 지들끼리 죽이고 성관계를 맺으며 별로 풍족하지도 않은 음식들을 낭비해버리죠. 하느님의 신경세포를 추출해 줄기세포로 뭐 어떻게 해보겠다고 생각했던 바티칸은(황구라 박사가 그리워지더군요. ^^) 신경세포 추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자 흔적을 없애버리겠다고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유조선을 끌고가 화장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메시지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뭐 페미니스트 과학자가 표류하던 자신을 구해준 배의 임무를 훼방놓겠다고 나서는 이유도 하느님의 시신에 거대한 남근이 있는걸 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잘했다'는 한 마디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라파엘의 협박(?)도 마찬가지구요. 부자관계에서... 아들이 항상 욕망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의 인정이잖아요...?

좋은 아버지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도, 그냥 추석 명절에 재미있는 소설 한 권을 읽고싶은 분들에게도 부담없이 추천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상은 그냥 받는게 아니라는거, 확실하게 입증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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