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들의 대한민국 2를 읽으며 민족주의-근대-폭력이라는 키워드를 이해하기 위한 대장정에 도전해보겠다는 야무진 소망을 품었던 바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현재는 미약하다. 겨우 두 권의 책을 읽고, 속도와 열정은 연료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하여간.. 

대충 그런 고로 주워든 책 중 하나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옛 운동권에서 주요 텍스트 중 하나로 읽혔다는 건 익히 들어왔고, 알제리의 유명한 식민투사였다는 것, 저항투쟁에서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유명하다는 것, 이 정도가 나의 얄팍한 사전지식이었다. 치열한 식민지 해방투쟁의 전사이자 이론가였던 그가 나의 관심 키워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에 대해 궁금해진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최근 아는 분이 위의 책을 읽었던 얘기를 했던 것이 다시 한번 그의 오래된 책을 기억 속에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던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신탁을 받은 예언자의 중얼거림 같은 그의 글귀 속에서 헤매고 있다가 어제밤이던가, 5장 "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을 읽었다. 그의 기록은, 덕지덕지 눅은 정보와 생각들, 경험이라는 이름의 관성 따위들로 무장된 나의 가슴과 대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 장은, "알제리 민중의 민족해방전쟁에서 비롯된 정신질환"에 관해 다룬다. 정신과 의사였던 파농은 알제리의 정신병원에서 한동안 근무했는데, 그 기간동안의 경험이 이와 같은 기록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글은 식민지의 상황에서 원주민인 알제리인 혹은 이주민인 프랑스인에게 나타나는 정신병리적 현상들, 그 발생원인(배경), 상담과정 등을 담담하게 기록한 것이다. 말이 '담담'이지, 정말 끔찍한 상황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를 '담담'하게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일일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를테면 알제리인을 상대로 고문하는 것이 일인 경찰에 대한 기록을 보자. 이 경찰은 자신의 가족들을 학대하기 시작하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병원을 찾아온 환자이다. "정부의 신사 분들은 노상 알제리에는 전쟁이 없다면서 법의 무력, 즉 경찰력이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알제리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죠.."

그의 증언을 보면 고문'기술자'라는 표현에 어떤 과장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건 아주 지루한 일이에요... 문제는 과연 말하게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그런 일에서 성공하려면 똑똑해야 돼요. 언제 손을 대고 언제 손을 빼는지 잘 알아야 해요. 또 그 일에 걸맞는 솜씨도 필요하죠. 충분히 기를 꺾어놓았으면 때릴 필요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일해야 해요.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는 자기가 잘 아니까..."

이 환자는 결국 그의 직업을 계속해나간다. 그는 파농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도, 행동에 전혀 문제가 없이, 그리고 완벽하게 평온한 심정으로 알제리 애국자들을 계속 고문할 수는 없겠느냐고." 

환자들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고문 당한 경우, 고문을 가한 경우, 성공을 꿈꾸는 알제리인으로 살아가던 경우, 프랑스인을 살해하고 자책에 시달리는 알제리 전사, 급우를 살해한 알제리 소년, 알제리인을 고문학살하는 아버지를 둔 딸, 난민들, 세뇌를 겪은 지식인 등등. 

그것이 알제리인에 대한 것이든, 혹은 프랑스인에 대한 것이든, 결론은 마찬가지다. 현 상황, 인간성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그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일그러뜨리는 식민화 현실을 멈추지 않으면 치료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환자는 끔찍한 속도로 늘어나며, 매우 운이 좋게 파농과 같은 의사로부터 치료받을 기회를 얻는 경우에도 치료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결국 파농은 병원을 그만두고 전면적으로 민족해방전선의 활동에 투신한다. 

의사로서 파농의 경험은, 식민지라는 상황 자체가 질병이며 그 안에 있는 이들을 가해자/피해자의 위치를 막론하고 병들게 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겪는 피해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섣부른 추측인지 모르겠으나, 이 질병과 싸우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피지배인들을 탈식민화하는 치유적 행위로 파악하고 폭력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농에 대한 오해를 나의 어설픈 설명으로 부추기는 것 같아서 강조하지만, 파농이 폭력 그 자체를 찬양하거나 무분별한 (식민종주국, 이주민을 향한) 폭력을 합리화한 사람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오히려, 식민지에서의 정신질환에 대한 그의 기록을 보건데, 그만큼이나 폭력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터이다.  

곪은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외과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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