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박노자씨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를 읽고 있다. 편하게 쓴 좋은 글, 이라는 가벼운-오만방자한 생각으로 읽기 생각했는데, 많은 화두를 안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정리를 할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 중 특히 인상이 깊은 부분에 대해서 써본다.  

"폭력에 대한 또 하나의 역사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칼럼 (p.132-142)은 한국사회에서 발견되는 폭력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짚어보고 있다. 기형, 전근대, 식민성 등의 수사를 의례 달고다니는 이 폭력성은 그 어법상 정상-근대-서구의 안티테제로 가정된다. 박노자씨가 의문을 제기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말 그런가? 우리사회의 폭력성은 (서구적) 근대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인가?  

그는 폭력성의 주된 줄기가 아직 척결되지 못한 전근대의 잔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근대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식민지 권력과 역대 독재 정권들이 한국 사회에서 많은 전근대적인 잔재들을 인위적으로 존속시켰다는 것도 물론 사실이고, 한국의 독특한 사회적 폭력 구조에 전근대적인 요소가 보인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데 한국 특유의 사회적 폭력인 연령 차별이 일제식으로 왜곡된 유교적인 전통을 배경으로 삼는 것은 틀림없다.

(중략)

인류 폭력의 역사를 보면, 역시 서구적 근대의 위치는 트결하다. 전근대적 계급사회들이 폭력을 구사하지 못한 것이 아니지만, 그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는 근대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전근대적 국가들은 세계 패권은 꿈도 꾸지 못했고 향촌 지배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국민 개병제라는, 모든 주민들을 국가 폭력의 공범으로 만드는 제도는, 어느 전근대적 사회에서도 실시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계급사회의 국가 그 자체는 폭력이지만, 오늘과 같은 형태의 폭력의 진정한 역사적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서구의 근대의 출발부터 생각해야 한다. (p.134-135)  

그가 전근대의 폭력과 근대의 폭력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엄밀한 논술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근대/근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암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할수록 너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스스로 그가 글에서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채울만큼 내공이 깊지도 못하다. 하지만 글의 여러 문장들을 통해 추측해보건데, 일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근대성이란, 근대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보편 인권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정립되기 이전의 사회 성격들로, 동등한 개인을 상정하지 않은 사회 제도, 관습 등을 가리킨다. 전근대적 폭력은 이러한 사회성격에서 발로한, 차등화된 개인/집단에 대한 폭력이다. 그에 반해 근대적 폭력은, 근대 이전에는 정립되지 않았던 개별의 '독립된' 자아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주체와 타자를 구분짓고, 타자를 통제/개발/폭력 등 주체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폭력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정리는 듬성하게 이가 나간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과연 전근대는 항상 통합적인 세계관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나? 물론 초기 원시사회에서 시작된 인류의 세계관의 발전을 흔히 어린 아이의 세계관의 발전과 비슷한 궤도를 밟는 것으로 본다. 갓난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계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배고픔을 느끼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와 충격을 느끼다가 점차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게 되고 좀더 나이가 들면 자아정체감을 확립하게 된다. 원시사회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석을 한다. 그들은 자신과 세계가 초자연적(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다) 의지의 그물 속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 이전이 '전근대'라는 이름으로 묶일만큼 동질적인 무언가인지, 다시 말해, '근대'가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공부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다시 원글을 들여다보자면, 박노자씨는 근대적 폭력을 '도덕적 명분이 필요없는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박노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글 도입부에 소개한 문부식씨의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준비한다. 문부식는 그의 저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 (삼인, 2002)을 통해 1980년대 일부 운동권의 폭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비록 조선일보가 '운동권의 반성문' 운운하면서 서평을 겸한 인터뷰를 짜집기해 기사화한 것으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그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운동권의 폭력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기껏, 학생운동을 처음 접했을 때 '폭력시위'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을 '방어적 폭력'의 불가피함에 대한 이해로 전환시켰던 것, 그리고 좀더 시간이 지나서는 그 '불가피함'에 대해 의문이 생기고, 그것이 (NL) 운동권의 가부장적-전근대적- 성격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게 된 것 정도이다. 지금도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위 와중의 폭력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가 독점하는 물리적 폭력과 그에 대한 합의의 조작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박노자의 '성찰'에 따르면, 운동권의 폭력성을 단순히 전근대성으로서 가부장적 성격과 연관시켜 생각한 것은 내 이해 정도가 상당히 부족한 탓인 듯하다.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자. 진보계는 그 입장 전개의 논리상 결국 폭력의 적극적인 부정으로 올 수 박에 없다면, 왜 문부식의 이번 성찰의 대상이 된 1980년대의 일부 운동권의 폭력성은 그토록 심했는가? 두 가지 답을 내릴 수 있다. 하나는, 1980년대의 운동권 학생들이 근대국가가 대량 생산한 근대 국민이라는 사실에서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다.  

(중략)  

물론 이와 같은 근대 교육은 (신)식민성-주변부성의 냄새가 짙지만, 원칙적으로 행동과 생각의 규율화는 서구 근대의 원류에 속한다. (신)식민성-일제식 기합, 구타, 인간적 존엄성의 지속적 모독-이 훨씬 더 심한 근대적 군대에까지 갔다 오면, 한국형 규율적 인간의 형성이 완성을 보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들이 반자본, 반외세 투쟁을 스탈린주의식으로 쉽게 하나의 근대적인 전쟁으로 생각하고 적군을 대하는 방법이나 아군을 통제하는 방법을 학교, 군대의 경험대로 정한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의 국가 독점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논리인 스탈린주의는, 그들이 이미 익힌 한국형 근대와 잘 맞아떨어진다.  

(중략)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980년대 세대는 인권과 개인 생명의 중요성을 배울 만한 통로가 있었는가? 그들의 생활환경-특히 군대나 학교 같은 주요 사회화 기관-에 하등의 인권적 요소가 없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일이다. 프락치를 대하는 데 안기부의 신문 절차를 알게 모르게 베끼게 된 그들은, 안기부가 대표하는 신식민지적 주변부 근대국가의 정신적 포로였다. 그러나 이것은 개개인을 문책할 일이라기보다는 한국사에서 벌어진 대형 비극의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p.140-141)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박노자의 의견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렇다면 탈식민을 위한 투쟁에 동원되는 모든 폭력을 그와 같이 서구적 근대에 물든 것으로, 불합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노자의 이러한 논리는 간디의 주장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 간디의 경우, 힌두-인도인의 정신과 역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서구적 근대와 동치되는 폭력을 거부한 것이었다. 간디야 종교인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난 간디의 말씀이 무지하게 맘에 안 들었다), 박노자 역시 어떤 종류의 대항적 폭력을 사용하든지 간에 그 투쟁의 대상과 똑같이 (서구적) 근대의 덫에 걸린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박노자 역시 종교인이긴 하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전투적 성격은 탐구해볼만한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우리의 모습을 바꾸려 합니다. 교리를 말하는 무슬림들을 한낮 광신도나 바보로 비쳐지게 만들려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복종하여 움직이기만 한다면 경제자원이나 군사자치에 관한 논란은 끝난다고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그 비난은 우리가 받을 겁니다. 자유무역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과 현대적인 삶을 연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신성과 속세는 따로 놓인 것이 아닙니다. 코란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니다. 코란에는 통치자와 피지배자는 있어도, 코란에는 종교적 규율을 철폐하고 얻는 신식 삶의 고통은 치유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규제 철폐, 개인주의화, 경제개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세에서의 고통은 자유주의로는 절대 치유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방은 파멸할 것입니다 (시리아나, 무슬림 지도자의 설교) "  

기독교 교리 어쩌구 하는 부분만 제외하면 이 말씀은 간디가 "힌두 스와라지"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던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은 비폭력, 다른 한편은 현대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폭력을 향해 달려간다. 물론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사유와 사람들을 향해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와 친교를 보였던 간디와 기독교를 뿌리로 갖는 서구와 숙명적으로 대결해왔던 중동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차이는 근대에 대한 언설만으로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예증하는 것이 아닐까?  

내공이 부족해 여러가지 물음표만 던지고 글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박노자 글의 마지막 부분과 지승호의 문부식 인터뷰 일부를 달면서 글을 마쳐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1980년대 세대와 많이 달라졌다고 해서 암흑기에 투쟁의 횃불을 들었던 그들을 반드시 질책해야만 하는가? 그들의 실수도, 그들의 고민도, 그들의 성찰도 결국 지금과 같은 비폭력화 추세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그들이 폭력성 경험은 우리를 비폭력주의자로 만든 하나의 요소다. [조선일보]는 그 특유의 악질적 성격대로 문부식의 고백을 마치 전향서인 양 꾸며놓았지만, 폭력을 거부한 세대는 결코 전향한 것이 아니다. 투쟁이 성숙했을 뿐이다. (p.142)"  

-지승호 - 문학평론가 김명인씨가 “새삼 내 안의 폭력을 거론하며 문제제기하는 것은 2000년대의 인간으로서 80년대의 인간을 몰아붙이고, 학대하는 일”이라고 했는데요.  

=문부식 - 비유적 표현이 과장되어 있지만, 김명인씨의 견해일 수 있다고 봅니다. 80년대 운동은 비공개, 소수였고, 대중운동세대로 넘어오면서 넓어지고, 얇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동이 대중화되면서 앎과 실천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운동주체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구요.  

김명인씨는 과잉된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하게 따져봐야할 부분이 있는 발언이고, 경청할 수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단, 이제와서 이 문제를 제기햐냐고 하는 것은 비판하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성실함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지승호 - 홍윤기 교수가 “적지 않은 이들이 언어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이들에게 폭력은 자기에게 남은 자기 표현의 마지막 매체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부식 - 전적으로 맞는 말이고, 멋진 말이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정당한 폭력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자기 성찰을 해야한다는 거죠. 바우닌의 ‘전쟁의 슬픔’에 보면 북베트남 민족해방투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에 길들여져 있다가 전쟁이 끝나는 날, 적들의 여성 시체를 발로 차고,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가피하게 쇠파이프를 들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릅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성찰’이 없는 경우 무뎌집니다. 프락치로 오인한 사람을 운동의 이름으로 죽이는 경우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합니다. 수천명을 죽이고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과 다른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안의 폭력을 반성해야지만, 국가의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는 말에서 제대로에 방점이 찍혀야지, 순서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의 폭력을 반성한 다음에야 국가의 폭력을 성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단체제하에서 한국의 국가 권력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자행한 극악한 폭력은 물론이고, 자신이 행사해 온 모든 폭력을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은 그에 비례하는 다른 형태의 저항의 폭력을 낳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폭력은 상호적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폭력이 연쇄와 순환의 법칙을 따르게 될 때 폭력은 반성의 계기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폭력에 대해 숨기기는 대항폭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저 역시 국가폭력과 저항폭력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섞는 것은 반대하지만, 폭력에 대한 성찰은 동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지승호 -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국가폭력에 대응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공격일 수도 있다는 비판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문부식 - 군사정권의 폭력행사가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현실의 정세를 변화시켜야 하는 절박한 요구가 존재하던 시기에 운동진영의 과잉된 폭력들을 감추는 것은 상황 논리상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 지난 지금도 과장된 명분에 의해 뒷받침되고 갈수록 관성화되어 갔던 지난 시기의 폭력들과 그것이 낳은 결과들에 대한 성찰이 지체되고 있는 현상은 더 이상 옹호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적과 싸우면서 닮아가는 것, 우리 안의 파시즘을 비판하자는 것은 우리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국가폭력을 보자는 것이고, 국가의 광기가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찰해보자는 겁니다. 국가폭력 비판하기 바빠서 못한다는 것은 과장된 것입니다. 상주도 매일 울기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국가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쪽의 폭력에 둔감할 수는 있더도, 자기 자신의 폭력과 허위에 진정으로 엄격한 자가 현실의 불의한 권력에 무관심한 경우는 없습니다.  

-지승호 - 조선일보는 “80년대의 폭력과 광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맥락으로 운동진영을 비판하는데 사용했는데요.  

=문부식 - 조선일보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모든 논의와 맥락을 자기화하는 것, 그것은 조선일보의 탁월한 능력입니다. 그런 재주로 버텨온거죠.(웃음) 제가 스스로 잘 변별해내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차별이 있는 것을 균질화하거나, 무조건 섞음으로서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이 말처럼 폭력은 항상 정당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폭력의 확대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야기합니다. 폭력이 본질일 수는 없으며, 폭력이 이론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교하지 못했고, 조선일보에 인터뷰가 실림으로서 빌미를 줄 수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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