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것들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몇 안되는 사실 중 하나는 록키 산맥과 애팔래치아 산맥이 미국의 양대 산맥이라는 것이다. 록키가 서쪽, 애팔래치아가 동쪽이던가. 나를 부르는 숲은, 미국식 백두대간인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를 다룬 기행문이자 미국의 산과 숲, 동식물들이 인간세상 속에서 거쳐온 기나긴 (수난의) 역사를 다룬 기록이기도 하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빌 브라이슨은 언론인이고, 특별히 등산에 깊은 관심과 조예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가까운 동네의 산에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있는 걸 보고, 나도 해보자,며 불타오르기 시작, 우여곡절 끝에 동반할 친구 하나를 구해서 대장정에 나선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난 길고긴 길인데 대충 길이가 3500km 정도이니 가히 어마어마하다. (보통 종주하는데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o-) 길이라고 해서 특별히 아스팔트로 보도를 깔거나 한 건 아니다. 우리가 등산을 할 때 보통 다니는 길이 있듯이, 애팔래치아 트레일도 여기가 길이다, 일루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놓여있고 대피소가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는 정도.  

꽤 많은 사람들이 종주를 시도하지만 (그래도 몇천명 수준이다. 미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다) 그 중에서 실제로 끝까지 가는데 성공하는 사람들은 단 10%이다. 1948년 최초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가 이루어진 이후로 매년 조금씩 종주인원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종주에 성공한 사람은 탈탈 털어서 4천명이 좀 안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종주에 성공한 사람 중에서는 80먹은 할아버지, 맹견을 데리고 간 시각장애인, 목발을 짚은 외다리 장애인, 끊임없이 길을 잃는 바람에 좀 시간이 오래 걸린 60대 할머니 등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종주에 성공한 사람 중 상당수는 섹션 하이커(section hiker)로 몇번에 걸쳐 구간을 나눠서 종주하는 사람들이다. 한번에 종주하는 사람은 스루 하이커(through hiker)라고 하는데, 상당수 사람들은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갔다가 숲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남쪽까지 종주를 한다고 한다 -_-;; 

18킬로나 되는 장비를 지고 시작한 종주는, 사람의 신체를 현대적 일상의 안락함과 이완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엄청난 무게의 장비를 지고 끊임없이 걷는다. 어디까지 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것이다라는 지식이나 계획이 무의미하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오늘도 내일도, 한달 후에도 이렇게 똑같은 숲을 걷고 있을테니까. 그나마 한두달쯤 똑같은 숲을 계속 걷다보면(!!) 주경계를 지나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조금 다른 경치와 환경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먼 얘기다. 종주를 시작한 사람들은, 책의 표현 그대로 하루 몇천번 숨쉬기를 하듯, 하루 몇만보의 걸음을 걷는다.  

음식은,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스니커즈나 국수와 같은 건조하고 간편한 음식으로 때운다. 물론 씻지도 못한다. 저녁이 되면 적당한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국수를 끓여먹고 책을 읽다가 슬리핑백 안에 들어가 잠이 든다. 아침이 되면 다시 또 걷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트레일에서 종주 중인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산적처럼 육개월을 지내지는 못한다. 중간 중간에 (보통 일이주일에 한번 나올정도의 빈도로) 휴게 지역이 있다. 세탁, 목욕을 하며 제대로된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보충하기도 한다. 때때로 치즈버거와 콜라를 먹을 수도 있는 이런 휴게지역을 주인공과 그 일행은 열광한다. 그러면서도 진열장과 상점과 아스팔트 도로가 즐비한 이런 휴게지역은 막 트레일에서 내려온 산사람들을 낯설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 책은, 몇번의 작은 경험에서 산에서 느꼈던 소중한 느낌들을 되살려주었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맑아지는 느낌, 몸이 가벼워지고 스스로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기쁨,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억지로 잠든 몸을 이끌어 산행에 다시 올랐을 때 문득 바라본 안개낀 계곡풍경, 마침내 해냈다는 뿌듯함 등. 물론 이 책에서 수행하는 산행은 내가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만큼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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