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것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고 어느 정도는 다르기도 하다. 제목이 무슨 액션스릴러 같기도 하고 에로물 같기도 하고 암튼 좀 구리구리한데 부제를 보면 좀더 제목의 의도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제 : 한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과정. 

책은, 정말 개인적인 일기나 기록, 혹은 상담의사가 작성했을 법한 심리학적 보고서 같다. (물론 이런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의사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의사라면 나두 함 상담 받아볼테다) 한 대여섯살부터 중학생이 되기 이전까지의 짧은 몇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왜 이 시기를 자기분석의 대상기간으로 선택했는지도 흥미있는 문제인 것 같다.  

아마도 '나'를 근간을 형성해온 시간, 내가 형성'당했'던 시간 중에서 분석'가능'한 시기를 선택한 것 같다. 초등학생 때까지의 시간, 유년기라 불리는 이 시간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신화와 비슷한 기억이 아닐까. 나만해도 중학교 이후의 일은 거의 기억이 난다. 물론 에피소드나 이런건 워낙 잘 까먹긴 하지만, 현재의 '나'라는 사람과 연속선상에 있는 존재로서 중삐리적 '나'를 기억해낼 수 있다. 하지만 국민학교(이렇게 쓰니까 마치 일제 시대 소학교를 지칭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3-4학년 이전의 일들은 기억은 나지만 남의 기억이나 사진,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5-6살 이전으로 가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저 '나'의 과거라고 알려진 어떤 어린애일 뿐이다. 기억도 거의 없다. 아주 특수하거나 충격적인, 나의 트라우마를 형성한 극소수의 경험 외에 기억은 전무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 힘들 것이다.  

중학교 이후 시기는? 글쎄.. 작가가 굳이 분석 대상을 유년기로 한정지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에는 타당한 선택으로 보인다. 중학교 이후 시기에서 내 인격의 형성과정은, 비유하자면 기본 모양은 다 만들어져 있는데 튀어나온 것 좀 깎고, 부족한 건 조금 메꿔주고 하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바탕은 별로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나보다 나이가 2배는 되는 -프로필을 보니 1990년까지 포닥을 했다- 아저씨의 유년기에 대한 그 상세한 기억과 회상은 참으로 대단하다. 경험과 느낌, 당시의 주변 정황에 대해, 정확하지 않으나 뚜렷한 감각을 갖고 그 감각 자체를 소재로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아이'의 경험들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어른의 사고와 시각으로 분석되고 공감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가 거의 아버지, 어머니로 집중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은 어머니 아버지 나의 유년시절 상호작용을 기록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 관계도 아니다. 작가 집안의 특수성일 수도 있으나, 그의 많은 형제 자매는 그의 기억과 경험에서 주변부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나'의 형성과정에 대한 그의 솔직한 고백은,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어졌다고 말한다. 그럴 것이다. 어린 시절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나'와 '나의 부모님'이 어떤 인터랙션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솔직히, 거의 아는 게 없다. 작가가 얘기하듯이, 표면적인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부모란 하나의 성역이고, 부모를 연구대상으로 삼거나 관찰하고 비판하는 것은 금지된 장난이며, 그러다 보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두분과 나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또 '내가 나의 부모를 잘 몰랐던 이유 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선배 세대를 무시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난 우리집에서 유별난 존재야 나만 별종이야, 혹은 부모에 대한 미움과 경멸, 무시, 현재의 내 삶에 집중하고 부모에 대해 무관심해지면서 자신을 무연고 인간으로 파악하는 것 등. 사실 집을 벗어나 대학에 오면 다들 겪는 증상이고 나도 역시 그랬다. 지금도 그렇기도 하고. 

이 책은 특별한 어떤 내용이나 메세지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분석해보는데 있어 표본이 되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성숙해진다는 것, 자신의 상처와 사고와 행동 느낌을 직시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건, 자기성찰에서부터 시작되는 과정일 것이다. 나도 죽기 전에 이런 보고서 하나 정도는 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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