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생일 선물로 후배가 사준 책이다. 무라카미- 로 시작하는 소설은 물론 일본 소설 자체를 별로 읽지 않았고, 내가 읽은 소설의 목록에서 상당히 튀는 항목일 것이다.  

기성 사회의 가치관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할 때, 그만큼의 거대한 사회변화가 진행되고 젊은 세대는 새로운 진실에 직면하게 될 때. 더이상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는 희망도 자신을 위한 공간도 발견할 수 없어, 자신들만의 유랑을 시작할 때. 무라카미 류의 30년 전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그렇게 유랑 중인 일본의 전후 세대의 퇴폐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이야기이다. 보통 전공투 세대라고도 하는 그 세대 젊은이들.  

대충 미국의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나 히피들이랑 비슷한 느낌이고 실제로 그들의 문화에 아주 큰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히피에 대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막연하게 얻게된 이미지를 근거로 과감히 얘기해도 된다면, 이 일본판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종주국의 그들처럼 깃털처럼 가볍게, 정처없이 떠돌지 못한다. 그들은 무거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마약에 취한 몽롱함조차 마치 악몽처럼 진행된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미군기지 주변에서 자라나 미국과 미군에게서 떨어져나온 쓰레기들을 입고 먹고 마시고 흡수하며 살아간다. 작가 본인임이 너무도 확연히 느껴지는 주인공은, 미군들과의 연줄을 이용해 미군들과 국내 여성들의 파티를 주선하며 살아간다. 그의 애인은, 아마도 미군들을 대상으로 할법한, 미국인이 사장인듯한, 바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주인공의 친구들은, 역시 기지 근처의 술집을 운영하거나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아직 창녀나 미군의 정부가 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 먹고 살고 마약까지 소비하는지 알 수없으나, 짐작컨데 여자친구들에게 빌붙어서 먹고 사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줄거리 (그런 게 있다면)는 단순하다.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이 마약에 취해, 미군들과 대단한 파티를 벌이고 (소설이 19세 미만구독 불가인 이유가 이 파티들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등학생 정도일 때 가장 감동받을 법한 내용이고 그런 삘로 쓰여진 책이다), 죽일듯 패고 싸우고 미친 짓하고...그러다가 뿔뿔이 각자의 알 수 없는 미래로 가는 내용. 그들의 파티와 일상에는 항상 종주국 비슷한 무리의 우상이었던 그룹들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군들이 흘리고 버린 것들로 살아가는 그들은 유일한 휴식이자 공감대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 먹고, 기성사회에 이만큼이나 편입된(?) 지금 읽자니 상당히 겉도는 방식으로 읽히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언제 어딘가에 이러한 시대 혹은 시기를 겪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 정말 난 기성세대가 됐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