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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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찌든 나를 주말동안 refresh하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선정된 몇 권의 책 중 하나다. 정이현이라는 신예작가의 단편집.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들이고, 상당수는 매우 '나쁜년'들이다. 김연실전의 주인공 김연실은 당대의 관점으로 매우 '나쁜년'이고, 그 외 첫 세 단편-각각 오늘날의 30대, 20대, 10대를 그리고 있는-의 주인공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나쁜 년'들이다.

 나쁜년들은,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전략을 세우고 음모를 꾸미는 이들이다. 새로운 시대란, 더이상 여성이 참하게 자라서 자신의 처지에 맞는 착하고 믿음직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행운을 얻으면 행복해 질 거라는 기대를 갖기 힘든 시대이다. 이 시대의 여성은, 자본주의적 기획이 도처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를 홀로 살아내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이 직업적 성공을 통해서이든, 그럴싸한 연애와 결혼을 통해서이든 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시대의 여성은 여전히 유효한 가부장적 시선에 포위된 채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여자'로서 살아야한다. 여기에서 그녀들의 음모가 발생한다. 드디어 잡은 잘나가는 그와의 첫날밤에 한사코 지켜왔던 자신의 '처녀성'을 드러내보이려는 몸짓 같은 것. 사회가,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연기해주고 가장하는, 그 밑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필사적으로 헤엄질친다, 마치 백조처럼.  

그녀들은 과연 성공할까. 알 수 없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커리어 우먼, 그 욕망추구를 가속시켜줄 새 자동차에는 시체가 들어있다 (트렁크). 낡은 팬티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왔던 순결을 마침내 '바친' 그 남자는 그날밤 짝퉁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명품 가방을 내민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온갖 '난관'을 헤치며 마침내 결혼한 그들은 성병에 걸린채, 가끔씩 바퀴벌레가 나타나는 아파트로 들어간다 (홈드라마). 때로 예기치못한 인생의 덫에 걸린 여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자기 학대에 빠지기도 한다 (신식키친). 그들은 위태로워보인다. 

요전에 읽었던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가 바라는 인간상의 묘사, 그리고 반론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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