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0장

짐을 덜다


나는 전화로 에이버리 젱킨스를 처음 만났다. 그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대체로 횡설수설이었다. 자신이 무슨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설명하지 못했을뿐더러 무엇을 원하는지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자신의 수감 환경에 대해 불평하다가 다른 생각이 들면 갑자기 주제를 바꾸는 식이었다. 편지도 보내왔지만 전화 통화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어떻게 도와 달라는 것인지 보다 잘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그의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맞추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는 나이 든 한 남성을 무척 충격적이고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희생자를 칼로 여러 번 찔러서 만든 자상이 정신 질환을 암시하는 강력한 증거였음에도 재판 기록이나 사건 파일에는 젱킨스가 장애를 앓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그를 직접 만나 보면 보다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교도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는데 픽업트럭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마치 남북 전쟁 이전의 옛 남부에 봉헌된 제단 같은 차량이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범퍼 스티커들과 남부 연합기 모양의 데칼을 비롯해 눈에 거슬리는 다수의 그림들로 완전히 도배되어 있었다. 남부 연합기가 들어간 자동차 번호판이야 남부 지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처음 보는 범퍼 스티커들도 있었다. 대체로 총과 남부의 정체성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에는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내가 직접 그 빌어먹을 목화들을 땄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이 교도소의 많은 교도관들과 잘 알고 지낼 정도로 자주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교도소 안으로 들어서자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교도관이 나를 맞았다. 180센티미터 정도로 나와 비슷한 키에 탄탄한 몸을 가진 백인이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군인처럼 짧은 머리였다. 그가 짙고 푸른 눈으로 나를 냉랭하게 노려보았다. 나는 면회실 로비로 연결되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로비에서 면회실로 들어가기 전에 일상적인 몸수색을 받게 될 것이다.



교도관이 내 앞으로 나서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섰다.


「뭐하는 거요?」 그가 으르렁거렸다.


「의뢰인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번 주 초에 이미 일정을 잡아 놓았던 겁니다. 교도소장실에 있는 직원에게 관련 서류가 있을 겁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최대한 예의 바르게 이야기했다.


「그건 되었소. 그건 되었고 당신은 몸수색부터 받아야 합니다.」


명백히 적대적인 그의 태도를 무시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알겠습니다. 신발도 벗을까요?」 

종종 철저한 교도관을 만나면 그들은 내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면 화장실로 가서 몸에 걸친 것을 전부 벗도록 하시오.」


나는 귀를 의심했지만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다.


「오, 아니에요. 아무래도 혼동하신 것 같군요. 나는 변호사입니다. 법률적인 문제로 의뢰인을 만나러 온 변호사는 알몸 수색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내 말이 그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욱 화를 돋운 듯 보였다.


「이보쇼. 나는 당신이 누구라고 말하든 상관없소. 하지만 우리 보안 정책에 협조하지 않고는 내 교도소에 들어올 수 없소. 지금 화장실로 가서 옷을 벗든지 아니면 당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시오.」


나는 보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동안 이 교도소를 수없이 방문했지만 알몸 수색을 요구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요구가 정당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의심스럽군요.」



「글쎄올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지만 이게 내 방식이오.」 


지금 들어가지 못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는 다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옷을 벗었다. 교도관이 따라 들어와 쓸데없이 적극적으로 몸수색을 하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웅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다시 옷을 입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제는 면회실 안으로 갔으면 합니다.」


약간의 위엄이라도 되찾고자 나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음, 당신은 다시 돌아 나가서 기록부에 서명하고 와야 하오.」


차분한 말투였음에도 나를 자극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이 교도소에는 가족들이 면회 왔을 때 이름을 적는 방문 기록부가 있었지만 변호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나는 이미 변호사 방문 기록부에 서명한 터였다. 나머지 다른 하나에도 서명해야 한다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변호사는 그 대장에 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교도소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서명해야 할 거요.」


이제 그는 히죽거리는 듯 보였고 나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돌아서서 방문 기록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이름을 적었다. 그런 다음 면회실 앞으로 돌아가 기다렸다. 


「잠깐, 면회실 밖에 있는 마당에서 범퍼 스티커들과 깃발들이 잔뜩 붙어 있고 총기 거치대가 설치된 트럭을 보았소?」


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보았습니다만.」



그가 얼굴을 굳히며 내게 말했다. 

「그게 내 트럭이라는 사실을 알아 두길 바라오.」 


그가 내 팔을 놓아주었고 나는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 교도관에게 화가 났지만 무력한 내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면회실 뒷문이 열리고 다른 교도관에게 이끌려 젱킨스 씨가 들어왔을 때까지도 나는 집중해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_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출간 전 연재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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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2016-10-18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stillmyhero 2016-10-18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오늘은 특히 더 흥미진진하네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화장실 알몸 수색, 트럭에 실린 무기들로 협박하기... 제가 직접 겪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조차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water0_1 2016-10-18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이야기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잘 봤습니다! 부당하게 대우하는 교도관을 읽고 있자니 화가 나네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다음 화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얼른 책으로 나와서 쭉 읽고 싶네요!

sigumchee 2016-10-18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몸수색을 요구하는 교도관도 분노를 일으키지만 그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스티븐슨의 모습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 같습니다. 다음화도 기대하겠습니다.

월터 2016-10-1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화가 나네요 ㅡㅡ

고귀한 수영이 2016-10-18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일부러 저런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부인들의 흑인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들을 알 수 있어서 정말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정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고... 갈수록 흥미진지해지면서 주인공의 앞길이 험난해짐을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어요. 진짜 다음화가 무척 기대됩니다.

Chloe 2016-10-20 0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ㅠ 계속 읽고싶어서 못 참겠네요. 10월말쯤
볼 수 있다니 젤 먼저 읽어야겠단 생각이드네요.
열린책들만의 느낌이 충분히 살아있는 책이네요.
하퍼리의 앵무새죽이기는 제가 본 고전중 열린책들
하면 생각나는 책인데요.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도 그렇게 기대해도될까요^^ 그 정도로 잘 나왔으면
합니다. 사랑해요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