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
에르베 캄프 지음, 진민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서평 서문
제목과 표지 디자인만 봐서는 책을 펼쳐 읽자마자 부자들을 쏴죽일 태세로 온갖 독설을 남발하리라 생각했는데 저자는 꽤 진지하고 침착하다. 스무고개 게임 하듯이 현실 사회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주장을 차근차근 전개하고 있다. 이 서평에서 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고 경제 성장 맹신, 소수 부자들의 소비를 모방하는 대중, 매체의 현실 왜곡에 대해 한국 현실 사회와 연결하여 생각해보고 저자의 낙천주의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생각이다.

저자의 주장
저자는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는지 밝히기에 앞서 현재 “환경 위기를 알리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으며” 지구와 인류가 생태학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하수 오염, 온실 가스 배출, 생활 폐기물, 화학제품 보급,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 오염, 토지 잠식, 방사선 폐기물 등의 문제”로 인한 지구의 기후 변화는 재난을 통해 수많은 인명 피해라는 전적을 남기고 있으며 지금도 그 전적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 또 소수의 부를 독점한 이들에 비해 다수가 빈곤에 굶주리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이런 현상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고 말하며 이것은 우리가 “생태학적 위기와 사회 문제를 연관 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현상을 정확히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저자는 “위기들이 분리되어 있고 이것들을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사회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를 같은 뿌리를 가진 재난의 두 측면이라는 시각으로 분석해야”하고 “오늘날 지배관계에 대한 철저한 정치적 분석과 연결된 생태학적 관심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목과 같이 지구와 인류에 눈앞에 닥친 생태학적 재난은 소수 지배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체제는 과소비 이데올로기를 사회 전반에 퍼뜨려 과도한 생산으로 생태계의 존속을 위협하고, 사회의 민주주의 정신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주장의 정당성을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획득하고 있다.

경제 성장 맹신
경제 성장의 기치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작정한 듯 교육, 의료와 같이 가치를 따져 기회의 불평등을 조장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모두 화폐화 하기 바쁘다. 대학등록금을 빚져서 내야하는 것, 노동자들이 전보다 더 많이 일하지만 그에 맞는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경제가 성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중산층이 몰락하는 뚜렷한 양극화 현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를 독점한 소수 지배 기득권 세력은 부를 더 빠른 속도로 축적하고 있다. 부와 빈,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중산층의 소득이 갑자기 낮아진 것이 아니라 부유층의 소득과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중산층은 온데간데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부는 대중의 왜곡된 요구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적절히 이용했기 때문에 정권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운세에서 좋은 말만 취사선택 하듯이 수치에 민감한 사람들은 국민 소득 2만 달러가 넘거나 말거나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그 근본 원인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경제 성장에 기대기 시작했다. 부유층의 세습, 상속 메커니즘은 관심 밖이다. 경제 성장을 통해 떨어지는 떡고물, 빵부스러기를 기대한다.

이런 경제 성장에 대한 맹신에 대해 저자는 “소수 지배자들은 사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루하게 늘어놓는”데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한 번도 구체적으로 제시된 적이 없다”고 말하며 “경제 성장은 오늘날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빠져있는 환경에 엄청나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난 몇 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이 불평등의 해소, 빈곤의 해결, 생태학적 상황의 개선에 기여한 바가 있냐고 물었을 때 “아니다”라고 말하며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의 개념을 빌려 “물질 경제 성장을 멈추는 것”만이 이 끔찍한 덫, 즉 경제 성장이라는 가짜 현실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소수 부자들의 소비를 모방하는 다수
“자본주의 노멘클라투라는 최고 부유층의 사치스러운 소비 규칙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중산층에게 퍼뜨린다. 그리고 중산층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규칙들을 재생산하며, 그 규칙들은 다시 일반 민중이나 빈곤층에 의해 모방된다.”

흔히 한국을 ‘짝퉁 천국’이라고 표현한다. 하나에 몇 백 만원을 웃도는 이른바 명품 의류와 각종 액세서리의 외형을 모방해 싸게 파는 것이 짝퉁이다. 짝퉁은 저자가 언급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규칙들을 재생산”하는 것의 적합한 예라 할 수 있다. 짝퉁보다 싸거나 비슷한 가격의 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음에도 비싼 값을 주고 질이 떨어지는 짝퉁을 사는 이유는 부자들의 소비를 모방하는 그것 이외에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 힘들다. 저자는 이런 부자들의 소비를 모방하는 현상을 해석하는 데 미국 경제학자 베블런의 주장을 이용한다. 저자가 말하길 베블런은 인간의 이익 증대 욕구가 무한하지 않음을 주시했으며,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바로 사회적 장치들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고, 이 욕망은 자극은 과시성 소비의 원리로서 사회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한한 이익 증대의 욕구와 경쟁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으로 경쟁으로 인한 많은 부작용을 뭉뚱그려왔다. 부자들의 과시적인 과소비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생산이 증대하고 이 생산의 증대가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할 때 베블런의 주장은 경쟁을 단절하는 또 하나의 기제로 유효할 것이다. 인간의 욕구가 유한하고 어느 수준 이상부터 사회적 장치가 이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면 이 장치의 제거를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현실 왜곡
그런데 대중은 왜 항상 경제 성장과 부자들의 소비 과시에 놀아나는 걸까. 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미디어의 현실 왜곡이라 생각한다. 신문과 방송 같은 미디어를 생산, 배포하는 언론사는 소수 지배 세력과 유착되어 있으며 그들과 영합해 현실을 왜곡하는 보도를 생산, 배포한다. 저자는 그 예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언론의 비판 정신 결여를 예로 들었는데 한국 사회의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보면 그 편파적인 상황 전달과 왜곡이 눈에 띈다. 저자는 이렇게 “미디어가 도덕적으로 취약한 가장 큰 이유”를 “그들의 사장과 위계질서가 스스로를 과두 정치 세력의 완전한 구성원이라고 느끼면서 빈번히 그 지도자들의 사고방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라 적고 있다. 이런 미디어의 왜곡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대중이 이런 미디어의 현실 왜곡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상황을 인지하는 분명한 원칙과 맥락을 유연하게 이해하는 사고를 갖춰야 할 것이다. 평소 사회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고민하며 독서하고 토론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게 생각이다.

낙천주의
얼마 전 읽은 《승자독식사회》의 저자들처럼 이 책의 저자도 미래 인류 삶에 대해 낙천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저자는 소수 지배 세력을 제외한 인류는 다수이며, NGO들의 투쟁과 교토 의정서의 유지 같은 국지적인 성과에서 비롯된 시각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결국 그 다수는 사회적으로 합의해 결과를 도출한 일이 드물며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근거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낙천적일 수 있는 걸까 싶다. 소수의 지배 세력이 미디어를 통한 현실 왜곡으로 죄수의 딜레마의 굴레 안에 다수를 가두어 둘 때 낙천적인 시각은 단순하게 순진한 시각으로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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