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데이비드 베레비 지음, 정준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저자는 반복해서 인간 삶의 맥락과 척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삶을 총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저자는 “민족주의는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고 한다. “질문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 왜 그럴까. 민족주의는 상황에 따라 실재할 수도 있고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학 시간에 컨닝한 학생이 영어 시간에도 컨닝 하라는 법은 없다. 민족주의는 민족주의가 필요한 곳에 존재할 뿐이고 민족주의는 인간에게 어떤 해를 끼친 적 없다. 민족주의를 인간의 범주 속에서 파악하고 실체인 양 명명하는 건 인간이지 민족주의 자체가 아니다. “민족적 긴장, 종교적 분쟁, 정치적 갈등, 파벌 간의 경쟁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고로 삶을 비롯해 어떤 사건에 대한 본질의 파악은 인간 삶의 상황과 맥락 속에 위치해야 한다.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우리’에 대한 각종 학문의 조사와 이론으로 볼 때 이 책의 부제를 굳이 달아보자면 〈인간 삶에서 ‘집단’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싱거운 부제라 다나마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을 설명하는 부제로 이만한 것도 없다. 이 책의 약 450쪽이 ‘우리’ 혹은 ‘집단’에 대한 개념을 학문과 삶의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에 쓰이는 단어 하나하나가 글의 맥락 속에서 개념을 가지는 것과 같다. 인간은 심리학, 생물학적으로 파악할 때 ‘우리’라는 소속감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라는 것의 한시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원불변할 것처럼 행동한다. 이상하다. ‘우리’라는 것이 한시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은 드문데 그 한시성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면서 왜 ‘우리’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이 책의 현실적 쓰임새와 유효함이 여기에 있다. 알면서도 모르게 행동하는 인간의 삶을 과학적으로 파헤치고 문제제기 함으로써 이 책은 의미를 갖게 된다. “당신이 안다고 확신하는 것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 실상을 현재로서 최대한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과학의 임무 중 하나이다.” 낙인이라는 것이 가지는 사회심리학적 부작용을 일깨움으로써 오히려 낙인이 부작용을 유발하는 부조리를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쓰임새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독자에게 유익한가. 2만원 책값이 아깝지 않은 독자는 어떤 부류일까. ‘우리’속에 있는 사람들, 즉 ‘집단’에 속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관계에 대해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우리’속에서 혹은 밖에서 자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책값을 지불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덧붙여 어떤 한 가지 불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나 삶을 넘어선 어떤 불변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사고의 한 가지 좋은 예로 작용할 수 있는 책이다. 사회과학 서적들을 자주 읽고 어느 정도 사회의 문제의식을 가진 이라면 너무 당연한 것들을 너무 심각하게 조사하고 두껍게 쓴 것에 반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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