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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종말론 ㅣ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4
야콥 타우베스 지음, 문순표 옮김 / 그린비 / 2019년 8월
평점 :
이 책은 우리에게 <바울의 정치신학>으로 소개된 타우베스의 청년기 저작이다. 저자가 혁명적 열정이란 종말론적 열정이라는 것을 역설할 때마다 결기가 느껴진다. 여기서 종말론은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감각, 이토록 부정한 세계는 지금 당장 무너져야 한다는 감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타우베스의 글에는 하이데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로 시작해서 같은 책으로 끝난다.) 타우베스가 헤겔의 변증법에서 마르크스와 키르케고르의 분기를 해설할 때,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 둘의 합일(부정의 부정)을 긴급히 요청할 때, 그는 극좌와 극우 사이에서 격렬히 진동하는 듯하다. (하이데거의 세례를 듬뿍 받은 마지막 문단에서는 오른쪽으로, 즉 키르케고르 쪽으로 좀 더 다가가는 것 같다. 또한 청년 타우베스가 예의 '청년 마르크스'에 경도되어 '소외'를 통해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데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의 피상적인 이해를 드러낸다.) 다만 종말론 연구를 종말론적 희망으로 종결하는 데서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만난 '묵시가' 타우베스를 거듭 확인한다.
<서구 종말론>은 초기작인 만큼 타우베스와 그의 종말론 해석을 이해하는 하나의 이정표에 머문다. 그럼에도 종말론은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할 사유다. 신유물론과 이른바 사변적 실재론, 객체 지향 존재론이라는 지금 시대의 신학을 파악하기 위해 하이데거를 탐색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련해 에티엔 발리바르가 쓴 <종말론 대 목적론: 데리다와 알튀세르의 유예된 대화>(<알튀세르 효과>에 수록)와 진태원의 <시간과 정의: 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가 좋은 참고가 되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반反목적론과 데리다의 반反종말론을 서로 포개놓으며, 진태원은 벤야민의 '약한 메시아적 힘'과 데리다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메시아성)' 사이의 차이를 하마허 등의 논의를 경유해 살펴본다.) 타우베스가 칼 슈미트와 나눈 서신과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나눈 서신이 번역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낯설기 그지없는 20세기 초의 문헌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인용하는 <서구 종말론>은 번역하기 어려운 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건 아쉽다. 풍부한 주석과 해설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