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 북한과 제3세계 관계사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14
벤자민 영 지음, 고자연 외 옮김 / 너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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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제3세계라는 ‘거울’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책이다(옮긴이의 말, 360쪽).” 막상 북한 인민에게 제3세계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냉전사 관점에서 제3세계로서의 북한(과 남한)을 보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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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플릭트 - 1945년부터 가자 전쟁까지, 전략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앤드루 로버츠 지음, 허승철.송승종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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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미국의 제3세계 군사 전략을 ‘소탕-유지-재건’이라는 대반란전 교리의 적용으로 요약한다.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서술(‘서방’ 중심의 보수주의적이고 반공적인 서술)에 속이 뒤집히지만, 미국이 어째서 매번 유지와 재건에 실패하는지를 명징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반면교사 격의 책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 즉 폭력을 너무 능란하게 발휘하기에 문화번역에 실패해 제3세계 인민의 민심을 잃는다는 역설을 잘 보여준다(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등). 지은이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실현될 수 없음을 철저하게 반증한다. 현재의 이란 전쟁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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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요나하라 케이 지음, 임경택 옮김 / 사계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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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왕국의 기억을 복원하는 여정을 담은 멋진 다큐멘터리.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은 보람이 있다. 기억의 보존에 천착한 가마쿠라 요시타로에게, 그를 좇아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을 보여준 지은이 요나하라 케이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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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 식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능의 미래
파코 칼보 지음, 하인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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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이처럼 다른 식물뿐 아니라 다른 종들과도 교류한다면 식물의 몸 안에서도 ‘생각’이 이루어지는 복잡한 과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어떠한 소통이 일어날 거라고 추측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상상일까?” (63쪽)


파코 칼보의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하인해 옮김, 휴머니스트, 2025)는 식물에도 지능이 있을 수 있으며, 지능 또는 지성이 생물의 위계서열을 결정하는 자리에 놓일 수 없음을 신중하게, 그러면서도 강력하게 주장하는 책이다. ‘식물지능’이라고 하면 어쩐지 사이비 같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지은이는 최대한 과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다시 말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재현하며 논문을 쓰고 토론에 참여함으로써) 검증의 기나긴 길을 감당하려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은 “1부. 지능의 관점으로 다시 보는 식물”, “2부. 과학으로 보는 식물지능”, “3부. 식물지능이 펼치는 미래”의 세 가지 파트로 나뉜다. 1부에서는 동물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식물은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 때문에, 또 식물의 움직임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일 뿐 목적 지향적인 지능적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기존의 관점 때문에 우리가 ‘식물맹’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식물에 지능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하나씩 풀어준다. 놀랍게도 지은이는 식물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식물의 생리학뿐만 아니라 심리학까지(!)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식물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마음[mind]은 인지과학의 [어쩌면] 영원한 숙제로 알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식물지능을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학문이 태어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윤리적 문제도 나타나며(“인간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쾌고감수성을 지닌 존재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용해도 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식물까지 연결할 때, 기존의 생활방식 전체를 조정해야 할 수 있다), 인간이 우주라는 전혀 다른 환경을 탐색하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제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식물지능의 존재 여부를 탐색하는 책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국제식물신경생물학연구소 소장 스테파노 만쿠소의 책이 꽤 여러 권 번역된 상태다(<식물을 미치도록 사랑한 남자>, <매혹하는 식물의 뇌>, <식물 혁명>,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나는 만쿠소의 책들을 깊이 살피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식물지능에 대한 책들이 너무 선언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그래, 식물에 지능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뭐?”).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도 만쿠소의 책들과 큰 흐름에서 함께할 테지만(지은이 파코 칼보는 식물신호전달및행동철학연구소 민트[MINT]의 소장이자 만쿠소의 동료이기도 하다), 나는 식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통해 식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그럼으로써 지능의 정의와 범주 자체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지점에서 감동을 받았다.


내 감동 포인트: 식물이 단독자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과 늘 상호작용을 하고 자신과 관계 맺는 모든 존재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식물의 지능은 큰 범주의 지능에 속할 수 있지만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지능과 ‘다른 지능’이라는 주장. 무엇보다 지능은 개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서 잠시 ‘점유’하거나 (과감하게 말하자면) ‘빌려온’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


“이는 링컨 타이즈가 경고한 “데이터의 과잉 해석, 목적론, 의인화, 철학화, 억측”의 위험을 피할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보인다. 행동이 펼쳐지는 자연환경에 초점을 맞춘다면 인지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지는 유기체와 그 주변 환경 간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무언가에 가깝다. 유기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유기체가 주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야 하는 까닭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경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33쪽)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원제 “플란타 사피엔스(Planta Sapiens)”도, 한국어판의 제목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와 부제 “식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능의 미래”도 각각 이 책의 핵심을 콕 집어준다. 식물의 지능을 인간의 기준으로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그러니까 의인화와 ‘동물중심주의’ 모두 벗어나야 한다는 것). 식물을 통해 지능의 범주 자체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지능에 대한 인식의 지평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 책 한 권에 담기엔 너무 광대해 보이는 주제지만, 지은이가 하나씩 두들겨가며 놓아둔 돌다리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어느새 설득될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정확하게는 글이 잘 안 쓰이는 동안) 거실에 놓인 식물을 바라봤다. 몬스테라며 고사리과 식물들이 화분에 담긴 채 조명에서 나오는 빛을 쬔다. 내가 이들을 감각하는 것만큼이나 이들 또한 나를 감각하고 있다. 지능 있는 존재가 누군가를 해칠 것이라는 생각은 <프랑켄슈타인>보다 오래되었을 테지만,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나와 (아주 큰 범주로 넓혀야겠지만) 같은 계통수의 존재들이 굳이 나를 해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물부터 잘 주자. 언제나 닝겐이 문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온 존재를 다른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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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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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를 면밀하게 진단한 책이다. 바버라 F. 월터의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와 같이 읽으면 좀 더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하겠다. 두 책 모두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그것도 아주 위험한 신호)로 읽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책의 원제인 <소수의 폭정(Tyranny of the Minority)>은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을 경고한 알렉시 드 토크빌과 존 스튜어트 밀 등의 주장을 뒤집어, 다인종 민주주의 실험을 방해하는 정치적 소수의 지배를 신랄하게 표현한 것이다.


지은이인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각각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의 정치 변동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들이다. 미국 안으로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부터 2020년대 바이든 행정부까지, 미국 밖으로는 1934년 2월 극우파의 프랑스 국회의사당 습격부터 21세기의 페루와 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를 명확한 논점과 함께 제시함으로써 비교정치학적 연구를 대중화한 좋은 사례다.


지은이들의 논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인민을 대리하는 정치 엘리트가 ‘충직한 민주주의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선거에서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폭력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극단주의자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힘을 얻는 쪽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동의하는 척하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보전하려고 극단주의자들과 손을 잡는다. 문제는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 들을 떼어놓을 내적 동기와 외적 강제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은이들에게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주로 공화당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갈수록 협소해지는 공화당의 입지를 역전할 방안을 백인우월주의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충직한 민주주의자로 행동할 내적 동기가 거의 없다. 또한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나온 여러 타협의 결과가, 즉 지은이들이 ‘반다수결주의 제도’라 부르는 각종 제도적 문턱(폐쇄적인 의회[상원], 인민의 수에 비례하지 않는 선거인단, 극히 보수적인 대법원, 비민주적인 선거제도 등)이 (비록 조금씩 개선되기는 했어도) 미국의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외적 강제를 봉쇄한다.


바버라 월터와 마찬가지로,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시민들의 연대와 운동, 엘리트 계층을 향한 압력에서 민주주의를 갱신할(또한 월터가 바라는 대로 ‘2차 내전’을 예방할) 가능성을 기대한다. 이들 모두 민주화가 ‘기나긴 혁명’이며, 얼마든지 실패하리라는 것을 안다. 문을 닫아놓는 게 이득인 문지기를 언제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는 이론이 아니라 정세가 결정하기 때문이다(우리로 치면 “국민의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아이디어를 준비해놔야 한다는 지은이들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을 일이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한국은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때 “미국이 생각했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안정적 조합은 남한과 대만이라는 두 반쪽 국가에서만 가능(<냉전의 지구사> 648쪽)”했으나, 미국과 한국 모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안정적 조합’이라는 희망에 커다란 금이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은이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트럼프가 재선됐고, 한국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에도 불구하고 엘리트들에 의한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다. 지은이들의 제안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사회대개혁 비상행동과 같은 시민운동 연대체가 투쟁에 함께해온 시민들과 연합을 구성해, 민주당과 같은 현실정치 세력이 진보적 의제를 채택하도록 견인해야 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던가, 그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계속 “나중에”를 외치면, 민주주의 자체가 나중이 된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그것만은 바라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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