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
이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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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과 비움의 철학에 대해서는 누구나 귀가 닳을 만큼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무언가를 안다는 것과 직접 움직여 본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건 개인의 문제이면서 또한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지훈 위클리비즈 편집장의 『단 :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는 현대 기업 경영의 핵심 키워드가 단單, simple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순함을 성취하는 공식으로 '버리기', '세우기', '지키기'를 제안한다. 제목부터 구성까지, 책은 단순함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도록 만들어졌다. 책 속에서 인용되는 온갖 명사들, 미야자키 하야오와 재러드 다이아몬드, 짐 콜린스 등의 예술가, 학자, 경영 구루와의 인터뷰는 물론, 애플, 구글, GE, 이케아 등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이들이 단순함을 고수할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 하나로 모인다. 


  기업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움직인다. '더 많이'는 자본주의의 모토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더 적게'가 전환기의 핵심 원리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제시한 대로,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글로벌 슬럼프(global slump)'라 부르는, 침체된 산업과 넘쳐나는 금융 사이의 불균형을 회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거시경제적인 설명보다 기업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 내지 역능에 좀더 집중한다. 


  그래서 저자가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버리기'다. 여기서 체스와 바둑의 차이를 강조하는 부분과, 바둑과 경영의 유사점에 주목하는 부분에 눈길이 간다.


  그['팩트 파인더'를 개발한 오미크론의 창업자 카스텐 크라우스―인용자]는 바둑이 경영과 비슷한 두번째 측면으로 '상생'을 꼽았다.

  "체스가 상대를 파괴하는 게임이라면, 바둑은 라이벌을 두고 때로는 경쟁, 때로는 협력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게임입니다. 비즈니스도 그렇습니다. 체스처럼 늘 상대보다 좋은 성과를 내려 하고, 상대를 없애버리려고만 한다면 복수가 복수를 낳고 시장은 무너집니다." (134쪽)


  크라우스 사장은 바둑과 경영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바둑은 단순화와도 비슷하다. 바둑 역시 버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둑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할 10가지 격언을 담은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버리기에 관한 것이 4가지나 된다. 작가이자 바둑 애호가인 장석주는 『인생의 한 수를 두다』에서 "바둑에서 버리는 것은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위기십결 중 첫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인데, '이기려면 먼저 이기려는 마음을 버려라'라는 의미이다. 치열한 승부의 장인 바둑에서 이기려는 마음을 버리고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버려야 한다. 이기는 데만 집착하면 여유가 없어져 마음이 굳고, '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커진다. 이는 통찰력의 싹을 잘라버린다. 또한 마음이 흐려져 나아갈 때 과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물러설 때 물러나지 못한다. (…)

  두번째는 '기자쟁선棋子爭先'이다. 작은 것은 버리고 선수先手를 잡으라는 의미다.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 돌 몇 점을 희생시키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하수는 돌에 집착하지만, 고수는 돌을 아끼되 버려야 할 국면에서는 과감하게 버린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그 돌이 살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에서 나타난다. (…)

  세번째는 '사소취대捨小取大', 즉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앞에 설명한 '기자쟁선'과도 일맥상통한다. 장석주는 '사소취대'의 의미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눈앞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멀리 내다보는 자만이 눈앞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은 남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그게 창의의 길이다."

  네번째는 '봉위수기逢危須棄'다. '위기에 닥쳤을 때는 과감하게 버려라'라는 뜻이다. 위기에 빠진 작은 돌을 살리려고 끌고 나오다보면 어느덧 덩치가 커져 대마가 되고 바둑이 고달파진다. 곤마를 겨우 살리더라도 결국 지고 만다. 물론 살길이 있으면 살려야 하지만, 도저히 가망이 없거나 살더라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결단의 시기에서 갈라진다. 바둑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그렇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를 빨리, 제대로 결정하는 사람과 기업만이 승기를 거머쥘 수 있다. (134~137쪽)


  장황하게 인용했지만, 핵심은 어떻게 잘 버릴 것인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바둑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물론 이게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집안에 쌓인 물건 하나 치우고 정리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힘을 들여야 한다. 말 그대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뉴스와 정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단지 버리기만 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버리는 건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버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관점을 '세워야' 한다. 뚜렷한 목표와 지향점 없이 버리기만 하다가는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내다버리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잘 버리고 세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또 있다. 바로 '지키는' 것이다. 때로는 완고할 정도로 자신과 조직의 입장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 '유연한 전략'을 강조하는 시대에 이 말은 다소 엉뚱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관점 없는 '유연성'은 잘해봐야 기회주의적인 대응 이상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모스버거는 기업 경영의 '지키기' 원칙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등장한다. 


  그런데 수제 햄버거는 확실히 모스버거만의 독특한 차별화 포인트이자 강점이지만, 그만큼 제품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평하는 손님도 많았을 법하다. 이 질문에 대한 사쿠라다 사장의 답은 단호했다.

  "어쩔 수 없지요. 빨리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고, '빨리 만드는 게 최고'라고 한다면 맥도널드의 방식을 따르는 게 최선이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따라 하면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맥도널드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맥도널드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는 게 오히려 좋지 않을까요? 한국에도 일반 음식점이나 카페보다 좀더 비싼 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그런 데는 분위기도 좀 여유롭고, 모여서 수다 떠는 여성들도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하지 않아도 되고요.

  모스버거도 빨리 만드는 걸로는 맥도널드를 이길 수 없어요. 하지만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보통 패스트푸드 가게보다는 뭐랄까,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죠. 세상엔 여러 종류의 가게가 있습니다. 맥도널드처럼 대량으로 만들어서 고객의 주문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가게도 좋지요. 하지만 모두 그것만 따라 한다면 세상엔 같은 종류의 가게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모스버거는 '우리는 맥도널드처럼 빨리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대신 '갓 만든' 상품을 제공합니다'라는 모토로 일하고 있습니다." (270~271쪽)


  (한국 모스버거 체인을 가보지 않아 한국에선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모스버거는 가격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 권에서 '그걸 빼버리는 순간 그 자신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을 스타일이라고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키기'를 스타일의 문제로 바꿔 말하면 기업과 조직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지 못할 때, 그 스타일을 선호하던 고객도 잃어버리고 다른 기업과의 경쟁력도 사라져버려 결국 위기를 맞는다. 책은 그만큼 차별화되는 가치관과 목소리가 중요해지는 시대를 반영한다. 


  『단 :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는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바로 '자유'다. 물론 자유는 오늘날 무척이나 난처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된 선택이란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때 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라는 제안은 조직은 물론 개인에게도 유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끝까지 지키는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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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효과 - 통치성에 관한 연구
콜린 고든 외 지음, 이승철 외 옮김 / 난장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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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연구를 지금 와서 (번역서로)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이 푸코의 방식대로 `현재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통치성은 빈곤을 비롯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이며, 거기서 `정치`라는 문제가 도출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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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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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의 『서재에 살다』의 부제를 조금은 모던하게(?) 바꿔보자면 ˝내가 살고 싶은 서재˝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서재에 살다』는 책에 따른 삶을 살고자 했던 근대 러시아인(김수환의 『책에 따라 살기』)에 못지않은 조선 지식인의 `책에 따른 삶`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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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5-01-12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받아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oneitherside 2015-01-12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책에 따라 살기 - 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 현대의 지성 157
김수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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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저 책일 뿐일까? `책에 따라 사는 것`을 삶의 기술/예술(art)로 보았던 표트르 대제 이후의 러시아에서는 책이란 그 물성(物性) 이상의 것이었다. 김수환의 이 책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과 알베르토 토스카노의 『광신』에 대한 로트만식 주석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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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의 낮잠 - 적대와 정치
서동진 지음 / 꾸리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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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에 빠진 변증법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모순, 적대, 변증법 등 80년대의 `유물`로 생각되는 이 개념들을 붙잡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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