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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ㅣ 꿈터 그림책 2
리비아 로치 지음, 로사나 보쉬 그림, 김지연 옮김 / 꿈터 / 2020년 2월
평점 :
코로나 사태로 집에 온종일 머물며 하루의 길이를 이렇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한다. 하루가 길고 무료하다.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하루가 아닌 내가 계획하고 꾸려야 하는 하루가 버겁다. 맘놓고 쉬는 주말과는 다른,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평일이다. 이건저것 뒤적여대다보면 하루가 훌렁 가버리고 뭘했나 싶어 허무하고 슬퍼지는 저녁을 맞는다. 다들 뭔가 즐겁고 알차게 이 하루들을 쓰고 있는데 나만 바보같이 허비하고 있는건 아닌지 불안하다.
강렬한 날개 표지 그림때문에 책 제목을 자꾸 나비로 착각한다. 나비는 psyche, 마음이다. 온갖 마음이 펼쳐지는 하루다. 내가 처한 운명, 환경보다 내가 갖는 마음으로 다르게 빚어지는 하루요 삶이다. 억겁의 우주 시간에 견주면 우리가 살 수 있는 기껏 백년도 하루살이일뿐이다. 나비의 하루에 사계절이 느껴지고 희로애락 생사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백년을 하루처럼, 하루를 백년처럼 살아내고 있다. 이 책은 두고두고 품어 새길 만한 인생 그림책이다.
불행이가 비관하며 하루살이 운명을 한정지어도, 지렁이가 값싸게 동정하며 기죽여도, 나무줄기가 현실을 직시하라 입바른 소리로 헐뜯어도 굴하지 않은 행복이다. 행복이에게는 주변의 아름다운 꽃을 보고 색색깔 물고기가 떠다니는 하늘 바다를 꿈꾸게 해준 고양이가 있어 큰 힘이 되었다. 고양이는 행복이가 웃으며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친구, 서로 닮아가는 친구, 마지막을 함께 하는 친구였다. 마음을 나눈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 함께 한 추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삶이라면 하루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앞면지에서 먼지처럼 작은 별들만 외로이 떠도는 허허벌판 우주가, 뒷면지에서는 행복이가 보고 듣고 맛보며 느낀 보물 조각들로 가득히 채워져있다. 이 장면은 행복이의 추억이기도 하고 고양이의 기억이기도 한 것같다. 행복이의 삶은 끝나지만 힘껏 날개짓하며 만들었던 추억은 함께 한 고양이 기억에 선명히 남았을테니 말이다.
책을 덮고 다시 내 하루를 들여다본다.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가. 밖의 다른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한 하루를 살고 싶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에 흠뻑 빠져들며 행복하고 싶다. 그렇게 행복하다면 잘 보낸 하루 아닌가. 토닥토닥!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