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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모자 ㅣ 알맹이 그림책 53
조우영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3월
평점 :
책을 열기 전부터 이미 벌써 파란모자는 나다. 요새 조금 우울한 내 마음꼴이 겹쳐져 표지 그림에서 파란모자가 겪고 있는 처지를 다 알겠다. 무심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파란 사람들의 시선으로 에워싸여 파란모자가 하얗게 질린 것만 같다. 파란모자.. 파란색은 우울, 전신을 다 덮는 큰 모자는 자폐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꼭 나같은 이 파란모자가 어찌 살아가나 걱정되고 불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응원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파란모자가 걷는다. 모자 밖 살짝 나온 다리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사람들을 만나고 부딛히고 피하며 안식처를 찾는 걸음,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 세상에 손내밀고 내가 드러나고 홀가분해지는 걸음까지.. 갇혀있지만 머물지 않고 걸음을 내딛으며 달라지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된다.
처음엔 사람들이 없는 깊은 숲속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내맘대로 거기서 그만 책을 덮고 싶었다. 그런데 마저 읽을 수밖에 없고 다시 또 읽으니 바로 다음쪽 문장이 크게 울린다.
조금씩 조금씩 모자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파란모자가 아래로 내려다보았을 때 더 크고 환하게 다가온 민들레 꽃처럼 새삼 깨닫는다. 밖으로 나와야, 나올 수밖에 없구나. 그래야 사는구나. 그렇게 사는 거지.
파란모자도 실은 빨간존재였다. 나는 달라, 나만 우울해 하며 자기연민에 갇혀있을 때는 모른다. 내 부끄러움, 자신없음, 어려움, 힘듦만 과장해 주변과 불화하면 문제는 커져만 갈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자기부정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다 그저그렇게 고만고만 산다. 나도 너도 빨간 피 도는, 온기있는 존재다. 나를 수용하면 다른 이들과도 온도를 맞춰 교류할 수 있다. 파란모자 크기를 줄여 빨간 나를 그대로 드러내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드는, 어울리는 마지막 장이 안심된다.
덧붙여 소통의 문제, 위안이 되는 공간, 물건 등 곱씹어 생각해보며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