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티비를 끊고 살다가 관심 갖고 보게 된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성공한 사람들, 다 가진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닌 보통 우리들의 이야기여서 공감 폭이 크다. 화려한 배경 드라마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눈요기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지만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마냥 초라한 현실에 견딜 수 없는 박탈감을 갖게 한다. 내 현실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는 구질구질하나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위로받고 채워지는 뭔가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부자가 되려 하고 부자가 지상 과제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돈 많은 백수가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고 그 수가 늘고 있다. 영상매체로 우리는 화려하고 멋진 것들에 한껏 눈이 올라가 있으나 실제와 간극을 메울 의지는 희박하다. 그저 운 좋은 한탕을 고대하며 허상을 소비하고 그 허상이 진상인 줄 착각한다. 전미화 그림책은 아프다.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안주 없는 소주를 들이키는 기분이다. 내 처지가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어설픈 위안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매체 속 가상현실보다 만져지는, 더 가까이 닿는 현실이란 거다. 티비 속 보안 철저 빌딩은 범접 불가이지만 이 그림책 속 트럭은 모퉁이를 돌면 마주하게 된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사연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빠는 망했다. 아빠는 자꾸 운다. 훌쩍거리고 엉엉 운다. 아빠가 울지 않으면 학교는 다다다다다다음달에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내 아빠는 운다. 울음을 감출 수 없는 아빠, 아빠의 울음에 제까지 울음을 보태지 않는 아들, 응원할 수밖에 없는 부자다.살색, 다양한 피부색을 존중하자는 마음으로 지양, 폐기해야 할 말이 되었지만 이 책 면지에 쓰인 색을 굳이 살색이라 말하고 싶다. 사람색, 우리네색으로 바꿔도 좋을, 우리 사는 모습이가득하다. 이 책은 우리의 허상 해방을 돕는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것,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여기 있다. 남들 보기 번듯한 외양이 아니라 속 깊이 통하는 정이 진하게 잡힌다. 울음을 그치고 다음 달을 꿈꾸게 한다.
기억해둬,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야. - P220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예스터데이 - P109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ㅡ드라이브 마이 카 - P59
"남을 함부로 길들이려고 하면 안 돼. 무턱대고 남한테 길이 들어도 안 되지."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