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그리고 호랑이
박금산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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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13:13)."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3:13)." "전쟁과 일상의 폭력에서 강요받는 공포를 환희로 바꾸"(397쪽)려는 작가, 박금산은 여기서 '사랑' 대신 '호랑이'를 선택한다. 그가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명사 중 호랑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고 전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모든 것'을 덮어 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381쪽)딘다고 주장하기에 이를 부정한다. "모든 인간은 제각각"이기에 "'모든'을 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의 말처럼 '모든'은 폭력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은 각 생명의 개별성을 없애기 때문이다. '모든'으로 묶이는 순간 개인은 사라지며 전체만 남게 된다. 나치는 '모든' 유대인을 죽이려고 했으며, 제주에서 정부는, 노근리에서 미군은 '모든' 사람을 학살하려고 했다. '모든'은 허상이기에 '모든'것을 믿고 견디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에서 사랑이 호랑이로 대체된 것이 아닐까. 호랑이는 호랑이도, 릴리도, '나'도 그 누구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공격한 사람 역시 없애지 않았다. 대신 호랑이는 '나'가 현실을 마주 보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민 존재. 모두 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른 회복 방법이 필요하다. '나'에게 호랑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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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그리고 호랑이
박금산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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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호랑이는 ‘나‘가 현실을 마주 보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민 존재. 모두 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른 회복 방법이 필요하다. ‘나‘에게 호랑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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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최애 변경 허블청소년 3
범유진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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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덕질

덕질이란 "특정 분야나 대상을 깊게 파고드는 것"을 일컫는다. 마니아를 뜻하는 오타쿠를 우리나라식으로 줄인 '덕후'에 행위를 뜻하는 '-질'을 붙인 것이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따르면 덕질을 하는 이유는 "해당 대상과의 정서적 연결감"*이다. 해당 대상의 성취에 따라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같이 덕질하는 사람들과 연대감과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오늘만 최애 변경>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돌을 대상으로 덕질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트로트 가수, 가상 연예인, 유명 스포츠 선수 등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오늘만 최애 변경>(허블, 2025)은 '나'(한수리)가 좋아하는 아이돌, '비스킷 보이즈'에게 투표하기 위해 모아놓은 별을 '나'의 엄마가 자신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 '이한한'에게 써 버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 담겨 있는 다양한 주제들

이 책의 주된 주제는 '엄마 역시 기댈 곳이 필요하다'이다. 처음에 '나'는 엄마의 덕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엄마이기에 덕질보다 '나'를 더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잖아. 그냥 어른이 아닌 한수리의 엄마. 당연히 덕질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줘야 하는 거잖아.

103쪽

하지만 은진의 할머니를 만나고, 엄마의 퇴사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나'는 엄마의 덕질을 점차 존중하게 된다.

'나는 어쩌면 평생, 엄마를 모를 것 같아' (중략) 이제까지 나는 무대 위의 엄마를, 엄마의 전부라고 착각했던 것도 같다.

189쪽

<오늘만 최애 변경>에는 엄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관계, 팬덤 사이의 갈등 등 청소년들이 겪는 일들 역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리에 끼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애써 숨기는 '은진', 성적 지상주의인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정한 길을 선택한 '나영',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수리까지. 한국의 중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 보거나 경험했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요?

내가 <오늘만 최애 변경>의 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는 책에 있던 한 문장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다. 덕질은 그 사람이 필요할 때 찾아온다고. 내게 다정함이 필요했을 때 비보가 찾아왔던 걸 생각하면 딱 맞는 말이지 싶다.

97쪽

해외에서 근무하던 적이 있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국 때.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을 1년 넘게 만날 수 없었다. 일, 집, 일, 집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지쳐갔다. 그때 나를 살아남게 했던 건 절반이 덕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가 <내꺼하자>로 초대박 히트를 친 해, 요즘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처럼 "동년배들은 대부분 인피니트 팬"이었다. 멤버들이 하나 둘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러 가고, 나도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른바 '휴덕(덕질 휴식기)'이 되었다.

유튜브도 잘 안되는 환경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이 나를 인피니트로 다시 인도했고 나는 다시 덕후가 되었다. 출퇴근 시, 산책 시에는 항상 인피니트 노래를 들었고 퇴근하고도 인피니트 노래를 들으면서 쉬었다. 귀국 후 인피니트한테 편지를 써 볼까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마지막 몇 달 동안은 인피니트 노래를 주구장창 들었다.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덕질은 그 사람이 필요할 때 찾아온다. 다정함이 필요할 때, 소속감이 필요할 때, 동경의 대상이 필요할 때 등등. 최근 트로트 가수의 팬덤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퇴 후 소속감을 잃어버린 노년층이 함께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 최애 변경>은 이러한 덕질의 이유, 청소년 시기에 겪게 되는 가족, 친구와의 갈등, 해결 등을 종합적으로 망라한다.

*https://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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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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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종말 앞에서 살아가기

근미래. 기후변화로 인해 폭우가 쏟아져 도시 곳곳에 물이 차오른다. 온도가 올라가 집집마다 맹그로브를 기르고 아침에 발코니에 나가보면 날치가 베란다에 떨어져 있다. 밀물시간과 썰물시간이 있어 밀물시간대에는 집 안으로 물이 들어차기 십상이다. 오존돔과 물을 막을 벽이 설치되었지만 이는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다. 벽 밖에 있는 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허리까지 오는 물을 헤치고 목숨을 담보하여 200만 원 대의 물고기를 고급 아파트에 배달하거나, 죽은 아이의 관에 매달려 이름만 아는 사람의 집까지 표류한다. 또는 모두가 떠난 집에 남아 생물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서윤빈의 SF 연작 소설집

서윤빈은 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작품은 총 7편으로 각각 독립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게, 천왕성인, 블랙번은 이 소설들을 관통하는 제재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야기들이 만드는 촘촘한 연결망에 빠져들게 된다.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차오르는 종말

산업시대가 시작되면서 기후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 과학지는 "앞으로 100년간 일어날 변화의 속도가 지난 6500만 년 사이의 어떤 시기보다도 최소한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종말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점점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봄, 경상도 일대는 역대급의 산불을 겪었으며, 여름에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국지적인 호우에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한 인명피해 역시 있었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폭염과 폭우, 이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은 예상보다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에 잠기는 건 다른 세계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잘 몰라서 당하는 일인 줄로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갑자기 찾아오는 재앙이 아니라 세면대가 막히는 것처럼 스멀스멀 쌓이는 거였다. 그냥 좀 신경이 쓰이던 것에 불과했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수습할 수도 없이 커져 버리는 거였지.

121쪽

기후변화와 기후 불평등

소설에서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기후 불평등의 문제 역시 짚어내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만 이는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을 보호할 뿐이다. 벽 밖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모아 출퇴근용 보트를 사거나(<애로 역설이 성립할 때 소망의 불가능성>), 중고 오토바이로 폭우가 쏟아지지 않을 때를 틈타 아르바이트를 한다(<게>). 또는 재개발 단지로 선정되기 위해 주민들에게 호소하기도 한다(<리버사이드 아파트 여름맞이 안전 유의사항>).

기후 불평등은 소설 속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소득이 높을수록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배출하지만, 낮을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더 크게 입는다. 전 지구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주거 지역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더 크게 발생하고, 침수로 인한 피해 역시 반지하 등의 저소득 계층에게 집중된다**. 소설 속 상황은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는 현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는 눈앞의 이해득실에는 과민하게 반응하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재앙에 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61쪽

종말에 대해 생각하기

소설은 SF 적인 시각에서 종말에 접근한다. 몸집이 빌라 한 동과 맞먹는 거대한 게, 사람의 피부가 녹아떨어지는 해변, 사람을 공격해 분해하는 '청소부'.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공상'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분별한 쓰레기 매립, 그로 인한 환경오염.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 인류가 지금 삶의 방식을 지속했을 때 어떤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10307487

**)https://edata.ekn.kr/article/view/ekn202502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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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역사 - 소리로 말하고 함께 어울리다
로버트 필립 지음, 이석호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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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음악의 역사

<음악의 역사>(소소의책, 2025)는 제목 그대로 음악의 역사를 통시적, 그리고 공시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의 큰 특징은 선사시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음악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부터 서양까지 공시적으로도 바라본다는 점이다. 유럽의 음악에 치우쳐 있던 시각을 아시아, 아프리카로 넓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음악사 측면에서의 소소한 재미들

기원전 몇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의 음악사를 다룬 분량에 비해 책은 412쪽으로 비교적 얇다(?). 하지만 음악사 측면에서 깨알 같은 재미들을 놓치지 않았다. 헨리 8세의 (나에게만) 숨겨왔던 음악적 재능이라든지, 베토벤의 괴팍하지만 이상적인 성격, 서로 디스 하는 음악가들 등등의 흥미로운 사실들이 가득 차 있다.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책이 어렵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음악은 인간과 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음악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로 음악이 끊겼던 적은 없었다. 종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제한된 형태의 음악만 존재하던 시기는 있었어도 완전히 사라졌던 적은 없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포로들조차도 음악과 함께였다. 음악 없는 인간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포로수용소에서도 음악은 연주되고 작곡되었다. 심지어 나치의 유대인 강제 집단 수용소 담장 안에서마저 음악 소리가 들렸고, 유대인 수용자들은 그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에서도 음악을 썼다.

337쪽

음악에 대한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 책은 음악을 폭넓게 다룸으로써 다양한 음악에 대한 지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헨델, 바흐로부터 시작하는 서양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인도의 라가의 비교적 생소한 아시아의 전통음악, 비틀스, 롤링스톤즈 등의 비교적 현대 음악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 음악은 K 팝만 잠깐 다루어진 부분이 아쉽다. 전통 악보인 정간보, 단소, 향피리 등의 전통 악기, 춘앵무, 가인접목단 등의 전통 무용 등 알릴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아시아(특히 동아시아)의 음악에 대한 설명이 유럽보다 적은 데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분량이 적어 아쉽다.

책의 내용을 더 즐기려면

책의 내용을 즐기기 위해서는 옆에 유튜브를 두는 것이 좋다. 책에서 소개되는 음악을 바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믈란, 라가 등 평소 접해보지 않은 음악이나 재즈의 원류인 래그타임 등을 들으면서 해당 부분을 읽으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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