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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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종말 앞에서 살아가기

근미래. 기후변화로 인해 폭우가 쏟아져 도시 곳곳에 물이 차오른다. 온도가 올라가 집집마다 맹그로브를 기르고 아침에 발코니에 나가보면 날치가 베란다에 떨어져 있다. 밀물시간과 썰물시간이 있어 밀물시간대에는 집 안으로 물이 들어차기 십상이다. 오존돔과 물을 막을 벽이 설치되었지만 이는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다. 벽 밖에 있는 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허리까지 오는 물을 헤치고 목숨을 담보하여 200만 원 대의 물고기를 고급 아파트에 배달하거나, 죽은 아이의 관에 매달려 이름만 아는 사람의 집까지 표류한다. 또는 모두가 떠난 집에 남아 생물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서윤빈의 SF 연작 소설집

서윤빈은 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작품은 총 7편으로 각각 독립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게, 천왕성인, 블랙번은 이 소설들을 관통하는 제재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야기들이 만드는 촘촘한 연결망에 빠져들게 된다.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차오르는 종말

산업시대가 시작되면서 기후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 과학지는 "앞으로 100년간 일어날 변화의 속도가 지난 6500만 년 사이의 어떤 시기보다도 최소한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종말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점점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봄, 경상도 일대는 역대급의 산불을 겪었으며, 여름에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국지적인 호우에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한 인명피해 역시 있었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폭염과 폭우, 이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은 예상보다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에 잠기는 건 다른 세계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잘 몰라서 당하는 일인 줄로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갑자기 찾아오는 재앙이 아니라 세면대가 막히는 것처럼 스멀스멀 쌓이는 거였다. 그냥 좀 신경이 쓰이던 것에 불과했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수습할 수도 없이 커져 버리는 거였지.

121쪽

기후변화와 기후 불평등

소설에서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기후 불평등의 문제 역시 짚어내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만 이는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을 보호할 뿐이다. 벽 밖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모아 출퇴근용 보트를 사거나(<애로 역설이 성립할 때 소망의 불가능성>), 중고 오토바이로 폭우가 쏟아지지 않을 때를 틈타 아르바이트를 한다(<게>). 또는 재개발 단지로 선정되기 위해 주민들에게 호소하기도 한다(<리버사이드 아파트 여름맞이 안전 유의사항>).

기후 불평등은 소설 속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소득이 높을수록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배출하지만, 낮을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더 크게 입는다. 전 지구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주거 지역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더 크게 발생하고, 침수로 인한 피해 역시 반지하 등의 저소득 계층에게 집중된다**. 소설 속 상황은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는 현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는 눈앞의 이해득실에는 과민하게 반응하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재앙에 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61쪽

종말에 대해 생각하기

소설은 SF 적인 시각에서 종말에 접근한다. 몸집이 빌라 한 동과 맞먹는 거대한 게, 사람의 피부가 녹아떨어지는 해변, 사람을 공격해 분해하는 '청소부'.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공상'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분별한 쓰레기 매립, 그로 인한 환경오염.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 인류가 지금 삶의 방식을 지속했을 때 어떤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10307487

**)https://edata.ekn.kr/article/view/ekn202502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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