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까지, 나에게 흑해는 낯선 존재였다. 지중해, 에게 해는 직접 방문해 볼 기회도 있었고 휴양지로 가득한 도시여서 친숙했지만 흑해는 이름만 알고 있는 바다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약 없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흑해는 지중해보다 친숙한 이름이 됐다. 흑해에 자리하고 있는 크림반도, 그 안의 세바스토폴 해군 기지가 뉴스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흑해: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사계절, 2026)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흑해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설명한다. 목차는 시대별로 흑해 연안에서 중심적이었던 세력이 부르던 말로 되어있다. 이탈리아 상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500-1500년은 '마레 마조레(큰 바다)'라는 이탈리아어로, 러시아 제국이 흑해로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에는 '초르노예 모레(검은 바다)'라는 러시아어로 되어 있다.
흑해 연안은 1900년대 '근대 국가'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에는 다인종, 다문화가 자연스러웠다. 이탈리아 상인, 유대인, 아르메니아 기독교인, 튀르크계 무슬림들이 함께 살았다. 그들은 이웃이었고 교류가 활발했다. 근대 국가가 생겨난 후, 그들은 '돌려보낸다'는 명목하에 살고 있던 곳에서 추방당했고, 실제로 본 적 없는 국가를 위해 싸워야 했다.
우리는 흔히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우리의 독립 의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회에는 갈등과 분열의 시작이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인종 청소를 당했고 크림반도에 살던 무슬림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근대적 민족 개념이 이들에게는 폰토스 그리스인이 받아들인 것처럼 '재앙'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