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1950-1953)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 부머라고 부른다. 유럽의 베이비 부머 세대는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 이후에 태어났다. <레슨>(문학동네, 2025)은 베이비 부머 세대의 한 인물인 롤런드 베인스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다.
<레슨>에는 이언 매큐언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롤런드 베인스는 작가와 같은 해인 1948년에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 복무지"에서 보냈다. "비밀리에 입양되었던"(689쪽) 형이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언 매큐언은 영화 <어톤먼트>(조 라이트, 2007)의 원작인 <속죄>(문학동네, 2023)의 작가로 유명하다. 우아한 문체, 폭넓은 지식으로 그는 <타임스>에서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50인의 영국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장점은 <레슨>에서도 빛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한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비유들, 2차 세계 대전 독일의 상황부터 코로나 시기까지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적 지식과 영국 정치에 대한 해박함을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표류하듯 살아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책은 자신과 아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 앨리사를 생각하는 롤런드로 시작한다. 앨리사의 실종으로 롤런드는 범죄의 용의자가 되고 아들을 혼자 부양하기 위해 애쓴다. 오랜 시간 동안 앨리사의 결정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앨리사의 결단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며 표류하듯 살아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중략) 반면 앨리사는-그녀의 결단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롤런드는 자신의 삶을 자조한다.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한 것 없이 그저 표류하듯 살아왔다고 말이다. 그는 충분히 주체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450쪽까지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물론 앨리사나 다프니의 말처럼 코넬 선생에게 세뇌당했을 수도 있지만 거기서 도망쳤고, 학교를 나왔고 스스로의 학습터를 찾았다. 여행을 하면서, 정치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700쪽 가까이의 내용이 보여주듯, 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48년부터 2020년까지 그의 인생은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쿠바의 핵 위협, 소련의 붕괴, 독일 통일, 911 테러, 코로나 습격까지. 그의 부모 세대는 그를 보며 "축복받은 세대"라고 했지만 개개인의 삶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쟁 세대든 평화 세대든 사람들은 각자의 몫으로 짐을 지기 마련이다.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책에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지점이 넘친다. 사랑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앨리사는 다리를 절단하고 나서야 롤런드를 만난다. 그는 롤런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이용해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라는 걸 절대 잊지 않았으니까.
앨리사는 정말로 롤런드를 사랑했을까? 롤런드는 60대가 다 되어서야 대프니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그를 잃고 오랜 기간을 괴로워한다. 롤런드와 대프니는 어떤 사랑이었을까? 그 사랑은 롤런드와 앨리사, 대프니와 피터 사이의 사랑과는 달랐을까?
예술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넘친다. 앨리사는 자신의 예술을 위해 롤런드를 떠난다. 엄마 노릇 때문에 자신이 침몰한다고 이야기한다. 로웰의 시 낭송회에서 한 여성은 남성 예술가들이 '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한다.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힘을 갖는가.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예술과 일상은 공존할 수 없는가.
<레슨>은 롤런드 베인스의 일생을 통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을 상기시킨다. '예술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