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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끼는 부지런하다. 매일 새벽 5~7km를 달리고 오후까지 글을 쓴다. 그리고 그는 몇 가지 소재를 부지런히 다룬다. 여자, 섹스, 도시, 고양이, 재즈, 클래식이다. 그 중 여자 이야기는 어떤 소설에도 빠지는 법이 없다(정작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 매우 평범하고 평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단편집 제목은 작정을 했는지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궁금하다. 읽고 싶다. 색채 없는 어쩌구보다는 훨씬.
소설은 '남자들'보다는 남자들이 바라본 여자에 대한 것이다. 과연 여자란 무엇일까? 갑자기 여자가 없어져버린 남자들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아이를 유산한 후 상대 배우와 계속 육체관계를 맺은 배우 아내를, 자신이 출장 간 사이 동료와 섹스하던 아내를, 간호사로 일하며 바람을 피우고 잠자리에서 옛 이야기를 하던 한 여자를, 생각하고 추억한다.
그런데 알 수가 없다.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몇 십년을 함께 살아도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 않았던가, 라는 탄식만 나온다. 하루끼가 좋아하는 소재인 고양이는 여기서 여자와 등치된다. 오고 싶을 때 오고 한참 애교를 부리다가도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사라져 버린다. 그 고유의 흐름을 남자는 이해하지 못하고 잡아둘 수도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술을 마신다. '가후쿠가 보기에,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또 음악을 듣는다.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에서 기노는 오랜만에 마음껏 음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바짝 마른 땅이 빗물을 빨아들이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고독과 침묵과 적막을 받아들였다. 아트 테이텀의 피아노 솔로 음반을 자주 들었다. 현재 그의 심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다.
그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에는 하루끼 소설 특유의 뜬금없는 폭력과(기노), 느닷없는 재회(예스터데이)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전작에서 많이 본 장치이지만 읽을 때마다 재미있는 것은 하루끼의 능력이다. 결국엔 여자에 대한 불가지론을 피면서, 하루끼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린다.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그건 병 같은 거에요. 가후쿠 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 들볶았던 것도,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 1순위에 꼽히는 작가가 내리는 결론이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또 어딘지 모르게 설득력 있다. 하긴 어딘지 모르게 재미있고 어딘지 모르게 흥미로우며 어딘지 모르게 빠져드는 게 하루끼 문학의 매력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하루끼가 사랑하는 도시의 뒷골목과 나른한 고양이와 그리고 스쳐간 여인의 뒷모습과 닮아있다. 어딘지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