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내는 용기 - 아들러의 내 인생 애프터서비스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엑스오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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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론의 관점에서 보면, 화가 나서 큰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큰 소리를 지르기 위해 화를 내는 겁니다. 불안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그만둘 때는 그럴 만한 목적이 먼저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이 뒤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조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내 말을 듣게 하려고 분노라는 감정을 사용하는 겁니다. 타인의 동정을 얻기 위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도 같은 이치지요. p. 34

목적론은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에 주목합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알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예컨데 ‘인간은 누구나 남의 실수를 비웃는다’는 세계상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앞두고 긴장합니다. ‘1등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이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험이 어려울 때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요. p. 56

아들러는 어떤 외적 요인에 의해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것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세상을 위험한 곳이라고 여기고 타인을 적으로 보는 사람은 타자와의 관계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타자에게 단점이나 결점이 있어서 싫어진 게 아니라, 그가 싫어져서 단점이나 결점이 보이는 겁니다. p. 83~84

“열등 콤플렉스를 고백한 바로 그 순간 생활의 어려움을 넌지시 암시한다. 어떤 상황의 원인이 될 만한 다른 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모나 가족, 충분하게 교육받지 못한 과거 혹은 어떤 사고, 방해, 억압을 거론할지도 모른다.” p. 122

첫째, 신경증자가 ‘만일 이 증상이 없었다면……’이라고 말할 때, 그 목적은 경쟁에서 지거나 체면이 구겨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도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둘째, 신경증자는 과제를 스스로 해겨할 수 없다는 생각에 타자에게 의존적으로 문제 해결을 맡깁니다. 열등 콤플렉스가 깊은 사람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을 구원이라고 여깁니다. 
셋째, 신경증자는 우울, 음주, 환각 등의 증상을 통해 주위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불평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병에 걸린 사람을 내버려두지 못하지요. 아이가 불안에 사로잡혀 밖에 나갈 수 없다고 하면 부모는 외면하지 못하지요. (……) 화를 냄으로써 상대를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사람, 슬픔을 표현함으로써 누군가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려는 사람, 타자를 비난하는 사람은 모두 타인을 지배하려는, 잘못된 우월성 추구의 사례이지요. 잘못된 우월성 추구는 공동체 감각에 반합니다. p. 122~123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며, 불가능한 것만 아니라면 대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들러는 로마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인용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이 되지 않도록 없애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p. 159

인생의 과제 대부분은 대인관계에 관한 것이라서 타자를 적으로 생각하는 한 그 관계가 좋아질 리 없습니다. 타자는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생각을 해야 인생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p. 162

타자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괘념치 않는 것도, 단점을 장점으로 보는 것도, 나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공헌감을 갖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유익한 일을 할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나에게는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지요. 아들러 심리학이 칭찬 대신 용기를 주라고 권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p. 174

일단 과제가 주어지면 가능한 한 조금씩이라도 시작하려고 들지요. 이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아들러는 이것을 ‘불완전한 용기’ ‘실패할 용기’라 불렀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처음부터 과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태도이지요. 똑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는 건 문제지만, 실패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지요. p. 184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가 8살 때 처음으로 야구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뉴욕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와 직접 만났지요. 메이스는 유니폼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서 오스터의 눈앞에 서 있었지요. 오스터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사인해주세요.”
“응. 좋아. 그런데 꼬마야, 너 연필은 갖고 있니?”
그런데 오스터는 연필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주변에 연필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미안하구나.”
메이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야구장을 떠났습니다. 
그날 밤 이후 오스터는 어디에 가든 연필을 갖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연필로 뭔가를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 준비를 게을리 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번 연필이 없다는 이유로 불의의 기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두 번 다시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달리 배운 건 없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배웠다. 주머니에 연필이 있다면 언젠가 그것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작가가 되었다.” p. 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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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생각한대로, 꿈꾸는대로, 의지만 강하다면 모든 것이 이뤄질까? 이런 생각이 줄기차게 나오는 미국 자기계발서의 근본 사상이 된 심리학자 아들러의 사상 해설서, '버텨내는 용기'는 약간 다른 생각을 전한다. 물론 외적인 요인이 성격 형성에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근본 생각은 같다. 그러나 자기계발, 발전이 오로지 개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이뤄지면 안된다는 것에서 흔한 자기계발서와 아들러의 사상은 차이가 있다. 

이른바 '공동체의식'. 타인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지배하려고 들기보다는, 그것보다 큰 그림에서, 타인에게 도움이 될 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갖는 피해의식, 온갖 트라우마에 대한 설명도 다르다. 그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싫기 때문에 생겨난 증상이라고 아들러는 설명한다. 즉 우리가 핑계대기 위해 무수히 갖다붙이는 심리학 용어들의 용례가 잘못된 것이다. 

문득 이렇게 하나씩 근거 없는 핑계와 이유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생각했다. 그곳에는 아마 아무 것도 없는, 발가벗은 내가 있을 것이다. 그 맨몸의 나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가, 그것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즉 공동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그 후에 남는다. 

차분하고 단정한 문체로 써내려간 책은 읽기 쉬웠고, 난해하지 않고 올곧은 주제 의식이 아들러의 사상과 닮아 있었다. 나의 하루가, 늘 이런 용기가 필요하기에,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것이 무수히 나를 기다리기에, 실패할지라도 조금씩 해나가야 하기에, 이 책을 읽어나가며 마음 한 켠에서 새로운 종류의 용기가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용기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닌,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그리고 많은 것을 아우르는 품 넓은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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