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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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에 아마 처음 소개되는 홍콩 미스터리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가 동했던 책. 1967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홍콩의 역사를 관통하는 경찰 소설이라니, 절로 두기봉 감독의 〈PTU2003〉나 〈대사건大事件, 2004〉, 〈신탐神探, 2007〉과 같은 영화에서 접했던 홍콩 경찰들의 제복과 영어 표현 등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국과 중국, 서양과 동양, 북경어와 광둥어와 영어, 대륙과 섬이 뒤엉키고 충돌하며 웃자란 기이한 세계. 그런 세계를 무대로 한 『경관의 피』 같은 작품일까?

작가 찬호께이의 야심은 그 정도가 아니다. 『13·67』은 수사성공률 백 퍼센트의 천재 경찰 관전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천재 탐정을 내세운 작품답게, 각 단편은 미스터리의 발생-단서의 제시-탐정의 해결로 이루어진 본격 미스터리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여섯 개의 본격 미스터리 단편이 2013년에서부터 1967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관전둬의 삶을 역추적하는 동안 홍콩이라는 시공간이 플롯 뒤편에서 서서히 쌓여가며 모습을 드러낸다.

듣기에는 제법 그럴듯하지만 과연 그런 게 가능할까? 천재 탐정이 주어진 단서를 조합하여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본격 미스터리와 범죄 수법이나 해결보다는 심리와 환경에 주목하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단편 연작의 구조를 통해 상호협력하며 공존한다는 게?

가능했다. 그것도 간신히/억지로 해낸 정도가 아니라 어느 쪽에서 보아도 흠 잡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히 해냈다. 『13·67』은 한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내는 바람에 오히려 그 굉장함을 다 실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소재부터 그렇다. 본격 미스터리 단편이라니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탐정의 장광설을 떠올리게 되지만, 작가는 안이한 예상을 비웃듯 폭넓게 소재를 취한다. 여기에는 탐정이 용의자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범인을 짚어내는 지극히 고전적인 추리 이야기도 있고, 두 집단 간의 알력을 다룬 갱스터 이야기도 있고,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사건을 쫓아다니는 이야기도 있고, 건물에 숨어든 범죄자를 검거하려는 경찰 작전을 다루는 지극히 홍콩 영화스러운 이야기도 있고, 유괴 협박범과 사투를 벌이는 『킹의 몸값』 같은 이야기도 있으며, 제한시간을 설정하고 화급을 다투며 추격전을 벌이는 테러/암살 이야기도 있다. 각각 완전히 다른 장르, 다른 화법으로 풀어낼 만한 소재며, 실제로 각 소재가 지니는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대놓고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을 추구한 첫 번째 단편을 제외하면 추리 게임을 위해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억지로 제한하고 있다는 인상도 없다. 그럼에도 여섯 작품 모두는 놀랄 만큼 밀도 있고 공정한 본격 미스터리로 수렴한다. 잠시 숨 돌릴 겸 짚고 넘어간 줄로만 알았던 인물/풍경 묘사마저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핵심 단서가 되어 돌아와 뒤통수를 친다.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 있는 역동적인 세계를 그려놓고는 그 안에서 엄정한 논리의 폐쇄계를 세우고야 만다는 곡예가 읽는 기쁨을 두 배 세 배로 늘린다. 그런 와중에 여섯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의 변화도 담아낸다. 또 경계지대에 놓인 홍콩이라는 세계/경찰이라는 세계에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갖추어야 할 윤리라는 주제도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구상과 목표가 뚜렷하고 그 실천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정확한 미스터리를, 본격과 사회파의 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미스터리를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보통 나는 미스터리를 읽을 때 엄정한 논리로만 구축된 세계를 답답해하며, 논리 회로 안에 수렴되지 못한 채 남는 잉여 요소에 더 끌리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도 대개는 구상과 목표가 뚜렷할지언정 실천은 다소 어긋나거나 과하다는 기분을 주는 작품들, 사건의 해결 여부와 무관한 감흥을 남기는 작품들이다. 헌데 『13·67』은 미스터리의 그러한 뒷맛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해선가 모든 면에서 작품 속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엄정함 또한 굳건히 유지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대로 세공한 작품. 그러면서도 그 설계 자체가 워낙 거대하여 도저히 한 창작자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니는 작고 인공적인 세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작품. 아무래도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모든 면에서 얄밉도록 훌륭하다는 점뿐인 듯하다. 천재 탐정 관전둬처럼.

출판사로서는 한국에서는 낯선 홍콩 미스터리를 소개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을 텐데,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모습을 보니 다행히 숨은 걸작으로 묻히지 않고 널리 사랑받을 수 있을 듯하다. 모쪼록 어서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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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1호 - 창간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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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엘릭시르에서 발간한 미스터리 전문 격월간지 《미스테리아》 창간호를 읽었다. 편집장은 『범죄소설』의 저자이자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죽이는 책』 등의 역자인 김용언. 미스터리 애호가/전문가/번역자일 뿐만 아니라 《KINO》, 《FILM 2.0》, 《씨네21》의 기자였고 《판타스틱》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경력을 생각하면 실은 《미스테리아》를 창간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공상도 해보게 된다. 《판타스틱》 폐간 이후 한국에서 장르 소설 전문 잡지를 낸다는 건 어지간한 뱃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테니.

격월간지니까 천천히 읽자고 생각했는데, 쉬엄쉬엄 읽었음에도 이틀 만에 모든 글을 다 읽고 말았다. 기사야 그렇다 치고 소설까지 다 읽을 줄은 나도 미처 몰랐는데. 읽다가 좋아서 죽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도, 슬렁슬렁 큰 불만 없이 다 재미있게 읽었다.

수록하고 있는 글을 크게 기사 편과 소설 편으로 나누자면, 관심은 기사 편이 모을 만한데 더 푹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은 쪽은 소설 편이었다. 장르 전문 잡지가 늘 그렇듯 독자 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그래서인지 기사의 무게는 다소 가볍다는 인상. "MYSTERY SALON"이야 지금 이 정도가 적절하겠지만, 가령 "취미는 독서"나 "SCREENSELLER", "TOON" 등은 조금 더 무거운 기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성의 있는 감상문 언저리에 머무는 편을 지향한 듯하다. "취미는 독서"는 비평보다는 소개가 우선인 듯하고, 창간호부터 본격 영화 잡지나 만화 잡지 분위기를 풍겨도 곤란했을 테니까. 참, "취미는 독서" 앞에 한 장을 할애하여 지난 두 달 동안 출간된 미스터리 목록을 첨부한 시도도 좋았다. 출간작 수가 애매하게 늘어나거나 줄면 어쩌나 싶긴 하지만, 알아서 하겠지. "한낮의 미스터리"는 일관성이 있는 하나의 섹션이라기보다는 느슨한 기준 속에서 자유 주제를 풀어놓을 수 있는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품질 유지가 더 중요할 듯하다.

이런 가벼운 기사들만 있었더라면 골수팬들은 아무래도 불만이었을 텐데, 조금 더 전문성 있는 특집 기사, 인터뷰, 논픽션 등이 반대편에서 적절하게 무게를 잡아주고 있다. 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가 나눈 밀실에 관한 대담은 일본에서 출간된 책 『밀실 입문』의 번역본.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하기에는 위험하지만 초심자부터 골수팬까지 고루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한 주제를 잘 골랐다 싶다. 데니스 루헤인과 미쓰다 신조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진행한 서면 인터뷰였다. 국내 최초 인터뷰라는 의의는 있고 내용도 나쁘지는 않지만, 서면 인터뷰의 한계가 아쉬움을 남겼다(질문에 대한 답이 중복된달지, 대답에 대한 후속 질문을 할 수 없달지). 하기야 작가 인터뷰를 위해 비행기 타고 갈 예산은 없을 테고, 왕성히 활동하는 유명 작가이니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문답을 이어나갈 수도 없었겠지. 잡지가 꾸준히 잘 되고 여유가 좀 생긴다면 1~2년, 혹은 10호에 한 번 정도는 스카이프 등을 이용해서 좀 더 긴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보고 싶다. 주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 미스터리 시장에 관해 논하는 대담 기사가 역시 대화의 생생함은 더 인상적이었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SF보다야 훨씬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 있는 시장이라서 그런가 이야기 자체도 신선했고. 무엇보다도 장르 전문 잡지 창간호라고 해서 장르의 기원부터 해명하고 고담준론을 내세우기보다는 곧장 시장 현황! 누가 읽나! 뭐가 팔리나! 전망은 어떤가! 로 들어가서 좋았다.

기사 중에서 가장 부드럽게 잘 읽혔던 부분은 법의학자 유성호의 "NONFICTION". 〈그것이 알고 싶다〉로 유명하다는데 TV를 안 봐서 모르겠고, 하여튼 전문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범죄 실화를 다룬다는 게 좋았다. 최근에 에드 맥베인의 『사기꾼』을 읽으면서 거기 등장하는 형사 하나가 형사실에서 범죄 잡지─소설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다룬─읽는 모습이 부러웠거든. 다만 사건 관계자가 아닌 독자로서는 실제로 있었던 불행을 흥밋거리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죄책감도 살짝 들었다. 글 말미에 부검의 필요성이라는 교훈을 강조해준 것도 혹시 그 때문이었을까. "MISSING LINK"는 사실 어떤 기획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미스터리 장르 안으로 편입되지 않은 한국 현대 소설 속의 범죄를 조명하겠다는 건가? 그런 맥락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저자 박해천은 아주 좋은 인선이지만, 이후의 필자들이 관건일 듯하다. 어쨌든 일단 박해천의 글 자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부록처럼 즐겁게 읽었다. 겸사겸사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박해천의 「집안의 괴물들」과 아리스가와 아리스-야스이 도시오의 『밀실 입문』은 연재 기사다. 과거 《판타스틱》 때 느낀 건데, 읽을거리 볼거리가 풍부한 세상이라 그런지 월간 이상의 발행 기간을 두는 잡지에 실린 연재를 따라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소설은. 더구나 《미스테리아》는 격월간 잡지라서 그 점을 걱정했는데, 일단 이 두 연재물은 1호 안에서 어느 정도 완결성을 지니거나 시간 간격을 두고 이어 읽어도 크게 곤혹스럽지 않을 듯하여 다행이었다.

소설 편은 읽기 전에 약간 긴장했다. 《판타스틱》은 결국 거기에 실린 소설 때문에 기억에 남는 잡지가 되었지만, 정작 발간 당시 내가 《판타스틱》에서 가장 읽기 어려워했던 부분이 소설이었다. 재미가 없거나(미안한 얘기지만 한국 작가들의 글이 주로 그랬다), 재미가 있을 만하면 연재물이라서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던 탓이다. 한국 창작 단편 넷, 번역 단편 하나를 실은 《미스테리아》는 어떨까?

먼저 배명훈의 「배신하는 별」이 수록된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실린 작품들의 순서는 어떻게 정했을까? 번역작은 맨 뒤로 민다고 해도, 한국 작품의 순서는 저자나 제목의 가나다순도 아니니 편집부의 해석이 작용했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하필 「배신하는 별」이 맨 앞이라는 점은 상당한 모험으로 다가왔다. 우선 배명훈은 SF로 이름난 작가지 미스터리로 이름난 작가는 아니다. 게다가 「배신하는 별」 맨 앞 장에 실린 작가 소개에 따르면 "이번에 소개하는 단편 「배신하는 별」은 웹진 《문장》의 청소년 문학 공간 '글틴'에 게재된 「뒷면의 우주」에 이어지는 후속편"이라고 한다. 그럼 먼저 '글틴'에 가서 「뒷면의 우주」를 읽고 오라는 얘기인가? 왜 그런 작품을 맨 앞에 실었지?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모험의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배신하는 별」은 익숙한 일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며, SF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고유의 세계를 설정해 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처음부터 친절하게 안내해주지도 않는다. 장르의 문제를 떠나서 화법상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더구나 다섯 작품 중 길이도 가장 길다. 여러모로 독자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배치다. 신고식인가?

「배신하는 별」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의 기록을 되짚어 조직의 배신자를 잡아낸다는 첩보 소설의 설정을 바탕으로 에드 맥베인 같은 경찰 수사물의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한 가지 수수께끼를 두 번 뒤집어 다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이중의 트릭이 놓여 있다. 이 트릭은 발상은 매우 간단하지만─그중 하나는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 2015〉에도 쓰여 잠시 웃었다─작품 내내 꼼꼼히 구축한 공간 구조와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며, 과학적인 동시에 시적이다. 그리고 그 시적인 정취가 다시 작품 전반의 정서와 인물의 감정을 지배한다. 미스터리와 그 해결책이 플롯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세계 자체의 형상, 인물이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 감정까지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밀도가 높은 수작이다. 배경 정도로 치부하기 쉬운 공간 묘사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데, 내가 편집자였다면 작품이 끝난 다음 페이지에 해당 공간을 묘사하는 삽화를 넣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렸을 것 같다. 또한 서로 다른 시공간을 접합하여 제3의 시선을 찾아내는, 몹시 시각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로 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여하간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다 읽은 다음에는 박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좋았다.

송시우의 「누구의 돌」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고백을 통해 전개되는 심리 서스펜스 복수극이다. 미스터리 자체는 현재와 과거와 대과거를 오가며 정보를 지연했다 풀어내는 서술자의 화법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유의 소설이 그렇듯 다 읽고 나면 왜 화자가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하게, 뜸 들여가며 했느냐는 의문은 남지만, 그거야 소설 창작 상의 관습으로 눈감아줄 수 있고, 어쨌든 보이지 않는 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진상을 알기 위해 서둘러 책장을 넘기도록 하는 힘은 좋았다. 남성 캐릭터들이 죄다 생기가 부족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느껴지긴 했으나 이런 일을 겪은 여성 화자의 관찰로 보자면 역시 불만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복수극으로서의 결말이 나쁘지 않았다. 화자가 복수자가 아니라서 쾌감은 없지만, 이 정도면 DJUNA가 『가능한 꿈의 공간들』에서 부르짖었던 복수다운 복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무대 때문인지 에드거 앨런 포 생각도 조금 났고(일종의 오마주?). 다만 복수의 성격을 말하기 위해 킬 빌 연작을 인용한 것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보편적인 인용이어서 다소 민망했으며, 무엇보다도 오류가 있다. 13쪽에서 화자는 대릴 해나가 간호사 분장을 하고 우마 서먼에게 독 주사를 놓기 위해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이 〈킬 빌 Vol. 2Kill Bill Vol. 2, 2004〉에 나온다고 말하는데, 해당 장면은 〈킬 빌 Vol. 1Kill Bill Vol. 1, 2003〉에 나온다. 대릴 해나가 본격 활약하는 작품이 〈킬 빌 Vol. 2〉라서 착각한 듯. 물론 1인칭 주인공 시점 화자의 오류이므로 캐릭터의 착각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 미스터리 작가로 가장 이름이 익숙한 작가는 세 번째 작품 「구석의 노인」을 쓴 도진기였다. 안 그래도 모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다음 이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워밍업을 하게 된 셈이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에마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시리즈에 가볍게 오마주를 바치는 작품. 구석의 노인이라는 제목과 설정도 그렇지만, 그보다도 1인칭 주인공 시점 서술자의 태도랄지 진상을 밝혀내는 탐정의 시선 자체가 굉장히 구식 미스터리스러웠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같은 책에서 접할 수 있는 작품 같달까. 그 자체로 추구하는 바에는 무리가 없는 작품이라 걸리는 부분 없이 즐겁게 읽었지만, 아무래도 이벤트성 단편 같아서 도진기의 장편을 읽기 위한 워밍업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싶다.

김서진의 「신드롬」은 무엇보다도 집필 시기가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메르스 사태를 직접 반영하고 있다. 올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논의와 직접 연결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어쨌든 최근 특히 자주 거론되는 가정 폭력, 여성 혐오 문제도 우회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장르 미스터리 이전에 '지금 이곳'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목표가 더 강해 보였다. 숨은 진상을 담고 있는 미스터리인 척 나가다가 〈환상 특급〉에 나왔을 법한 미해결 미스터리 혹은 공포로 빠지는데, 그런 작품들이 종종 그렇듯 미스터리를 내다 버린다는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나야 미해결 미스터리도 좋아하니까 그럭저럭 읽었지만.

로렌스 블록의 「말을 탄 사나이 켈러」는 과거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에 실렸던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과 같은 암살자 켈러 시리즈.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을 읽은 지도 오래됐고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시큰둥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완전히 취향 직격이었다. 왜냐면… 서부극이거든! 켈러가 암살 의뢰를 받고 떠나는 길에 공항에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서부 소설을 샀다가 얼결에 서부 사나이의 환상에 해롱거려 작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구성 자체는 매우 뻔하지만 보이는 공간마다 상황마다 서부극을 떠올리는 켈러의 환상에 푹 젖는다면 그의 곤경에 동참하기는 어렵지 않다. 결국 서사보다는 캐릭터가 핵심인 소설이었던 셈인데, 그 캐릭터을 몹시 즐겼던 나로서는 출간 예정이라는 켈러 시리즈 단편집 『히트맨』을 무척 기대하게 됐다. 다만 이건 미국 고전기 서부극 팬의 입장이고, 과연 같은 방식으로 이 작품을 즐길 독자─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랜돌프 스콧과 잭 엘람이 더 중요하게 거론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 읽은 다음 작품 순서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배신하는 별」 외에 다른 작품이 맨 앞에 놓였더라면 내 반응은 어땠을까. 이모저모 생각해 보다가, 위험한 일이기는 했어도 결국 「배신하는 별」이 맨 앞에 놓였기 때문에 다섯 편 모두를 이 정도로 즐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였다면 「누구의 돌」이나 「구석의 노인」처럼 더 쉬운 작품을 앞에 놓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첫 작품부터 '이 작품은 이건 좋은데 이런 허술함은 있군…' 하는 식으로 팔짱 끼면서 읽느라 소설 편 전체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다음 호까지 두 달이나 남았으니 나중에 읽자는 식으로 접어두었다가 영영 읽지 않게 됐을지도 모른다. 「배신하는 별」의 타협하지 않는 난이도와 성취, 그리고 그 작품을 선두에 내세운 편집부의 자신감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

책 디자인에는 지식도 없고 감각도 없지만, 몇 마디만 늘어놓자면─우선 많은 독자들이 거론한 표지 재질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을 아스테이지로 싸는 편인데, 이 표지는 감촉이 마음에 들어서 아직도 표지를 쌀지 말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타이포나 글의 배치에서는 《계간 미스터리》나 《판타스틱》이 되지 않고 외양부터 세련된 모습으로 다가가겠다는 일념이 느껴진다. 다만 지속성이 있는 디자인인지 아니면 매호 디자인을 다시 고민할 셈인지 모르겠다. 어쩐지 독립 출판 잡지에서 종종 보던 일회성의 실험이라는 인상도 받아서.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만화책에서 종종 있는 일이지만, 제본 때문에 페이지 안쪽이 보이지 않아 디자인이 망가지거나 글을 읽기 어려워지는 점이 살짝 신경 쓰였다(후자는 124~125쪽의 "나의 기획서"를 두고 하는 말. 기대했던 꼭지였는데 이 편집 문제 때문에 영업이 잘 먹히지 않았던 듯하다). 개선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여하튼 이렇게 첫발은 내디뎠고, 퍽 만족스러웠다. 부디 창간 및 부록 어드밴티지에 힘입은 단발성 호응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가는 잡지가 되기를 바란다. 참, 가격이 "창간호 특별가"던데, 그럼 앞으로 더 저렴해지는 건지, 더 비싸지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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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세트 - 전3권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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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지는 띠지일 것 같은데 그보다도 제목이 몹시 마음에 걸리네요. 아무리 영화 덕을 보고 싶으셨어도 그렇지, 엄연히 각자 제목이 따로 있는 작품들인데 ˝차일드 44˝ 아래에 부제로 귀속시키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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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전 1 - S Novel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김대진 그림 / ㈜소미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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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만으로도 충격적이건만, 글자체와 글자 색깔도 그에 못지 않게 엉망이라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지경이다. 작품을 향한 악의마저 느껴지는 듯한 저 자태에 얼이 빠져 혹시 책을 처음 만들어보는 출판사는 아닐까 하고 검색해봤을 정도. 별을 세 개나 주신 아즈다 님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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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
김성태 지음 / 은행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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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역사란 유행사 비슷하게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탄생부터 시대순으로 그때그때 유명했던 사조를 설명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나열하며 역사를 정리하는 태도가 보편적이라는 소리다. 가령 세계 영화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담아내려 하는 '교과서'적인 저서인 크리스틴 톰슨/데이빗 보드웰의 『영화사』나 제프리 노웰 스미스가 엮은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도 그런 식이다. 세계영화사뿐만 아니라 지역 영화의 역사도 비슷한 처지로, 김미현의 『한국 영화사』나 사토 다다오의 『일본 영화 이야기』도 유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 접근 방식 자체가 나쁘다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 기록'에서 벗어나 특정한 관점을 중심으로 흐름을 파악하고 정리하며 의의를 부여하고 발견해내고자 하는 역사 기술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문제다.

 요 몇 주 동안 즐겁게 읽은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는 영화사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개별 영화의 의의를 따지거나 구체적인 산업/사조의 양태를 정리하며 대표적인 작품의 목록을 나열하거나 연도를 기록하려 애쓰지 않는다. 저자가 다루는 대상은 개별 영화들(film)이 아니라 개별 영화들이 지시하고 있는 '영화'(cinema)라는 개념 자체다. 우리가 막연하게 '영화'라고 부르고 있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인류 문화 가운데 그것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거기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은 어떻게 무시되거나 발전했는가? 영화는 왜 중대한 변화를 겪었으며 그러한 변화가 가리키는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막연하게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라고 나누어 부르는 영화의 큰 두 덩어리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다른가?

 말하자면 이것은 개념의 역사다. 저자는 '영화'의 존재와 변천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작품이나 사조를 예로 들지 않는다. 그가 다루는 '영화'는 개별 작품들의 어떤 부분이 가리키는 것,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개념이지 특정한 영화 몇 편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을 이해할 때 비로소 한 편의 영화가 좋네 나쁘네 어느 것이 더 낫네 별점이 몇 개네 하는 식의 심사위원 같은 태도에서 벗어나 더 큰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대신 다른 예술과 다른 영화 이미지의 속성에 관해서, 그것이 현상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 현상과 본질에 관한 합리주의/비합리주의의 다른 태도에 관해서, 예술의 고전성과 현대성에 관해서 말한다. 모든 논의가 특히 영화와 현상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만큼 베르그송을 기반으로 하여 들뢰즈의 『시네마』를 훑고 있다.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이름을 듣는 순간 넌덜머리를 낼 법도 하지만,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는 쓸데없이 철학을 끌어와 자신을 심오한 척 드높이려는 얼치기 영화-철학 서적이 아니다. 영화의 고유함을 말하려면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다루어야만 하기에 철학의 흐름이 개입할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그렇게 끌고 들어온 철학적 사유를 가능한 한 명쾌하게 풀어쓰고 있다. 논문을 쓰거나 연구를 위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를 테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 따로 철학서를 읽으며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철학적 개념들을 독자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전제하지도 않으며, '영화'의 특질을 중심으로 논의를 펴고 있기에 이해도 한결 쉽다.

 더불어 논문을 기반으로 삼은 학술적 글쓰기가 아니라 강의록을 정리하여 풀어낸 글이기에 한결 친근한 맛이 있다. 독자/학생들이 논의를 따라오지 못할까봐 거듭해서 앞에 전개했던 논의를 정리하고 다시 한 발을 더 내딛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은 독자라면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한다며 되레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소개하며 파고드는 책인 만큼 그 정도의 노파심이랄까 배려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단, 영화라는 것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청각 매체' 이상의 것이며 아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역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그런 생각에 이르도록 해주는 영화적 체험을 해본 적이 없다면, 고전영화/현대영화의 막연한 구분조차 금시초문이라면, 저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낯설어 다가서기 어렵다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저자는 철학에 관해서는 문외한들의 배려를 아끼지 않는 편이지만 도리어 영화 문외한에 대한 배려는 덜한 편이다. 예를 들어 후반부에서는 '데쿠파주나 몽타주, 플랑-세캉스 같은 개념이 흔히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전제를 토대로 논의를 펴면서 그 의의를 되짚고 있는데, 그러한 개념 자체를 처음 듣는 독자라면 소화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아울러 저자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탓인지 프랑스어 발음에 근접한 표기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둔다.)

 그럼에도 개별 영화 비평에서 벗어나 '영화' 자체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고 싶은 영화 애호가라면 일독, 재독, 삼독을 권한다. 관성에 가깝게 이어져 온 기존의 막연한 이해를 반박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원론에서부터 다시 대상을 생각하도록 하고, 그 이해를 토대로 역사를 다시 쓴다. 한국어 영화 서적 중 이만한 집중력과 독창성을 갖추고 지도를 그려주는 안내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좋은 책이 그러하듯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저자도 책도 유명하지 않아서 복간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몇몇 지인들에게는 선물해 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아쉽게 됐다. 도서관을 이용해주시기를 바라며 추천으로 만족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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