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에 아마 처음 소개되는 홍콩 미스터리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가 동했던 책. 1967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홍콩의 역사를 관통하는 경찰 소설이라니, 절로 두기봉 감독의 〈PTU2003〉나 〈대사건大事件, 2004〉, 〈신탐神探, 2007〉과 같은 영화에서 접했던 홍콩 경찰들의 제복과 영어 표현 등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국과 중국, 서양과 동양, 북경어와 광둥어와 영어, 대륙과 섬이 뒤엉키고 충돌하며 웃자란 기이한 세계. 그런 세계를 무대로 한 『경관의 피』 같은 작품일까?

작가 찬호께이의 야심은 그 정도가 아니다. 『13·67』은 수사성공률 백 퍼센트의 천재 경찰 관전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천재 탐정을 내세운 작품답게, 각 단편은 미스터리의 발생-단서의 제시-탐정의 해결로 이루어진 본격 미스터리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여섯 개의 본격 미스터리 단편이 2013년에서부터 1967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관전둬의 삶을 역추적하는 동안 홍콩이라는 시공간이 플롯 뒤편에서 서서히 쌓여가며 모습을 드러낸다.

듣기에는 제법 그럴듯하지만 과연 그런 게 가능할까? 천재 탐정이 주어진 단서를 조합하여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본격 미스터리와 범죄 수법이나 해결보다는 심리와 환경에 주목하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단편 연작의 구조를 통해 상호협력하며 공존한다는 게?

가능했다. 그것도 간신히/억지로 해낸 정도가 아니라 어느 쪽에서 보아도 흠 잡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히 해냈다. 『13·67』은 한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내는 바람에 오히려 그 굉장함을 다 실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소재부터 그렇다. 본격 미스터리 단편이라니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탐정의 장광설을 떠올리게 되지만, 작가는 안이한 예상을 비웃듯 폭넓게 소재를 취한다. 여기에는 탐정이 용의자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범인을 짚어내는 지극히 고전적인 추리 이야기도 있고, 두 집단 간의 알력을 다룬 갱스터 이야기도 있고,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사건을 쫓아다니는 이야기도 있고, 건물에 숨어든 범죄자를 검거하려는 경찰 작전을 다루는 지극히 홍콩 영화스러운 이야기도 있고, 유괴 협박범과 사투를 벌이는 『킹의 몸값』 같은 이야기도 있으며, 제한시간을 설정하고 화급을 다투며 추격전을 벌이는 테러/암살 이야기도 있다. 각각 완전히 다른 장르, 다른 화법으로 풀어낼 만한 소재며, 실제로 각 소재가 지니는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대놓고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을 추구한 첫 번째 단편을 제외하면 추리 게임을 위해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억지로 제한하고 있다는 인상도 없다. 그럼에도 여섯 작품 모두는 놀랄 만큼 밀도 있고 공정한 본격 미스터리로 수렴한다. 잠시 숨 돌릴 겸 짚고 넘어간 줄로만 알았던 인물/풍경 묘사마저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핵심 단서가 되어 돌아와 뒤통수를 친다.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 있는 역동적인 세계를 그려놓고는 그 안에서 엄정한 논리의 폐쇄계를 세우고야 만다는 곡예가 읽는 기쁨을 두 배 세 배로 늘린다. 그런 와중에 여섯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의 변화도 담아낸다. 또 경계지대에 놓인 홍콩이라는 세계/경찰이라는 세계에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갖추어야 할 윤리라는 주제도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구상과 목표가 뚜렷하고 그 실천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정확한 미스터리를, 본격과 사회파의 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미스터리를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보통 나는 미스터리를 읽을 때 엄정한 논리로만 구축된 세계를 답답해하며, 논리 회로 안에 수렴되지 못한 채 남는 잉여 요소에 더 끌리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도 대개는 구상과 목표가 뚜렷할지언정 실천은 다소 어긋나거나 과하다는 기분을 주는 작품들, 사건의 해결 여부와 무관한 감흥을 남기는 작품들이다. 헌데 『13·67』은 미스터리의 그러한 뒷맛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해선가 모든 면에서 작품 속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엄정함 또한 굳건히 유지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대로 세공한 작품. 그러면서도 그 설계 자체가 워낙 거대하여 도저히 한 창작자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니는 작고 인공적인 세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작품. 아무래도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모든 면에서 얄밉도록 훌륭하다는 점뿐인 듯하다. 천재 탐정 관전둬처럼.

출판사로서는 한국에서는 낯선 홍콩 미스터리를 소개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을 텐데,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모습을 보니 다행히 숨은 걸작으로 묻히지 않고 널리 사랑받을 수 있을 듯하다. 모쪼록 어서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