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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계 - 백전백승을 만드는 경쟁의 과학
포 브론슨 & 애쉴리 메리먼 지음, 서진희 옮김 / 물푸레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는 시기다. 학점이 늘어선 성적표를 떼어보는 순간, 기분이 묘하다. 이 과목은 정말 자신이 있었는데. 시험 치기 직전까지 내용을 완벽히 이해해서 친한 친구에게 설명까지 했었는데. 심지어는 내가 설명한 덕분에 그 옆 친구는 그 문제를 맞췄다고 했는데. 학점이 왜 이러지?
남의 일 같지가 않은가. 혹시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은 아니던가. 그렇다면 혹시 아는가, 그건 유전자가 결정지어놓은 당신의 약점인 것을. 몸 속의 29만 4,831개의 유전자(p.100)중에서 어느 작은 부분의 효소 속, 그 끝에 발린이 있는지 메티오닌이 있는지에 따라 당신이 결정된다는 것을?
이 황당하고도 기분 나쁜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효소가 당신의 얼굴에 ‘긴장하면 실패함’이라는 낙인을 찍어놓은 것은 아니니 당황하지 말자. 무슨 이야기인지, 이 책을 조금 들여다 볼까?
책의 도입부분에 쓰인 예를 빌어 다시 묻겠다. 스카이 다이빙과 볼륨댄스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인 스트레스를 줄까? 목숨을 걸고 수직낙하하는 사람들과 음악에 맞춰 발바닥을 비비는 사람들을 비교한다는 것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스트레스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이런 비교가 실제로 이루어졌다.
스카이 다이버들에게 솜을 주고, 입안에 넣고 있다가 뛰어내리기 직전에 뱉게 했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하게 했다. 또 다른 실험은 볼륨댄스 대회장에서 이루어졌다. 대회를 거듭해서 겪게 되는 실험자들에게 홀(볼륨댄스를 추는 넓은 공간)에 나가기 전까지 솜을 물고 있게 했다. 이 두 실험군의 사람들에게서 얻어진 타액은 놀라운 결과를 말해준다. 볼륨댄스의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끈 하나만 잘못되면 목숨이 날아가는 스카이 다이빙이 스트레스를 덜 유발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물론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뉴스에 보도되는 춤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말이 아니다. 실험군의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베테랑이었다 하여도 ‘판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이다.
우리는 순응적인 경쟁과 비순응적인 경쟁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순응적인 경쟁에는 어려움에 맞서려는 각오와 끈기, 규칙을 존중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것은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순응적인 경쟁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에서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p.23)
사실 경쟁은 악의 축이 아니다. 승부라는 것이 피비린내를 연상시키는 것 같다는 것 역시 본질과는 다르다. 경쟁은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개념이다.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규칙이 있고 상호협력이 있으며 결과에 따라 서로를 분발하게 만든다. 경쟁은 동기를 유발시키고 추진력을 불어넣어 창조석이라는 아웃풋을 더욱 촉진시킨다.(p.34) 물론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삐뚤어져 있다면 문제가 다를 것이다.
만약 경쟁자들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임한다면,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한다면, 상금의 격차 같은 것은 상관없을 수 있다. 만약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상을 받기 위해 속임수까지 쓴다면 상금의 격차가 너무 큰 것일 수 있다. 만약 경쟁에 참여한 선수들이 힘을 아끼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상금의 액수나 상금의 격차를 더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p.89)
문제는 그 긴장이 능률을 올려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부류의 사람이 있는 반면 긴장이 발목을 잡아 평소보다 못한 결과를 얻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더 나쁘다,는 흑백논리로 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열심히 일하고 항상 바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게으르고 느리게 일하는 사람도 있(p.105) 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의 살아가는 것이 사실, 세상이니까.
빠른 효소를 가진 사람들은 정상 도파민 수치가 계속 낮다. 그 말은 연소실에 기름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들은 전전두엽은 활동은 하고 있지만 긍정적이지 못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정신활동이 긍정적인 상태에 이르려면 스트레스가 필요하다(그리고 도파민이 필요하다). 그들이 최고의 역량을 펼치려면 마감날짜, 경쟁, 위험도 높은 테스트 같은 새로운 스트레스가 필요한 것이다.
느린 효소는 일을 빠르게 수행하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있지 않는 한 오히려 사람에게 좋게 작용할 수가 있다. 도파민 양이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게 되니까 전전두엽에는 기름이 가득하면서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날에는 느린 COMT 효소가 좋지만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느껴서 도파민의 양이 크게 늘어나면 이상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p.107~108)
비록 유전자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루는 것은 본인 자신이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인 건 아닐까. 육체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원리는 다르지만 그 결과는 똑같이 ‘스트레스’니까.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나중에 읽은 지혜로운 글이 학생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낮춰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량은 더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스트레스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해석을 바꾸어 놓았다. 스트레스를 역이용해서 월등한 집중력과 더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p.239) 지혜의 말에 담긴 교훈을 마음에 받아들여 실제 GRE 시험에서도 다른 그룹보다 65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p.240)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다가 『승부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양육’에 대한 책들을 줄곧 써온 저자들이 ‘승부’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니 사실 의아함이 컸다. 귀여운 아기들을 보듬어야 할 것 같은 분들이 전쟁터를 연상케하는 승부에서 무슨 말을 할 거라고?) 그리고 나를 자극했던 것이 또 하나 있다.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 ‘이 책을 읽으면 지고 싶어도 이기게 된다’!
다른 뇌과학에 대한 책보다 훨씬 흥미있게 빠져들었다. 사사로운 이슈들을 나열하는 형식이 아니고 무작정 ‘개인 관리’에 대한 이야기만을 거론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는 또 어떻게 하며, 만일 팀을 이룬 집단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상을 실험을 그리고 이론을 풀어간다. 저자들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양육’에 대한 조언도 제법 유용해보인다. (나는 먼 미래의 내 아이들을 떠올리며 Chapter 5와 6에서 제일 자주 줄을 그었다.) 말했다시피 남자와 여자가 왜 승부에 대한 접근이 다른지 또 관리법이 달라야 하는지도 사회학적으로 무겁지 않게 접근했다. (남녀 공학 학교가 많긴 해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승부를 관리하는 스타일은 다르므로 학생들을 관리하는 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마지막 파트에서는 ‘집단 승부를 위한 경쟁의 과학’이란 부분이 나온다. 팀을 이뤄 생활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꽤 도움이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