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제목을 듣는 순간, 넘넘 읽고 싶어졌었다.

 

어디선가 주인공 수짱이 펑펑 우는 장면을 봤는데

그 장면과 대사가 머리에 콱- 박혀 있었다. 

(↑ 이 장면을 정말정말 몰입도 최고가 되는 컷!! 강력 추천 명장면이라서 스포일러는 안할테야. (응?))

 


(수짱의 이웃사촌, 마이코.)

그 언젠가, 나도 '쉬기 위해' 화장실로 도망간 적이 있었다. 

서로 눈치를 주고 받는 사무실보다 화장실이 더 편안하던 때가.

 

수짱 왈, "내가 하면 왠지 없어 보이지 않아?"

그 언젠가 처음으로 큰 돈을 내고 원룸을 계약했을 때,

등기부도 따로 열람해보고 동사무소로 가서 전입신고도 했을 때,

나도 백열등을 켜두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나 혼자 뿐인 썰렁한 원룸을 

노오란 불빛으로 '따스하게' 가득 채우고 싶었었다.
 

나는, 젊은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좋다.

좀 어리석고 힘들었던 청춘을 보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예전의 내가 좋기도 하지만 

모든 시간을 다 거쳐온, 지금의 내가 좋다.

 

음, 지금이 최고여서가 아닌 것 같고, 그냥... '지금'이어서. ^-^

 


 

상처받은 자신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자.

나를 가장 먼저 알아줄 사람이 나라는 걸, 이 만화를 통해 여러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나로서,

비록 예쁘거나 젊지 않아도 '그냥' 나로서.

 

가끔은 옳지 않은 일에 무턱대고 흥분하기도 하고

피곤하고 힘든 날은 뒷사람이 오는 걸 못 본 체 엘리베이터 닫힘을 누르기도 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직장의 분위기에 장단을 맞춰 그저 그렇게 적당히 살아가기도 하는 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껏 고마움도 표시하지만,

막상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끙끙 마음 앓이 하기도 하는 나.

 

'항상 이래야 해'하는 다른 사람의 잣대가 아니라

내가 가진 내 마음의 시선으로 나를 응원하는 것, 그게... 괜찮은 거 아닐까?

 

마스다 미리 여사의 글과 그림에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 놓았다.

 

 

 

 

 

#2.

 

 

멀리 지내는 친구에게 보내고 싶은 

'응원합니다- 선물 꾸러미'를 추석 전부터 기획을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템'을 모으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지만 기다린 만큼 보람은 있다고,

여자공감단(시즌2)이 되어서 득템한 녀석들이 선물 꾸러미에 딱~이었다.

 

이번 여자공감단 시즌2의 두번째 미션을 위해 선물로 받은 것들-스티커, 책갈피, 손거울.

지난 시즌의 책갈피들도 이미 있고

지난 시즌 버전의 손거울도 이미 있으니 

내가 고른 책과 함께 친구에게 고스란히~ 보내야 겠다고 결심했다.

 

첫번째 미션때 받은 책갈피 셋과 책 『아무래도 싫은 사람』, 그리고 지난 시즌의 손거울.

(손거울은 받은 직후부터 쭈욱~ 소지품 목록 1호. +_+헤헷.)

 

 

이름이 '*주'인 친구에게 '주짱의 연애?'로 장난을 쳐서 보낼까도 했지만

수짱의 일상을 보고 나니 결혼이나 연애에 대해 

주변에서 왈가왈부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가 업무 중에 받아서 바로 샤샤샥~ 찍어 보낸 인증샷.

(공문서의 세세한 것들이 눈에 거슬려서 대충 쓱쓱 색깔 맞춰 문질러댔다, 문제되는 게 없기를!)

 

-친구에게 보내주고 싶었던 책 두 권(곳곳에 메세지를 넣어뒀는데, 마스다 미리 여사님 책엔 손을 못 댔다).

-이벤트에서 받은 '달에게...' 머그컵 셋

-하트 뿅뿅 달아서 보낸 엽서

-여자 공감단에서 보내준 책갈피와 (엽서 우측에 살짝 가려진) 손거울.

 

친구는 카톡 메신저에 이 사진들을 올려두고

'낭만소포'라 불러주었다.ㅎㅎ




  

#3.

 

 

이번 시즌에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견뎌내는 법을 익히고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를 반성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법도 알았으니

내가 만드는『수짱의 연애』도 꽤 슬기롭고 지혜롭진 않을까? ㅍㅍ

 

마스다 미리 여사의 수짱도, 

여기 '지금'의 수짱도 열심히 연애해보기로.

멋진 해피엔딩을 꿈꾸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 - 한의학으로 밝힌 우리 몸 건강백과
안세영.조정래 지음 / 와이겔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소한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한의원에 다니면서 빌려본 책이 세 권 있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 중 놓치는 것은 없는지,

혹은 선생님도 나도 간과하고 있는 증상은 없는지

나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빌린 책이었다.

이들 세 권의 책을 접하면서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나 원리에 대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참고한 책 세 권은 다음과 같다.

-그림으로 보는 황제 내경(김영사)

-경락경혈 십사경(청홍)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와이겔리)

각각의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긴다.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와이겔리)

처음에 고른 세 권의 책 중에 제일 두껍다. 그리고 그림도 적다.

책을 선택할 때 ‘내가 겪는 증상을 알고 싶다’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몇 장 펼쳐 읽다가 금방 덮어 버렸다.

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을 길이 없어 보였고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서 읽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다소 수다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디까지나 첫 인상에서는.-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급하지 않게 접근할 때에 있다.

실제로 한의사인 두 분이 함께 쓴 책이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읽는 이들의 생각을 염두해 두고 이야기를 풀어썼다.

때문에 적절한 비유나 설명이 많다. 설명들이 하나같이 재치가 넘친다!

 

우리의 몸을 한의학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원리와 시각’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이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읽어가다 보니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저자들의 설명도 유쾌하고 시원하게 잘 와닿았다.

 

인체에서의 머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신체의 북쪽에 자리 잡은 머리 역시 북방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차가운 기운을 지녀야 되는 것이다. 만약 시쳇말로 "열 받는" 일이 계속되면, 그래서 머리가 정상 온도를 벗어나 필요 이사으로 뜨거워지면 두통(頭痛)은 어김없이 찾아들게 마련이다. 북극 지방은 추워야 정상이고 적도(赤道) 지방은 더워야 정상이듯, 소우주인 인체 역시 북방의 머리는 차가워야 되고 남방의 배는 따뜻해야 되는 법이니, 이를 일러 한의학에서는 "두무냉통 복무열통(頭無冷痛 腹無熱痛)"이라고 한다. 머리가 아플 때는 일단 찬수건을 이마에 얹어 놓는 것도, 한의학에서 두통을 치료할 때 차가운 성질을 가진 약물을 빈용(頻用)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책 속 p. 50 일부-

 

늦은 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을 몇 번씩 트윗에도 올렸을만큼 마음에 쏙 들었던 책이다.

한의학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의 몸에서 각 부분은 어떤 의미를 하는지

그에 따라 우리는 몸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적당히 넓되 적당히 깊은 ‘한의학 상식’이 필요하다면 강력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락경혈 십사경 만화로 읽는 중국전통문화총서 4
주춘차이 지음, 정창현.백유상 옮김 / 청홍(지상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소한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한의원에 다니면서 빌려본 책이 세 권 있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 중 놓치는 것은 없는지,

혹은 선생님도 나도 간과하고 있는 증상은 없는지

나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빌린 책이었다.

이들 세 권의 책을 접하면서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나 원리에 대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참고한 책 세 권은 다음과 같다.

-그림으로 보는 황제 내경(김영사)

-경락경혈 십사경(청홍)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와이겔리)

각각의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긴다.

 

 



 

-경락경혈 십사경

‘경락’ 혹은 ‘경혈’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꼼꼼히 다룬 책이다.

무엇 때문에 이 부위를 이렇게 이름지었는지 한자와 신체 기관의 역할과의 비교까지

편안하고 간단한 만화를 통해 잘 다루어 놓았다.

(이 책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명명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비의법(수혈 자리의 모양을 보고 익숙한 자연환경에 비유)/상형법(다른 사물을 비유)/회의법(해부학적 특징과 의미를 병합하여 명명)/사실법(치료 기능을 그대로 명명))

본문에서는 십사경의 위치를 그림으로 먼저 제시하고

각각의 부위에서 다스릴 수 있는 증상들을

부위 당 한 컷씩을 할애하여 만화로 정리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이 너무 잘 설명되어 있다 보니

‘나도 한번 눌러보자(?)’하는 마음이 자꾸 인다는 것이 장점 아닌 장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신에서 여러 위치를 -너무- 대략적으로 보여준 후에

하나씩 설명만 하다 보니 ‘이 자리였던가? 아님 여기?’ 이렇게 당황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

그러나, 우리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자리에 직접 침을 놓을 수는 없을 터,

대충 그려진-명확하게 지칭되지 않은 경혈, 경락을 눌러 보다가

기분이 좀 풀리고 활기가 느껴진다면 만족하는 게 낫지 않을까.

너무 세세하게 집착하지 말자!

 

일반 교양서적치고 깊이 있는 내용이

굉장히 잘 설명되어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원서로 공부하는 한의학도들도 참고하기에 괜찮지 않을까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지토 편집부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소한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한의원에 다니면서 빌려본 책이 세 권 있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 중 놓치는 것은 없는지, 

혹은 선생님도 나도 간과하고 있는 증상은 없는지 

나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빌린 책이었다. 

이들 세 권의 책을 접하면서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나 원리에 대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참고한 책 세 권은 다음과 같다.

-그림으로 보는 황제 내경(김영사)

-경락경혈 십사경(청홍)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와이겔리)

각각의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긴다.

 




-그림으로 보는 황제 내경

김영사는 제법 알아주는 대형 출판사, 때문에 고르면서도 기대가 컸다. 

역시나! 읽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제일 효율이 컸다.

이 책의 장점은 <황제내경>의 내용을 잘 요약 정리 해두었다는 점. 


거의 한 주제에 대해 꼭 한 페이지 정도를 할애해서 그림 또는 도표로 내용을 정리해 주었기 때문에 

줄글을 읽기 귀찮을 때 도표를 먼저 살피면 설명이 더 잘 이해되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함께 참고한 세 권 중에 ‘이런 증상일 때는 어떻게 하지?’에 대한 답을

가장 손쉽게 가장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표 덕분에 더 더욱 쉬웠다.)


물론, 한의사들이 <황제내경>을 학생시절에 공부할 수는 있어도 진료할 때는 크게 참고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다니던 한의원의 한의사는 그렇게 설명했다.) 

실제로도 좀 많이 오래된 중국쪽의 책이라 그런가, 별의별 상황을 독특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장의 기가 성해서 생기는 꿈’이나 ‘기가 허한 사람의 꿈’의 부분에선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 원리가 얼마나 과학적인 결과인지를 의심해보고 싶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황제내경>이라는 어려운 원서를 

열심히 공부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둔 우등생의 노트 같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유용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작가들에게 단편의 언어와 장편의 언어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영어권에선 단편을 지칭하는 story(혹은 short story)와 장편의 지칭하는 novel이란 단어는 엄연히 다른 단어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의 단편과 장편은 -글자만으로 따지면- 비슷한 빛깔로 보인다. 형식적 구조가 엄연히 다르지만 ‘단어 하나’의 차이만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김영하의 장편 <검은 꽃>을 읽었다. 지금껏 멋모르고 스치듯 만나온 ‘김영하 표’ 단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재기발랄함이, 날카로운 재치가 번쩍이던 단편에서와 달리 덤덤하게 그리고 같은 크기의 힘으로 풀어내고 있다.

장편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시대 속에서 살려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일으켜 무수히 종횡무진 엮고 또 꿰어내는 힘에 감탄할만 하다.


장편 <검은 꽃>의 줄거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었다가 일본에게 눈과 입이 가려지고 사지를 묶이기까지의 혼란기, 

‘멕시코’라는 낯선 땅으로 떠난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땅을 갖고 싶었지만 땅을 가질 돈이, 그리고 그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할 나라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지만 멕시코는 서양이므로 조선보다 나을 줄 알았다. 

조선을 떠난 멕시코의 조선인들은 에네켄 수확 노동자(일명 애니깽)들이 된다.

그곳에서 마소를 다스릴 때나 쓰이는 채찍이 사람에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어찌 사람에게 가축과 같은 대우를 한단 말인가.) 

땅과 물과 돈을 꿈꾸며 멕시코에 갔던 그곳은 어떤 ‘땅’일까. 그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검은 꽃>의 큰 줄기에는 시대가 세차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인물들마저 입체적으로 살아나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힘찬 물결이 되고 깊은 울림을 만드는 이 두 갈래는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단편의 이야기에 더 익숙한 눈을 가진 나는 <검은 꽃> 전체에 대해 어떻게 평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제로 삼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해 한 편의 글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책을 읽고 몇 주가 흐른 지금에도 아직 별반 나이진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력적이고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들을 모두 논하기에는 내 역량이 모자란 관계로 내 눈에 들어온 인물 몇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바오로 신부, 박광수의 운명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김이정과 이연수’를 제쳐두고 제일 먼저 내 눈길을 빼앗은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미안하고 서글프기도 하다.(소설을 읽을 사람을 위해 많은 스포일러는 하고 싶지 않다.) 어린 광수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지 않은 것들-엄마, 무당, 삼촌, 아버지의 존재가 밉게 느껴진다. 아마도 <검은 꽃>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가장 외로운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삶 자체를 초탈하는 듯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 매력적으로 기억에 남았을까. 바오로 신부, 그리고 박수 박광수 모두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소년 김이정, 운명과 대화하다

자신의 부모의 생사도, 이름도 모르는 무지랭이 소년은 아버지처럼 따르던 조장윤에게 ‘이정二正’이란 이름을 얻고 멕시코로 가는 길에서 꼬마에서 소년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땅을 가진 자는 존경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태평양 너머에 있는 우리나라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까지 그가 겪고 자라온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변한다. 가장 많은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인물로서 김이정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 매력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에게 빠질까. ^^소설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농담.)


타이타닉 호의 악사들은 무사하였나, 김옥선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여운을 남겼던 인물이었다. 아마도 그가 내던 악기소리가 여향餘響을 남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밀림의 전투 중에 김옥선이 불던 피리 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리고 나는 조선을 떠나와 멕시코에서 견뎌온 그들의 삶을 영화처럼 그려봤다.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 이 장면 속에서 나도 모르게 침몰하던 타이타닉 호 갑판의 악사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배는 가라앉더라도 음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악사들의 예술혼 같은 것?


사향麝香내만 남기고 간 이연수의 뒷모습

소설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인물들의 뒷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영화 <Gloomy Sunday>가 떠오르기도 한다. 몸보다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던 여인 연수는 지나는 곳마다 뭇사내들의 마음 속에 불꽃을 지피던 마력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몰락해가는 집안이었지만 사대부 여인답게 총명했고, 그와 동시에 당시의 어염집 여인들과는 다른 시작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 혹은 또래의 여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생각-‘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결심은 몸을 벗어날 수 없는 섣부른 기대였을까. 사상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데 몸은 땅에 묶여 있으니 멕시코라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생각이 널리 펼쳐지기엔 부족했나. 가장 아쉬운 인물이었다. 작가 김영하는 여성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낼 자신이 없는 사람인가를 잠시 의심할만큼. 고리타분한 생각을 뒤짚어 엎고 나아가게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상과 더 맞아 떨어지겠지만, 소설이니까 가능한 마법-작가의 힘-을 기대해보기도 했었다. 소설이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나 ‘있을 법한’ 이야기여야 해서 슬프다. 조용히 사그러져 가는 연수의 뒷모습에 아쉬운 눈길을 쉬이 거둘 수 없다.



 

p.s. 


김영하의 <검은 꽃>을 끝내고 내가 만들어 둔 숙제가 있다.

1. 과연 내가 아는 ‘단편소설’이 어떤 것이었나, 잘못 알고 있으면서 ‘장편소설’과 잘못된 비교는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몇몇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집을 일부러 찾아 골라두었다. 짬짬히 읽으면서 ‘단편’의 언어가 뭐였는지를 다시 알아낼까 함.)


2. 김영하가 쓰는, ‘장편’과 ‘단편’에 공유된 그만의 장점 혹은 무기는 무엇일까.

(작가 김영하의 소설은 ‘김영하다, 읽자!’하고 모아서 읽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철없이 소설들을 읽어 제낄 때 두어번 만난 것이 전부인 것 같아 기회가 된다면 찾아서+모아서 읽어볼 생각. 이것은 급하지 않게 찬찬히 해볼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