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작가들에게 단편의 언어와 장편의 언어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영어권에선 단편을 지칭하는 story(혹은 short story)와 장편의 지칭하는 novel이란 단어는 엄연히 다른 단어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의 단편과 장편은 -글자만으로 따지면- 비슷한 빛깔로 보인다. 형식적 구조가 엄연히 다르지만 ‘단어 하나’의 차이만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김영하의 장편 <검은 꽃>을 읽었다. 지금껏 멋모르고 스치듯 만나온 ‘김영하 표’ 단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재기발랄함이, 날카로운 재치가 번쩍이던 단편에서와 달리 덤덤하게 그리고 같은 크기의 힘으로 풀어내고 있다.

장편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시대 속에서 살려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일으켜 무수히 종횡무진 엮고 또 꿰어내는 힘에 감탄할만 하다.


장편 <검은 꽃>의 줄거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었다가 일본에게 눈과 입이 가려지고 사지를 묶이기까지의 혼란기, 

‘멕시코’라는 낯선 땅으로 떠난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땅을 갖고 싶었지만 땅을 가질 돈이, 그리고 그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할 나라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지만 멕시코는 서양이므로 조선보다 나을 줄 알았다. 

조선을 떠난 멕시코의 조선인들은 에네켄 수확 노동자(일명 애니깽)들이 된다.

그곳에서 마소를 다스릴 때나 쓰이는 채찍이 사람에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어찌 사람에게 가축과 같은 대우를 한단 말인가.) 

땅과 물과 돈을 꿈꾸며 멕시코에 갔던 그곳은 어떤 ‘땅’일까. 그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검은 꽃>의 큰 줄기에는 시대가 세차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인물들마저 입체적으로 살아나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힘찬 물결이 되고 깊은 울림을 만드는 이 두 갈래는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단편의 이야기에 더 익숙한 눈을 가진 나는 <검은 꽃> 전체에 대해 어떻게 평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제로 삼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해 한 편의 글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책을 읽고 몇 주가 흐른 지금에도 아직 별반 나이진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력적이고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들을 모두 논하기에는 내 역량이 모자란 관계로 내 눈에 들어온 인물 몇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바오로 신부, 박광수의 운명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김이정과 이연수’를 제쳐두고 제일 먼저 내 눈길을 빼앗은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미안하고 서글프기도 하다.(소설을 읽을 사람을 위해 많은 스포일러는 하고 싶지 않다.) 어린 광수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지 않은 것들-엄마, 무당, 삼촌, 아버지의 존재가 밉게 느껴진다. 아마도 <검은 꽃>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가장 외로운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삶 자체를 초탈하는 듯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 매력적으로 기억에 남았을까. 바오로 신부, 그리고 박수 박광수 모두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소년 김이정, 운명과 대화하다

자신의 부모의 생사도, 이름도 모르는 무지랭이 소년은 아버지처럼 따르던 조장윤에게 ‘이정二正’이란 이름을 얻고 멕시코로 가는 길에서 꼬마에서 소년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땅을 가진 자는 존경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태평양 너머에 있는 우리나라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까지 그가 겪고 자라온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변한다. 가장 많은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인물로서 김이정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 매력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에게 빠질까. ^^소설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농담.)


타이타닉 호의 악사들은 무사하였나, 김옥선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여운을 남겼던 인물이었다. 아마도 그가 내던 악기소리가 여향餘響을 남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밀림의 전투 중에 김옥선이 불던 피리 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리고 나는 조선을 떠나와 멕시코에서 견뎌온 그들의 삶을 영화처럼 그려봤다.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 이 장면 속에서 나도 모르게 침몰하던 타이타닉 호 갑판의 악사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배는 가라앉더라도 음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악사들의 예술혼 같은 것?


사향麝香내만 남기고 간 이연수의 뒷모습

소설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인물들의 뒷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영화 <Gloomy Sunday>가 떠오르기도 한다. 몸보다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던 여인 연수는 지나는 곳마다 뭇사내들의 마음 속에 불꽃을 지피던 마력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몰락해가는 집안이었지만 사대부 여인답게 총명했고, 그와 동시에 당시의 어염집 여인들과는 다른 시작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 혹은 또래의 여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생각-‘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결심은 몸을 벗어날 수 없는 섣부른 기대였을까. 사상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데 몸은 땅에 묶여 있으니 멕시코라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생각이 널리 펼쳐지기엔 부족했나. 가장 아쉬운 인물이었다. 작가 김영하는 여성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낼 자신이 없는 사람인가를 잠시 의심할만큼. 고리타분한 생각을 뒤짚어 엎고 나아가게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상과 더 맞아 떨어지겠지만, 소설이니까 가능한 마법-작가의 힘-을 기대해보기도 했었다. 소설이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나 ‘있을 법한’ 이야기여야 해서 슬프다. 조용히 사그러져 가는 연수의 뒷모습에 아쉬운 눈길을 쉬이 거둘 수 없다.



 

p.s. 


김영하의 <검은 꽃>을 끝내고 내가 만들어 둔 숙제가 있다.

1. 과연 내가 아는 ‘단편소설’이 어떤 것이었나, 잘못 알고 있으면서 ‘장편소설’과 잘못된 비교는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몇몇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집을 일부러 찾아 골라두었다. 짬짬히 읽으면서 ‘단편’의 언어가 뭐였는지를 다시 알아낼까 함.)


2. 김영하가 쓰는, ‘장편’과 ‘단편’에 공유된 그만의 장점 혹은 무기는 무엇일까.

(작가 김영하의 소설은 ‘김영하다, 읽자!’하고 모아서 읽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철없이 소설들을 읽어 제낄 때 두어번 만난 것이 전부인 것 같아 기회가 된다면 찾아서+모아서 읽어볼 생각. 이것은 급하지 않게 찬찬히 해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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