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
지토 편집부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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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한의원에 다니면서 빌려본 책이 세 권 있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 중 놓치는 것은 없는지, 

혹은 선생님도 나도 간과하고 있는 증상은 없는지 

나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빌린 책이었다. 

이들 세 권의 책을 접하면서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나 원리에 대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참고한 책 세 권은 다음과 같다.

-그림으로 보는 황제 내경(김영사)

-경락경혈 십사경(청홍)

-몸, 한의학으로 다시 태어나다(와이겔리)

각각의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긴다.

 




-그림으로 보는 황제 내경

김영사는 제법 알아주는 대형 출판사, 때문에 고르면서도 기대가 컸다. 

역시나! 읽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제일 효율이 컸다.

이 책의 장점은 <황제내경>의 내용을 잘 요약 정리 해두었다는 점. 


거의 한 주제에 대해 꼭 한 페이지 정도를 할애해서 그림 또는 도표로 내용을 정리해 주었기 때문에 

줄글을 읽기 귀찮을 때 도표를 먼저 살피면 설명이 더 잘 이해되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함께 참고한 세 권 중에 ‘이런 증상일 때는 어떻게 하지?’에 대한 답을

가장 손쉽게 가장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표 덕분에 더 더욱 쉬웠다.)


물론, 한의사들이 <황제내경>을 학생시절에 공부할 수는 있어도 진료할 때는 크게 참고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다니던 한의원의 한의사는 그렇게 설명했다.) 

실제로도 좀 많이 오래된 중국쪽의 책이라 그런가, 별의별 상황을 독특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장의 기가 성해서 생기는 꿈’이나 ‘기가 허한 사람의 꿈’의 부분에선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 원리가 얼마나 과학적인 결과인지를 의심해보고 싶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황제내경>이라는 어려운 원서를 

열심히 공부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둔 우등생의 노트 같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유용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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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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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에게 단편의 언어와 장편의 언어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영어권에선 단편을 지칭하는 story(혹은 short story)와 장편의 지칭하는 novel이란 단어는 엄연히 다른 단어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의 단편과 장편은 -글자만으로 따지면- 비슷한 빛깔로 보인다. 형식적 구조가 엄연히 다르지만 ‘단어 하나’의 차이만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김영하의 장편 <검은 꽃>을 읽었다. 지금껏 멋모르고 스치듯 만나온 ‘김영하 표’ 단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재기발랄함이, 날카로운 재치가 번쩍이던 단편에서와 달리 덤덤하게 그리고 같은 크기의 힘으로 풀어내고 있다.

장편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시대 속에서 살려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일으켜 무수히 종횡무진 엮고 또 꿰어내는 힘에 감탄할만 하다.


장편 <검은 꽃>의 줄거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었다가 일본에게 눈과 입이 가려지고 사지를 묶이기까지의 혼란기, 

‘멕시코’라는 낯선 땅으로 떠난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땅을 갖고 싶었지만 땅을 가질 돈이, 그리고 그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할 나라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지만 멕시코는 서양이므로 조선보다 나을 줄 알았다. 

조선을 떠난 멕시코의 조선인들은 에네켄 수확 노동자(일명 애니깽)들이 된다.

그곳에서 마소를 다스릴 때나 쓰이는 채찍이 사람에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어찌 사람에게 가축과 같은 대우를 한단 말인가.) 

땅과 물과 돈을 꿈꾸며 멕시코에 갔던 그곳은 어떤 ‘땅’일까. 그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검은 꽃>의 큰 줄기에는 시대가 세차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인물들마저 입체적으로 살아나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힘찬 물결이 되고 깊은 울림을 만드는 이 두 갈래는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단편의 이야기에 더 익숙한 눈을 가진 나는 <검은 꽃> 전체에 대해 어떻게 평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제로 삼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해 한 편의 글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책을 읽고 몇 주가 흐른 지금에도 아직 별반 나이진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력적이고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들을 모두 논하기에는 내 역량이 모자란 관계로 내 눈에 들어온 인물 몇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바오로 신부, 박광수의 운명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김이정과 이연수’를 제쳐두고 제일 먼저 내 눈길을 빼앗은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미안하고 서글프기도 하다.(소설을 읽을 사람을 위해 많은 스포일러는 하고 싶지 않다.) 어린 광수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지 않은 것들-엄마, 무당, 삼촌, 아버지의 존재가 밉게 느껴진다. 아마도 <검은 꽃>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가장 외로운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삶 자체를 초탈하는 듯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 매력적으로 기억에 남았을까. 바오로 신부, 그리고 박수 박광수 모두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소년 김이정, 운명과 대화하다

자신의 부모의 생사도, 이름도 모르는 무지랭이 소년은 아버지처럼 따르던 조장윤에게 ‘이정二正’이란 이름을 얻고 멕시코로 가는 길에서 꼬마에서 소년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땅을 가진 자는 존경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태평양 너머에 있는 우리나라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까지 그가 겪고 자라온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변한다. 가장 많은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인물로서 김이정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 매력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에게 빠질까. ^^소설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농담.)


타이타닉 호의 악사들은 무사하였나, 김옥선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여운을 남겼던 인물이었다. 아마도 그가 내던 악기소리가 여향餘響을 남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밀림의 전투 중에 김옥선이 불던 피리 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리고 나는 조선을 떠나와 멕시코에서 견뎌온 그들의 삶을 영화처럼 그려봤다.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 이 장면 속에서 나도 모르게 침몰하던 타이타닉 호 갑판의 악사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배는 가라앉더라도 음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악사들의 예술혼 같은 것?


사향麝香내만 남기고 간 이연수의 뒷모습

소설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인물들의 뒷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영화 <Gloomy Sunday>가 떠오르기도 한다. 몸보다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던 여인 연수는 지나는 곳마다 뭇사내들의 마음 속에 불꽃을 지피던 마력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몰락해가는 집안이었지만 사대부 여인답게 총명했고, 그와 동시에 당시의 어염집 여인들과는 다른 시작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 혹은 또래의 여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생각-‘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결심은 몸을 벗어날 수 없는 섣부른 기대였을까. 사상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데 몸은 땅에 묶여 있으니 멕시코라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생각이 널리 펼쳐지기엔 부족했나. 가장 아쉬운 인물이었다. 작가 김영하는 여성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낼 자신이 없는 사람인가를 잠시 의심할만큼. 고리타분한 생각을 뒤짚어 엎고 나아가게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상과 더 맞아 떨어지겠지만, 소설이니까 가능한 마법-작가의 힘-을 기대해보기도 했었다. 소설이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나 ‘있을 법한’ 이야기여야 해서 슬프다. 조용히 사그러져 가는 연수의 뒷모습에 아쉬운 눈길을 쉬이 거둘 수 없다.



 

p.s. 


김영하의 <검은 꽃>을 끝내고 내가 만들어 둔 숙제가 있다.

1. 과연 내가 아는 ‘단편소설’이 어떤 것이었나, 잘못 알고 있으면서 ‘장편소설’과 잘못된 비교는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몇몇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집을 일부러 찾아 골라두었다. 짬짬히 읽으면서 ‘단편’의 언어가 뭐였는지를 다시 알아낼까 함.)


2. 김영하가 쓰는, ‘장편’과 ‘단편’에 공유된 그만의 장점 혹은 무기는 무엇일까.

(작가 김영하의 소설은 ‘김영하다, 읽자!’하고 모아서 읽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철없이 소설들을 읽어 제낄 때 두어번 만난 것이 전부인 것 같아 기회가 된다면 찾아서+모아서 읽어볼 생각. 이것은 급하지 않게 찬찬히 해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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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솔 다이어트 - 완벽한 S라인을 만드는 마법의 발레 운동
오영주 지음 / 리스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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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오솔(Barre au Sol)은 마루에 앉아서, 누워서 또는 엎드려서 하는 발레 운동으로 발레에서 발전된 특별한 테크닉이다. 1937년 프랑스의 보리스 크니아세프(Boris Kniaseff)에 의해 창안되었다. 초창기에는 프랑스 일부 발레무용수들의 테크닉을 보충하고 신체선열(바른 자세)과 신체강화를 돕는 운동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영국의 마리아 페이, 미국의 지나 로멧에 의해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지금은 유럽과 미국 주요 발레단과 발레학교의 필수 수업과정이 되었다.

(책 속에서)


발레를 해본 적이 없다. 발레를 하면 선이 굉장히 예쁘게 살아난다고 하던데, 하고 찾아본 책.

(올해 책을 읽었던 순서에 따르면 프랑스 작가 콜레트에 대한 자료를 보다가 관심이 생긴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갈래는 다른데 이상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같은 독서.^^)


그림으로 동작 설명이 잘 되어 있고 

따로 CD같은 것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목적에 따른 동작 분류도 잘 되어 있고 괜찮은 편이다.


발레는 초보이지만 유연한 편이라고 생각해서 따라해보긴 하는데 하체 위주의 동작이 많아서 어렵기도 하다. 

어릴 때 180도 다리 찢기부터 연습했던 사람이라면 그림 속의 동작처럼 명확하게 할 텐데 나는 세로만 가능(가로는 100도나 가능하려나;). 그림 속 언니처럼 예쁜 모양이 나오지 않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특히 ‘디아망Diamond ’동작. 다리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머릿 속에선 초등학생 시절에 봤던 실험실 책상 위에 올라온 개구리가 자꾸 떠오른다.ㅋ


책에 있는 모든 동작을 한 건 아니고 바쁜 사람들을 위한 ‘초간단 바오솔’ 동작만 따라 해봤다. 

4월 초부터 일주일에 두어번씩. 책의 뒷부분에 조언으로 등장한 말에 따르면,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씩 꾸준히 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했다. 

3주 정도를 기록해가며 했고, 그 이후로는 유산소 운동 병행하듯이 일주일에 한두 번? 

5월 셋째 주 부터는 아예 그만 두고 자전거만 타러 다녔다.(식단은 채식 위주로) 

채식과 유산소 운동이 함께 있었기에 ‘바오솔’ 자체만의 영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동안 살이 빠지긴 했고 부분적으로 선이 다듬어진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아무런 운동도 하지 못하는 지금, 

자세와 라인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것을 보면 바오솔의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바오솔을 꾸준히 해볼 요량.

11월이나 12월이 되어서까지 꾸준히 한다면 

바오솔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객관적/수치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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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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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드라마에서 마음 속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이 등장한단 말을 들었다.

드라마는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더불어 그 드라마의 제목이 소설가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다는 것에 놀랍고 우습기도 했지만- 듣자 마자 떠오르는 아이가 있었다.


소설 <원더보이>의 주인공, 정훈.

문득 그 아이가 올려다 보던 밤 하늘이..

아빠를 닮아 자꾸 울기만 하던 어느 날의 기억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동물원 앞 풍경이... 한꺼번에 마음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낸 정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훈은 사람들이 입을 떼어 말하지 않아도 마음 속의 이야기를 읽는 소년이다.

엄마의 존재도 모르고 아빠와 단둘이서 살았다는 것,

어느 날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아빠를 잃었다는 것까지 생각하자면

짧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놀라운(wonder)' 소년이 분명하다.


정훈의 특별한 능력은 양복입은 사람들과 권대령에 의해

정보기관 고문실에 잡혀온 사람들이 가진 진짜 정보를 빼내는 것,

(정부의 뜻은 확실히 그랬다, 과연 정훈이가 그렇게 했던가?)

혹은 송년 특집쇼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한 사람으로서 정훈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정훈이가 들려주는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엿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감시 아닌 감시, 아니 관리를 받으며 하루 하루 살아간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원더보이'로 일컬어지는 아이는 

정말 놀라운 아이로서 놀랍고도 신기한 사람을 살았을까.


정훈은 검은 양복으로부터, 군복을 입은 사람으로부터 도망친다.

마음이 따뜻한 속내를 훔쳐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소년으로-'원더보이'가 아닌 채로- 지내게 되면서 

정훈은 어른이 되어가고

그 속내를 빤히 들여다 볼 수 없다하는 지극히 평범한 '궁금한(wonder)' 소년으로...자라난다.





처음엔 '원더보이'의 설정만 알고 책을 들었다.

환타지의 요소가 강한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나 궁금했다.

소년이 등장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진 이 소설이 왜 '청소년 문학'과는 다른가도 궁금했다.


내가 느낀 소설 『원더보이』는 온기가 묻어나는 소설이었다.

어디선가 텁텁한 지하 고문실의 냄새도, 최루탄의 퀘퀘한 냄새도 나지만 

꽃이 만발한 동물원 풍경도, 하늘에 빼곡히 들어찬 별들도

벚꽃이 흩날리는 봄의 광경이, 북방쇠찌르레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림이

눈 앞에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편안하고 따스한 그리고 또 아름다운 문장들이 들어있는 소설이자,

(소년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여주곤 있지만) '청소년'만을 위한 책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작가 김연수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놀라운(wonder) 소설이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다른 과학 에세이에서 

김연수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천문학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엔 천문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래서 대학도 그쪽으로 지원했었다고.

물론 천문학과에선 떨어졌고 지금 '학력'으로 나오는 그 과에는 붙었다 던가 했다. ^^;;)


원더보이, 정훈이 늘 바라보던 밤 하늘과 별과,

그 사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아련한 것에 대한 이야기 역시

김연수 작가의 취향에서 (혹은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아름다움이었다.


 불가능한 일요일이 찾아오면 나는 마침내 손을 뻗어 그 하얗고 환한 빛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던 아빠의 오른팔을 잡았다. 잔뜩 힘을 준 팔뚝 근육의 굴곡이 고스란히 내 손바닥에 느껴졌다. 아빠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짓더니 팔을 잡은 내 손을 떼어놓았다. 지금은 이렇게 헤어지지만,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아빠는 슬프거나 괴로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 표정이 하도 편안해서 마음이 놓였다. 다시 만난다니, 과연 언제란 말인가? 네 소원이 이뤄지면. 내 소원이라구요? 엄마와 아빠, 양쪽에 손을 잡고 서울대공원에 놀러 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니? 그랬지만,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된 거 잖아요. 빛의 가운데에서 아빠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불가능한 일요일에 우린 다시 만날 거야. 아빠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게서 돌아선 뒤 그 하얀 빛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너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요일이 찾아올 거야. 네 소원이 이뤄지는 일요일도 분명히 찾아올 거야. 그러니 너는 돌아가. 너의 삶 속으로. 아빠의 그림자가 내 쪽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마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소리쳤다.

“아빠, 가지 마!”

내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방안에는 은은한 빛이 가득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가득 메운 그 은은한 빛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살펴봤다. 그 빛은 창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쇠창살로 나뉘어진 밤하늘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가득했다. 하얀 것들. 눈부신 것들. 무수히 많은 것들. 처음에는 수만 마리의 반딧불들이 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본 다음에야 나는 그게 눈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건 온 세상의 하늘에다가 100000000000개의, 10000000000000000000000개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개수의 작고 하얀 등을 매달아놓은 것과 같았다. 나는 손을 움직여 허공에 떠 있는 눈송이들을 만져봤다. 손에 닿자 눈송이들은 그대로 녹았다. 먼지 많은 마루를 손바닥으로 쓸어낸 것처럼, 내 손이 지나간 자리에만 눈송이 들이 없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허공에 멈춰선 눈송이들이 그 작고 하얀 빛들을 모두 내게 비추고 있었다. 그게 내가 돌아갈, 나의 삶이었다.


p.104~105


어두운 밤 하늘 속에서 작게 빛나는 별이 유난히 따스하고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말소리를 조금이라도 잘 알아채고 싶다면

원더보이 속, 정훈의 이야기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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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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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몹시 소란하던 어느 밤이었다.

몸은 쌩쌩하지만 마음만큼은 풀이 죽어 있던

-아니 자기 박자를 잃고 쓰러져 헛바퀴를 돌던 바퀴같다할까- 

여하튼 조금 맥이 풀리던 날이었다.

 

일찍 잠에 들고 싶었지만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책을 한권 빼들었다.

선물 받아서 조금 읽다가 한동안 방치해뒀던 책이었다.

겉표지를 넘기자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행복을 함께 드립니다'라고 메모였다.

나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이 책을 선물했던 제자가 남긴 이 귀여운 메모를 보고.

마음이 멍하게 방치되어 있다가

풋풋한 행복의 문앞으로 '소환'되는 기분이었다.

책을 조금만 읽자고 생각하며 몸을 누이고 책의 다음 장을 넘겼다.

 

이것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꾸뻬라는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로 시작하는 책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읽던 밤의 인상이었다.

침대에서 여러번 뒤척이며

책 속의 이야기들을 눈 앞에 떠올리던 날이었다.

 

 

 

꾸뻬씨는

'진짜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꾸뻬 자신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다.

 

하지만 어느 날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이 정말 의미 있는 것인지를,

남들의 불행을 치유해주는 자신이 정말 행복한 것인지를.

 

행복론에 대해 말을 하자면 정말 끝도 없을 텐데.

조금만 가르치는 어조를 갖고 있으면 독자는 읽을 기분이 나지 않을 텐데.

책은 편안하게 잘 넘어간다, 동화나 우화같다는 기분마저 든다.

편안하다.

 

 

작가는

미련한 듯 어벙한 듯 침착하고 마음이 깨끗한 꾸뻬씨를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클라라가 남은 음식을 마저 먹기 위해 잠시 말을 중단했을 때, 꾸뻬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행복해?"

그러자 클라라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꾸뻬를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감정이 격해진 듯 했고, 꾸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를 떠나고 싶어요?"

꾸뻬는 그녀의 눈이 사람들이 울기 시작할 때처럼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절대 그런 게 아니며(아주 가끔씩 생각해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질문을 한 것은 단지 자신이 행복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p.25~26 일부)

 

 

묻고 관찰하고... 바라보고 생각한다.

꾸뻬씨가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서

취하곤 하는 요령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우리가 일상으로부터 조금 지칠 때

주변을 바라봐야 하는 마음 자세와 닮아 있다.

 

 

꾸뻬는 노승에게 혹시 행복에 관해 지혜로운 말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승이 말했다.

"첫번째 원인은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라고 믿는 데 있소!"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터뜨렸다. 꾸뻬는 좀더 설명해 주길 바랐지만, 노승은 자세한 설명 없이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p.52 일부)

 

마음이 지쳐서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건,

사실 우리 마음 안에 모든 답이 달려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의 여행기이자, 평온한 느낌을 풍기는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하나씩 행복의 조건들을 흩뿌려 놓았다. 

두괄식으로 핵심을 설명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사례를 드는 실용서적과 같이

명확한 형식을 갖추고 있진 않아도 적당히 힘이 들어간 부분에선

잠시 멈추어 설 수 있다.

 

가만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

그런 책으로서 『꾸뻬 씨의 행복 여행』는 내 마음을 위로하던 올해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간간히 '웃음'이 소환되는 그 페이지부터 들춰보곤 하면서 힘을 얻어 본다.

내 곁에 있는 행복을 잠시 알아보지 못할 때 마다. ^^

 

 

 

 

 

 

p.s.

작가의 엉뚱한 개그 코드 사례 하나. 

 그녀는 또한 늘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했다. 이 나라의 아이들은 점점 제정신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꾸뻬는 자신의 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이상해져 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아녜스가 살고 있는 나라가 모든 것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쳐 가는 아이들도 좀 더 많았다.

 (p.151 일부)

나는 이런 방식이 무척이나 좋았다.

어리버리한 듯한,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은 꾸빼의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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