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종이와 연필에 집착하는 이유. 그건 어쩌면 그들이 내게 가져다 주는
그 짧은 시간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약속시각까지는 아직
10분이 남았고, 나는 가방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낸다. 이제 잠시 후면
만날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편지를 쓴다. 그 10분. 결코 길지 않은 그 시간이
내게는 오로지 그 사람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내가 약속시각에 늦기보다는
늘 일찍 가서 기다리기를 택하는 까닭도 바로 그런 소중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그런 기다림 뒤에 갖는 만남은 더욱 애틋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게 더욱 소중한 사람으로 남는다.-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