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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평점 :
김수행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셨다. 마르크스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20년 전에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를 채용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마르크스는 혁명의 방법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아마도 그가 혁명가였다는 것이리라. 마르크스는 평생을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인생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살았던 이론가였고, 18세기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면서 자본주의에서 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이를 사회에 대한 절절한 울분으로 토해냈을 뿐이었다.
마르크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학문이 아니다. 단지 주류경제학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자본주의 체계에 내재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연구하는 학문일 뿐이다. 주류경제학이 공황을 통제가능한 경기변동으로 본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은 공황을 자본주의의 붕괴를 이끄는 모순점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고, 아직까지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았으니 마르크스보다는 케인즈의 말에 무게가 실리고 있을뿐디다(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해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나 임마뉴엘 월러스틴 같은 탈자본주의론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이론적으로 연구한 것만으로도 김수행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상징이 되었지만, 또 한 편에서는 강단좌파라는 딱지와 함께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김수행 교수가 강단좌파라는 냉소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를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김수행 교수가 제안하는 "내수 중심의 국민경제"는 중도 우파들이 주장하는 바와 그대로 일치한다. 좌측에 있는 사람들은 '내수중심', '국민경제'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도 않을뿐더러, 내수 중심의 경제 운영을 통한 경제 위기 극복은 마르크스주의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넘어선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할 것이다.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나, 그 과정이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혁명가들에게는 개량주의자로 몰리기 딱 좋은 이야기다(아니러니컬하게도 빨갱이 소리 듣기 딱 좋은 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좌측에 있는 사람들의 김수행에 대한 냉소가 좀 부당하게 느껴진다. 김수행 교수는 학자일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런 비판을 의식하고 있는지, 자신은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업이지 운동하고 데모하는 것까지 잘 할 능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건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만일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화끈한 주장을 기대한다면 좀 실망할 수밖에 없다. 김수행 교수의 해법은 양식있는 우파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자유주의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당위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이 정부가 파시즘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우려는 나같은 자유주의자도 하고 있는 것이고, 수도 철도 전기 의료보험 등 민영화 반대는 민주당이나 심지어 선진당까지도 입장을 같이하는 것이다. 남북간 긴장완화, 국방비 감축을 통한 복지예산 확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지극히 상식적인(한나라당한테는 아니겠지만) 이야기들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자.
마르크스 경제학은 괴물의 학문이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공부한다고 괴물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진정 우파라면 오히려 마르크스 경제학을 더 공부해야되지 않겠는가. 적을 알아야 할테니 말이다. 어쩌면 마르크스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이 바라보지 못하는 세상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주류 경제학자들을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p.s1 안타깝게도 김숙행 교수가 정년퇴임하면서 서울대학교는 그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뽑지 않고 있다. 김수행 교수 밑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학생도 있었고, 수많은 대학원생들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를 채용해 달라고 대자보까지 붙이면서 요청했지만 서울대 경제학과는 요지부동이다. 하긴, 케임브리지의 장하준마저도 세 번이나 물먹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님들인데 어련하시겠나. 김수행 교수도 인터뷰 중에 한 마디 하신다. 자기가 뽑힌 것도 학생들이 하도 데모를 해서였지 경제학 교수들이 뽑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20년 전 일이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주류경제학 하는 놈들도 어지간한 놈들이야(웃음)"
p.s2 마르크스 경제학 청강을 한 적이 있는데, 듣다 말았다. 청강하면서 대충 대충 떼우기에는 꽤 어려웠다. 덕분에 자본론이라는 초특급 불온서적을 읽지 않고 건전한 시민이 되었다.
p.s3 김수행 교수가 90년대말 유행하던 제3의 길을 향해 툭툭 던지는 논평들은 노무현에게 그대로 들어맞는다. YS와 DJ에게 하는 말도 노무현에게 그대로 해주고 싶다. "...왜 우리가 그렇게까지 했는지 몰라요. 지금 보면 전부 엉터리였는데......."
p.s4 지승호는 인터뷰어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나? 책이 계속 나오는 걸 보니 다행히 굶지는 않나보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사고, 또 많이 읽으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