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 우리시대의 논리 3
김명인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맑스의 주석자로 살기로 다짐했던 50대의 문학평론가는 90년대를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확실히, 그는 아직도 8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
 
90년대 문학에 대한 저자의 개탄에 공감하기 어렵다. 모든 게 과잉과 열정으로 점철되어 있던 80년대만이 진정한 문학을 꿈꾸던 시대였고, 90년대는 사회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난잡한 감상주의로 가득찬 소설들만 쏟아져 나왔을 뿐이라는 식의 가혹한 비난은 여러모로 부당하다.

한 방향으로만 응축되어 있던 에너지는 그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어지러이 흩어진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모든 문제의식을 사회로만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요했던 시대가 불행한 것 아니었을까. 시대의 사명을 다한 문학인이라면 다음 세대의 각개전투를 애정을 가지고 돌봐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와 혁명의 이름 아래 일상성이 소거되거나 연역적으로 재구성되었던 것이 80년대라면 일상성의 발견, 혹은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와의 연결 고리를 놓쳐 버린 것이 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일상 속에 드리워진 역사, 어느 결에 역사의 한 굽이가 되고 마는 일상. 이것을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통일해 내는 일, 그리하여 우리의 이 지리멸렬하고 무상한 것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영원한 것을 향한, 가치 있는 것을 향한, 정녕 살아봄 직한 세상의 실현을 향한 간절한 움직임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 주는 일은 과연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일까."

저자의 안타까움은 이해가 가지만, 글쎄, 박민규는 아마 "조까라 마이싱!"이라고 하지 않을까.

 

p.s1 저자는 정치평론 부분에서도 현세대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을 표시한다. 그 순수함은 참 아름답지만, 동감하기는 어렵다. 갓쓰고 길거리에 앉아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꾸짖는 유림 선비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모욕이려나..

p.s2 저자는 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도 이야기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80년대 뿐이었다고. 그런 사람이 2000년대를 곱게 바라보기는 여러모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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