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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까칠한 다문화 이야기
손소연 지음 / 테크빌교육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내가 가르치게 될 아이들 중 두 명이 다문화가정의 아이라는 걸 알고 적잖은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었더랬다. 학생들의 우리말 구사는 어느 정도며, 학습 및 생활 지도면에서의 어려움은 없을지, 보호자와의 소통은 원만할지 등 지금 생각해보면 꼭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초면의 어느 학생들에게나 갖는 염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지도해 본 경험이 없어 다른 학생보다 더 배려하고 고려해야 할 점이 도드라지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된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던 그 학생들은 유창한 한국말을 사용하였고, 한국 아이와 거의 다름 없는 외양을 지녀 가르치고 함께 생활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았다. 저학년이라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편이었고, 외국 국적을 가진 보호자도 한국말 구사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라 상담도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다행이었다.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맡은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나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만나는 일이 조금 두렵다. 골치 아픈 일을 경험할 것이 두렵다기보다, 상처받은 아이를 충분히 보듬는 일을 잘 할 수 있을지가 두렵다. 많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얼마나 험난한 성장과정을 거치는지 숱하게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나와 함께 하는 동안 행복감을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은 막연한 강박이 있다.
꼭 읽어봐야겠다 싶은 책을 만났다.
손소연 선생님이 쓰신 <우리가 몰랐던 까칠한 다문화 이야기>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고,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의 과제들과 맞닥뜨리는지 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실제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만난 여러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모습은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보는 내내 연민과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생활은 더 힘겨워진다. 입시 준비의 강도가 점차 세지는 상황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보통 한국 아이들의 삶 속으로 동화되는 건 한국 아이들 당사자도 힘든 일이다. 손소연 선생님은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지만, 손선생님이 전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의 생활은 처절하다. 어른들은 그 아이들의 상처와 외로움을 토닥거리고, 그들의 일탈을 외면하지 않고, 수시로 알아차리고 바로 잡으며 배려해줘야 한다. 이는 어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무거워진 마음을 내버려두면 안될 것 같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은 그 문화만큼이나, 그 문화 가운데 살아온 사람들의 수 만큼의 공을 들여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왜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을 위해 그리 애써야 하는가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의 일탈은 금세 집단의 일탈이 되고, 그 반향은 내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 어떻게든 미치는 법이다. 다문화는 현실이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과 한국에서 죽 나고 자란 부모의 아이들 모두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진지한 고민과 행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쓰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조금 불편한 마음도 들었지만 꼭 알아두어야 하는, 언제든 어디서든 우리가 만나게 될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p. 26 더듬더듬 배워서 한국말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저희들끼리 한국어로 재잘거리는 풍경이 재미있고 예뻤다. 우리 교실 세계 공용어는 한국어이다.(위험한 곳을 알아요 중에서)
p.73 선생님들이 북한이탈가정 학생들을 통일보다 먼저 온 반가운 동포로 안아주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알맞은 지원을 안내해 주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필요한 지원 중에서)
p.79 그런데 알다시피 일반적인 한국가정의 부모도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직접 도움을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가정도 과거의 지식을 배운 부모가 초등학교 교과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의 교과 역시 자녀를 직접 가르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위로의 말을 해도, 다문화가정의 부모는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준이 어머니나 정수 어머니가 아이들의 국어 실력에 집착하기보다는 어머니들이 가진 일본어 능력을 자녀의 또 다른 재능으로 길러주면 좋을텐데 말이다. 어머니들이 너무 조급해했다.
그녀들도 어머니고 나도 어머니이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조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의 조급함이 아이들을 급하게 만든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중에서)
p.81 부모란 가족의 리더로서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인생 선배이다. 부모가 해야 할 영역을 아이들이 대신하게 되면 부모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기 마련이고, 부모에 대한 존경심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대개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부모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흡수한다.
p.82 외국인 부모들은 요청한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로서 위신 구기지 않고 학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이다.
(아이에게 통역시키지 마세요 중에서)
p.128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작인 <살아있는 다문화 교육 이야기>를 썼고, 지금도 고민했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조금 먼저 경험해서 일찍 알게 된 사실들을 다문화가정과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과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놓치면 후회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쓰고 있다. 이 마음을 이어 아이들의 행복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을 위정자들이 개발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성장기인 아이들은 다문화가정 아이든 일반 한국인가정 아이든 내 책을 읽는 것에 반대한다. 성인이 아닌 이들이 행여 자기 옆에 있는 다문화가정 친구를 문제 많고 불쌍한 대상으로 보다가 서로의 성장 가능성을 놓칠까 봐,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마음으로 존중하니까 능히 보듬고 갈 수 있는 일들도 지식으로 알고 머리로만 이해할까 봐 아이들이 읽는 것이 싫다. 이렇듯 개인이 글을 쓰는데도 아이들이 알지 않기를 바라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 우리의 교과서는 다문화가정이 아파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굉장히 단순하고 거칠게 다루고 있다.(바다 건너 불어온 향기 중에서)
p.216 가족이 있는 활동가들은 다른 배우자가 생계를 담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꿈의 150만원’이라고 허탈하게 말한다. 그러니 다문화 관련 일을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수혜를 몰아서 받는 일부 다문화가정을 보면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들 한다. 다문화가 그냥 저절로 꽃을 피우고 무르익은 줄 알고, 다문화를 위해서 일하는 한국인의 인권 보장이나 노동착취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 서운할 때가 많다. 다문화가정이 소외된 국민이라서 지원해야 하고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해야 소중한 사람들이라서 돌봐야 한다면 정부가 원하는 단계까지 그들을 이끌어 주고, 신의를 걸고 봉사하는 또 다른 계층의 노동을 착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노동착취 중에서)
p.246 나는 내가 가르친 외국 국적의 다문화가정 학생이 한국교육을 통해서 모두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중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아이도 있고, 지역사회 시민이 될 아이도 있다. 언젠가 모국으로 돌아가 모국을 사랑하는 그 나라 국민이 될 아이도 있다. 한국 학교에서 외국 국적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아이답게 자라는 것, 체류국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성장하는 것,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고 자신했다. 결국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 삶을 살든 세계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실제 아이들의 상황은 쥐뿔도 알지 못하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언제나 대한민국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대하며 가르치는 행위로 강요했을 수 있다. 아이들이 한국에 완전 동화되어 한국인인 사람처럼 되기를 바라며 가르쳤을 수도 있어서 스스로를 의심해 보았다. (공감이 필요해 중에서)
p. 290 아이들은 화살의 속도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이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지 않다. 아이들이 저학력과 빈곤으로 재생산된 계층이 되어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아갈 거란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을 돌아보며 통곡한다. (미래는 있는걸까 중에서)
201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