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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벽 - 상 ㅣ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황성연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풍의 벽 (상)>에서는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일생과 서사가 저자의 의도와 다양한 장치를 통해 재해석되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19세기, 아직 서양 문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에게 번역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분투하면서 삭제하고, 각색하고, 개작하고, 수정하고, 시험 삼아 써 보는 등의 갖가지 방식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전작에 이어 <폭풍의 벽 (상)>에서도 역사가 여성들을 부당하게 그려내는 방식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동양의 역사는 주로 '남성' 권력자들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기록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소설 속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태도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던지기도 하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을 소설 속 인물로 끌어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써 내려갔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다른 여성 캐릭터는 관련된 남성 캐릭터와는 상관없이 안정적인 치세를 이룩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궁정의 음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신 세력을 축출하는데, 이를 두고 스스로의 성별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과 자조적인 한탄을 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폄하되었던 여성의 위치와 성별에 따른 굴욕적이고 차별적인 태도는 <폭풍의 벽 (상)>에서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전한의 역사를 접할 수 있게 그려졌다.
역사 속 대다수의 여성들은 끊임없는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왔으며, 빈곤, 폭력, 질병 등은 여성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안겨주는 장치로 이용되었다. 특히 하위 계층 여성들의 삶은 기록되지 않고 잊혀졌지만, 여성들의 노력과 헌신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갔던 여성들의 삶은 희망과 저항의 역사였다. 이러한 점을 놓치지 않고 소설 속에 녹여낸 <폭풍의 벽 (상)>을 읽다 보면 여성의 투쟁과 역사는 단순한 허구적 이야기로만 즐길 것이 아닌, 잊혀지지 않을 그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여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미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