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는 왜 그렇게 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까. 가슴으로 느끼기 전에 머리로 분해하고 쪼개어 내재율이 어떻고 상징이 어떻고 은유가 어떻고. 산산조각 찢겨진 시들은 내 가슴에 아무 감동도 주지 못했었다. (정답이 있는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_-;;) 오죽하면 먼저 좋아하고 있던 시도 교과서에 등장하고난 뒤 수업시간에 전신 해부를 당하고 나면 다시 보기도 싫어졌겠는가.

그렇게 시와는 친해지지 못하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멀어지기만 하는 기이한 현상을 체험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래도 간혹, 우연히 마주치는 시 속에서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문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마음을 건드리는 시들을 만나다 보니, 어릴 적 배웠던 기억들은 다 버려버리고 다시 시를 제대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절한 길잡이를 해줄 안내서로 선택한 것이 이 책이다. TV에서 크게 떠들어대는 책이나 베스트 셀러등에 거부감을 느끼는 그런 부류에 속하는 나로서는 신경림 시인이 쓴 책이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다. '느낌표' 보다 시인의 이름에 믿음을 느꼈기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2권은 아직 못 읽어봤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만족이다. 자고로 제대로 된 안내서란, 절대 하나의 길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제시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길이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놓고 주장하기 보다 하나의 가능한 경우로만 보여주고, 길을 나선 자가 직접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신경림 시인은 시인들이 살았던 땅을 직접 찾아가 그 시가 쓰여진 공간과 시간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시인의 시를 보는 자신의 견해와 더불어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들려준다.

처음에는 무작정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쫓아가기 바빴다. 그러나 중반 이후로는 일단 시를 읽어보고 그 풍경과 느낌을 내 속에서 그려본 후, 시인의 이야기를 읽어보며 대화를 나누듯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학교 수업도 이렇게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또다른 즐거움은 시를 직접 낭독하는 즐거움이다. 신경림 시인처럼 직접 그 시가 쓰여진 곳에서 그 정취를 생각하면서 멋드러지게 낭독하지는 못하지만, 가만히 내 골방에서 얕은 소리로라도 '오-매 단풍 들것네' 읊조려보면 가을 단풍이 방안을 가득채우고, 자화상의 한 구절을 읽다보면 어느덧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그 옆에 '추억처럼' 내가 서 있는 것이다. (흠.. 좀 오바인가;;)

이제 시를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즐거운 만남을 찾아 나설 예정이다. 그리고 조금더 노력한다면 마음에 드는 시 몇편이나마 외워보고자 한다. 내 성격상 남들 앞에서 시를 낭독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내 입에서 흥얼흥얼 자연스럽게 시구절들이 흘러나올 수 있게 된다면 지금은 모르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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