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0
필리퍼 피어스 글, 앤터니 메이틀런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치키티토는 스페인어로 아주아주 작다는 뜻이라고 한다. 런던에서 태어 나고 자란 소년 벤에게 치키티토는 환상의 개였다. 개를 기르고 싶어하는 소년의 마음이 만들어 낸 존재하지 않는 개, 그림 속의 개가 환상으로 살아 왔다고 해야 하나…그래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어쩌면 거짓말 같은 환상을 키우는 주인공 벤은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하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실 속의 소년이었다.

독서 연령이 낮을수록 언제 치키티토가 나오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읽으면 앞부분이 지루하고, 그 개가 엄지소년 닐스처럼 살아서 걸어 다니고 직접적으로 주인공과 교우하지 않는데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의 의미를 짚어가며 천천히 읽으면, 완벽한 짜임을 통과하는 재미와 살아 있는 인물들과 만나며 이야기 속의 공간을 누비는 재미를 동시에 맛 볼 수 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가 그랬듯이 이 책 역시 소설적 재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야그다.

그런 재미를 주는 가장 큰 이유는 인물의 리얼리티인데, 작가는 벤의 행동과 심리묘사를 주축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 어느 누구도 놓치지 않고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인물들이 살아 숨쉬며 만들어 내는 역동성은 독자들을 은근하고도 강하게 흡입한다.

'톰'과 마찬가지로 '벤'역시 문명 속에 살면서 욕구를 거부 당하는 아이다. 바로 현재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벤'이 어떤 식으로 현실과 타협하는지가 무척 기대되었는데 결국은 욕망의 해소는 '이사'라는 어른의 힘이 개입되었다는 데 스스로 절망감을 느낀다. 어른으로서 말보다 실천을 하라는 메시지로 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절망감은 부모로서의 주관적인 시선이고, 아이들은 얼마나 해방감을 느낄까를 생각하니 작가의 탁월하고 따뜻한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벤'이 소망하던 '현실의 내 개'라는 욕구를 이루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토록 바라던 것에 대한 결과가 잔인하도록 실망스러웠으므로, 벤도 마음이 독해졌다.../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한다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을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쯤되면 독자도 좌절과 해방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결말이 멋있다. 1318세대와 어른들이 다 함께 침흘리며 읽을 수 있는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되겠지. 단, 천천히 읽으며 필리퍼 피어스가 펼쳐 놓은 공간을 누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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