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 자유로운 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의 기술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4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안성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1. 누가 바보인가?

바보는 누구일까. 수학을 못하는 사람, 아니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이 바보는 아니다. 정말 바보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바보라니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그 일부분인 인간 사회와 거리를 두는 것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취한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 안에서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가지고 인질극을 벌이고, 엔진 하나가 고장 난 상황에서 다른 사려깊고 분별 있는 승객들과 협동하는 대신에 휘파람을 불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스튜어디스에게 점심 식사를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매한가지 일이라고 생각한다.(사바테르, 2006: 11)

그 누구도 위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다면 편안하게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할 것이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사회라고 보고, 비행기의 승객을 우리라고 보면 의문이 풀린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이다. 여러 사회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조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인 정치이기 때문이다.

2. 바보 되지 않기

바보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바보로서 살지 않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사회를 떠나는 것이다. 무인도를 찾아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

사회를 떠나지 않으면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 정치형태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 뒤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어떤 입장에 설지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입장을 결정하고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1. 자신과 사회 이해하기

1) 사회적 인간으로서 개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 속, 곧 사회 속에서 태어난다. 사회 안에서 보호받으며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지만 사회의 법과 제약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가한다. 법과 제약이 지켜질 때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과 제약을 없애는 순간 인간으로서 보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모든 법과 제약을 지켜야만 하는가란 의문이 생긴다.

사회의 법과 제약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니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한 면이 있다. 자신이 사회를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은 태어나자마자 사회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제약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은 이미 결정된 상태이고, 자신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2) 사회의 법과 제약은 약속일뿐

사회의 법과 제약은 사람들끼리 맺은 약속일뿐이다. 따라서 견고해 보이고 오래된 법도 바꿀 수 있다. 새로 사회 구성원이 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다른 사람들과 조정하여 새롭게 법과 제약을 만들면 된다. 자신을 구속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에 따르는 것을 복종, 따르지 않고 새롭게 바꾸려는 행위를 저항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저항을 하는 까닭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여 새로운 법과 제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저항은 결코 사회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정치는 복종과 저항, 이 두 행위를 합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사회의 법과 제약을 만들거나 수정할 때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자신이 복종할 수 있는 법과 제약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마음에 안 들고 저항하여 바꾸고 싶은 법과 제약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사회 법과 제약에 복종하는 이유와 저항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정치적 행위의 시작이다.

3) 정치는 갈등 조정 과정

정치가 갈등의 원인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고 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면 갈등이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경우 겹치고, 원하는 것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갖고자 갈등이 생겨난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 정치이다. 어떠한 집단적인 지휘나 강제력도 없이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정치가 없으면 더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조화가 깨지고 각 개인의 자유가 더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4) 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복종한다

역사에는 여러 정치형태가 존재했다. 현재 많은 국가들은 옛 그리스 사람들의 발명품인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 형태가 과연 효과적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생각이 깊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고 그 사람보고 명령을 내리라고 해야하는 것이 더 나을 거 같아 보인다. 얼핏 보기에 민주주의만큼 비효율적인 것이 없어 보인다. 생각이 얕고, 탐욕과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참견하고, 투표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주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실제 민주주의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정치 형태보다 더 많은 갈등과 더 적은 평온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택했고, 현재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를 택했다. 난 민주주의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한다. 민주주의가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정치형태, 예를 들어 왕정이나 전체주의 등의 경우 개개인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회의 법과 제약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드물었다. 다른 정치형태보다 더 많은 갈등이 생기고 더 적은 평온이 오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형태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역설적이지만 저항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란 정치형태에 복종한다.

5) 어떤 집단보다도 개인이 우선

개인주의란 민족, 인종, 국가와 같은 어떤 집단 보다도 우선시하는 태도이다. 정치형태도, 법률과 제도도, 법률과 제도를 집행하는 국가도 개인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란 정치형태에 복종하는 것은 개개인의 이익이 가장 잘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법률과 제도에 복종하는 까닭도 각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사회란 집단의 시작점이자 구성원인 개인을 무시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같은 이념에는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을 경우 주객이 전도되어 개인이 집단을 위해서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사회 문제를 살펴보고 입장 정하기

1) 경제적 불평등과 사유재산제

경제적 불평등은 사유재산제에 기초한다. 사유재산제가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이므로 사유재산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사적인 개인도 사유재산제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제가 폐지된다면 사적인 개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소유가 제한된 공간인 군대를 생각해보자. 군대에서 개성을 지닌 개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각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군번과 계급일 뿐이다. 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도 저항하지만 사적인 개인의 소멸에는 더 크게 저항할 것이다. 사적인 개인이 사라지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사유재산제를 유지하면서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해가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각 개인이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에서 보장해준다면 완화된 경제적 불평등은 받아들일 수 있다.

2) 환경보호주의와 생태주의

환경보호에 대한 입장은 크게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환경보호주의와 생태주의가 있다.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입장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필요하므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생태주의는 인간은 지구상의 많은 생물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특권이 없으며 다른 생명체의 이해관계보다 인간의 이해관계가 우선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생태주의는 극단적 환경보호주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권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권리보다 더 중요할 것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다른 동물처럼 살아가야할까.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갖고 있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르다.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존재이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보존하며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환경보호는 지지하지만 극단적 환경보호는 받아들일 수 없다.

3) 전쟁과 평화

전쟁은 각 개인에게는 좋은 것이 없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삶 자체를 앗아갈 수 있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각 개인의 입장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드물다. 전쟁 없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무력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여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평화주의와 무력을 악이라고 생각하나 절대적인 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국가가 군대를 조직하여 폭력을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반군국주의가 있다. 평화주의는 악과 싸우기 위해서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일종의 악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난 참된 의미에서 모든 무력을 절대 악이라고 생각하는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내 재산과 신체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 공권력을 긍정한다. 공권력 중 일부인 경찰력이 약해지면 개인 간의 폭력이 증가한다. 따라서 도리어 더 강력하지만 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공권력, 초국가적인 세계정부가 있어 모든 국가 간 폭력을 줄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초국가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만 군대를 폐지한다면 다른 국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될 뿐이다. 전 세계 국가가 함께 폭력을 줄여나가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다. 그 방법이 반군국주의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의무병역을 폐지하여, 군대에서 경험하게 되는 규율과 획일성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진정한 개인주의자 되기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세상 속에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으며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다른 사람의 이익도 자신의 이익처럼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다.

1. 세상 속으로 뛰어 들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살펴보고, 여러 사회 문제를 생각해보고 입장을 정했다면 그 다음 할 일은 분명하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자신과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바보보다, 관심이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객으로 머무는 사람이 더 멍청한 바보이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에 저항하여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2.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 사회적 이익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다른 이의 저항에 함께하는 행동이 연대이다. 연대하기는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연대하는 것이다. 자신과 크게 관련이 없지만 다른 이의 저항에 함께한다면 다른 이도 자신의 저항에 함께할 것이다. 연대의 시작은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함께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페르난도 사바테르,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웅진지식하우스, 2006.

2007/04/28 22:30 http://blog.hani.co.kr/noriteo/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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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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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본 목민심서

목민심서를 누군가 현대판으로 다시 썼다면 아마 자기계발 서적으로 분류될 것 같다. 목민심서가 지방 행정 관료들의 지침서로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처리를 해야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총정리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게는 그렇게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책으로 보였다. 자기계발 서적에서 계속 들어왔던 이야기를 또 듣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었고 기존 정치 질서를 인정하면서 개혁을 꿈꾸는 정도로 여겨졌다. 단지, 그 당시 19세기 초에 이렇게 실용적인 책을 쓴 정약용의 실사구시 정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목민심서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정치학 세미나를 통해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깨달았다.

책 바탕에 깔려 있는 민본사상과 애민사상

목민심서에서 주권재민 사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당대 기존 질서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지방행정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른이 아이를 보살피 듯, 나라가 백성을 보살피는 관계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 당시 조선시대에 왕과 신하, 일반 백성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 당시 당대 질서를 부정하기를 적양용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기존 질서를 부정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마련된 뒤에야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체제를 인정하는 형식적 한계만 보고 목민심서를 판단하다보면 중요한 내용을 놓칠 수 있다.

정약용은 단순히 이론적인 사상으로서 민본사상, 애민사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실천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보여주는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취임 전 하룻밤은 반드시 이웃 고을에서 자고 임지 고을 경내에서 자서는 안된다. 대개 새 수령의 행차에는 수행하고 영접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주 많아 경내에서 자면 백성들이 해를 입게 된다.(33쪽)

수령의 생일에 여러 아전과 군교들이 성찬을 바치더라도 받아서는 안된다. 아전과 군교들이 바치는 성찬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를 빙자하여 가혹하게 거둬들이는 것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63쪽)

목민심서에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애민사상이 담겨 있다. 물론 이 두 사상은 전근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두 사상이 전근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했으니 현대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화사상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이지만 관료들이 정말 일반 시민들을 위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현대적 의미의 시민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과 시민을 사랑하고 시민을 위하는 애민사상은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만큼 국가 행정에 대한 체계적 진단과 처방을 담은 책이 있는가

국가 관료제의 실상, 작동 방식,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와 진단, 처방이 모두 담겨 있는 책이 목민심서이다. 이 정도로 체계적 조사를 바탕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책이 있는가 생각해보자. 현대에 와서도 현대 관료제에 대해서 체계적 분석을 시도한 책은 드물다. 현대에 와서도 찾기 힘든 책을 그 당시 19세기 초에 썼다면 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업무를 시작한 다음날 해야할 일로 정약용이 제시한 일이 고을 지도 그리기였다.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방법론을 제시했는지 알 수 있다.

생각건대 이 지도는 가장 필요한 것이다. 만약 본 현에 화공이 없으면 솜씨가 변변찮아도 괜찮으니 이웃 현에서 데려와야 한다. 반드시 노련한 향임과 아전, 군교 등이 관장하여 지도를 만들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땅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모두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쓸모가 없다. 반드시 먼저 경위선을 그어놓고 1칸을 10리로 하여 동쪽 100리 거리에 있으면 지도상에는 동쪽 10칸에 있게하고, 서쪽으로 10리 거리에 있으면 지도상에는 서쪽 1칸에 있게 그려야 하며, 현의 관아가 꼭 지도의 중앙에 있게 할 필요는 없다.(41쪽)

개인윤리와 정치윤리의 통합

목민심서에서는 개인윤리와 정치윤리가 통합하여 다루고 있다. 유교의 전통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 부분이 서양사상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윤리와 정치 윤리를 구별하고 심지어 반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정약용은 개인윤리와 정치윤리를 구별하지만 둘 사이를 반대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발전된 차원으로 인식했다. 현재에 와서도 정치인의 개인 윤리성을 살펴보는 게 우리의 문화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느껴지는 개인윤리와 정치윤리의 통합을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통합이란 측면에서 다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부도덕한 사람이 정의로운 정치를 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더 비합리적이지 않을까.

몸을 닦은 후에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고을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인들 다스릴 수 있겠는가? 집안을 잘 다스리는 데는 몇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데리고 가는 사람의 수는 반드시 법대로 해야 하고, 둘째 치장은 반드시 검소해야 하고, 셋째 음식은 반드시 절약해야 하고, 넷째 규문(閨門)은 반드시 근엄해야 하고, 다섯째 청탁은 반드시 끊어야 하고, 여섯째 물건을 사들이는 데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조목에 법도를 세우지 못하면 수령으로서의 정사를 가히 알 만하다.(65-66쪽)

이론과 실천의 통일

정약용은 학문과 실천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아래 김현성에 대한 글을 통해서 관료들이 실제 실천은 하지 않고 학문에만 힘쓰는 것을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나 읆조리고 바둑이나 두면서 정사를 아전들에게 맡겨두는 것은 큰 잘못이다.

김현성이 여러 번 주군(州郡)을 맡아 다스렸는데, 손을 씻은 듯 깨끗하게 직책에 봉사하여 청렴한 소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실무에는 익숙하지 못했고 성품이 심히 소탈하고 너그러워 매질하는 것을 일삼지 않았으며, 담담하게 동헌에 앉아 종일 시를 읊조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김현성이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지만 온 고을이 원망하여 탄식하고, 티끌만한 것도 사사로이 범하지 않되 관청 창고는 바닥이 났다”고 하여, 이 말이 한 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53쪽)

이렇듯 학문을 통해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고 현대의 비판적 지식인’상과 부합되는 면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질서 개혁 추구

정약용이 강조한 것은 기존 질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사회 질서의 개혁이었다. 공맹사상을 가지고 이야기했다고 이를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복고 사상을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전거로서, 다른 예를 찾기 힘드니 요순시대를 삼았던 것이다.

읽은 책 : 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창비, 2005.

2007/04/08 15:14 http://blog.hani.co.kr/noriteo/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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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희곡선 범우고전선 25
아리스토파네스 / 범우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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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빚을 걱정하던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소피스트(궤변론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한테 배우면 아무리 불리한 소송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아들 페이딥피데스를 학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이 거절하기에 자기가 배우기 위해 학원으로 간다. 학원에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궤변론자로 오해했던 거 같다.)가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침을 받던 스트레프시아데스는 머리가 아파서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아들을 다시 학원으로 보낸다. 아들은 훌륭히(?) 배워와서 빚소송을 이긴다. 하지만 궤변을 배워온 아들 페이딥피데스는 아버지에게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아버지 스트레프시아데스를 때린다. 이에 화가 난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가 있는 학원에 불을 지른다.

희곡을 읽었을 때 극의 절정이자 해학이 넘치는 곳은 아버지를 때리는 아들의 궤변이었다. 그곳을 옮겨 적어본다.

아버지를 때리는 아들의 궤변

코러스 : 이게 바로 악덕에 대한 사랑,
이 노인은 채권자를 쫓아내고
빚을 떼어먹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오늘 반드시
그 흉게가 먹혀 들지 않을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했었지.
그의 아들은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워 상대방을 설복하고
법을 어기는 데 능하지만
그의 아들이 차라리 벙어리가 되기를 바랄 때가 오리라.(77쪽)

페이딥피데스 : 제우스에게 맹세코 아버지는 맞아도 싸다는 걸 증명하겠습니다.(77쪽)

스트레프시아데스 : 먼저 왜 말다툼이 시작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술을 마시다가 제금을 들고 저애에게 <털을 깎이는 양>이라는 시모니데스의 노래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저애가 대뜸, 제금을 켜고 술좌석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방앗간 처녀와 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페이딥피데스 : 마치 매미라도 식객으로 청한 양 제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얻어맞을 만도 하지요.(78쪽)

아버지의 변1 - 널 사랑하니까 때렸다

페이딥피데스 : 제 말을 가로채기 전에 묻겠는데 제가 어린애였을 때 아버지는 저를 때렸습니까, 안 때렸습니까?
스트레프시아데스 : 그야 때렸지, 그렇지만 그건 널 위해, 널 사랑하기 때문이었어.
페이딥피데스 : 그렇다면 저도 아버지를 위해 때린 것이니 정당한 겁니다. 어째서 아버지는 맞아선 안 되고 저만 맞아야 합니까? 저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노예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린애는 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는 어린애가 얻어맞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늙으면 마음이 어린애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노인은 오히려 어린애보다 더 맞아야 합니다. 노인의 잘못은 어린애의 잘못보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80-81쪽)

아버지의 변2- 아들에게 당해야 하는 법은 없다

스트레프시아데스 : 그렇지만 아비가 이처럼 아들에게 당해야 한다는 법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
페이딥피데스 : 그런 법을 맨 처음에 정한 사람은 아버지나 저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제가 이번에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것을 허용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이 법을 만들기 전에 아들이 당한 구타의 몫을 아버지에게 되돌려 준 것뿐입니다. 우리 어린이는 잠자코 그저 맞기만 했습니다. 새나 그 밖의 동물을 보세요. 부리로 어미를 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그것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겁니까? 그것들이 법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곤 말입니다.(81쪽)

아버지의 변3-그러다가 너도 아이에게 맞는다

스트레프시아데스 : 어쨌든 앞으로는 이 아비를 때려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후회하게 될 테니까.
페이딥피데스 : 왜요?
스트레프시아데스 : 내가 네게 얻어맞는 게 당연하다면, 너도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에게 얻어맞게 될 테니까.
페이딥피데스 : 그렇지만 만일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아버지께 얻어맞은 것만으로 손해를 볼 테고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저를 비웃을 게 아닙니까?
스트레프시아데스 : (관객에게) 나와 동연배의 분들, 아무래도 이 녀석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군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좀 양보를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나쁜 짓을 했을 때 자식한테 얻어맞는 것은 옳은 일 같습니다.(81-82쪽)

아버지 자신의 책임을 깨닫다

페이딥피데스 : 하지만 저에게 이렇게 당하셔도 아버지는 화내실 수 없을 겁니다.
스트레프시아데스 : 어째서? 이런 처사에 대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한단 말이냐?
페이딥피데스 : 아버지처럼 어머니도 때려 줄 겁니다.
스트레프시아데스 :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그건 더욱 나쁜 짓이다.
페이딥피데스 : 이 사론으로 아버지를 설복한 후 어머니를 때리겠다는데 아버지께서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스트레프시아데스 : 뭐라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소크라테스와 함께 너도, 너의 사론도 낭떠러지에 떨어뜨리고 말 테다. 오, 구름의 여신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이런 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코러스장 : 책임은 악덕에 몸을 맡긴 당신에게 있다.
스트레프시아데스 : 그럼 어째서 처음부터 그 말을 내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시골 영감을 부추겨 놓고 이제와서 그러실 수 있습니까?
코러스장 : 악덕에 몸을 맡기는 자를 보면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하지. 혼쭐을 내서 신을 두려워할 줄 알도록 말이야.
스트레프시아데스 : 오, 구름이여, 매정한 말이지만 당연하다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빚을 갚지 않으려고 한 내가 잘못입니다. (82쪽)

불을 지르는 아버지

소크라테스 : (집에서 나온다) 야, 뭘 하고 있는 거야, 지붕 위에서?
스트레프시아데스 : 공간을 재면서 태양을 관찰하고 있소.
소크라테스 : 에, 야단났다, 질식할 것 같아.
카이레폰 : (집에서 뛰어나오면서) 사람 살려, 타죽는다, 타죽어.
스트레프시아데스 : 뭘 바라고 너희들은 신을 멸시하고 달의 위치를 관찰하는 거지? (노예 쿠산티아스에게) 계속 때려 부숴라, 신을 모독했으니 그런 변을 당하는 건 마땅하지.
코러스 : 자,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오늘의 임무를 마쳤으니까.(84쪽)

위 내용처럼 궤변론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합리적인 논리를 넘어서서 마땅히 지켜야할 가치조차 전복시키는 궤변론자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덧글]
선생님들이 지정할 학생들의 금서,
부모들이 지정할 아이들의 금서.

부모들이나 선생님들 보고 금서를 정하라고 하면 이 책을 뽑을 거 같다. 별다른 논리적 근거도 없이 '사랑의 매'를 남용하는 공간이 가정과 학교 아닌가. 아들의 말이 지나친 궤변 같기도 하지만 일면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하면 무리일까.

한 학생이 습관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선생님한테 아들처럼
"선생님도 좀 맞아야겠어요. 왜 맞아야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드리죠."
이야기한다면 선생님은 뭐라고 말할까. 내가 좀 더 어릴적에 이 희곡을 봤다면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때렸던 선생님에게 한 말씀 해드렸을텐데 아쉽다.

단순한 궤변 같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치밀한 논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도 아들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읽은 책 : 그리스, 로마 희곡선, 아리스토파네스 외 2인 지음, 최현 옮김, 1989년, 범우사.
이 중에서 희곡 '구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2007/04/08 03:05 http://blog.hani.co.kr/noriteo/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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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하서명작선 92 하서명작선 92
헤르만 헤세 지음, 이병찬 옮김 / (주)하서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읽은 책은 <수레바퀴 밑에서,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1988년, 우석 >이지만 없어서 다른 출판사 책으로 선택했습니다.

수레바퀴가 상징하는 것은?

학교다. 학교가 갖고 있는 억압성은 학생들을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개미처럼 죽인다.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들은 학교의 억압성에 상처를 받고 감수성을 잃어버린다. 학교에서 바라는 사회에서 유능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정작 자신이 하고 싶지도 않은 공부를 의무로서 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삶의 방향을 찾아갈 시기에 왜 학생들은 매일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하는 걸까. 무엇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사회가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걸까.

한스의 죽음은 친구 하일러와의 우정 탓일까?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던 한스는 남이 시킨 일이 아닌 최초로 스스로 하고 싶은 일, 자신에게 더 중요한 하일러와의 우정을 택했다. 그 뒤 성적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학교를 떠났다. 고향에서 적응하지 못하다가 기계공 일을 시작한지 며칠 안 지나 죽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하일러와의 우정이었다. 학교 생활의 방향성과 목표의식을 상실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분명 하일러였다. 그렇다고 한스의 죽음의 원인은 하일러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하일러와 우정을 나누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의지대로 지켜나간 우정.

그의 갑작스런 죽음, 그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였다. 한스, 자신의 삶을 찾게 하기보다 자신들의 기대대로 한스가 살기를 강요한 사람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한스는 힘겹게 살아가다가 죽고말았다.

하일러는 한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일러는 한스에게 삶에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준 사람이었다.

"너는 어떤 공부든지 좋아서 자진해서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다만 선생들이나 너의 아버지가 무섭기 때문이지. 첫째 둘째가 되면 뭘 하니? 나는 스무째이지만, 그래도 너희들 꽁생원보다는 바보가 아니야."(95쪽)


1등, 2등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기가 바라는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삶,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밖에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일러를 만난 뒤부터 한스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한스에게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하일러의 말에 한스는 자기 삶의 방향성을 찾으려고 방황하지만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했다. 기대 밖의 행동을 하는 한스를 사람들은 버렸다. 학교에서 버림 받은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 사람들도 한스를 버렸다. 그에게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정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삶의 목적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기대대로 살아가는 삶은 쉽게 무너진다

'자기 삶이 자기 삶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 순간, 다른 사람의 기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무너진다. 한순간 삶의 방향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살아왔음을 깨달을 때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지난 삶을 누구한테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을 수는 없다.

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

고등학생 때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었었다. 한스처럼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한스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내게 한스의 방황과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 뒤 난 한스와 같은 방황을 시작했다.

지금의 한국 고등학생이 이 소설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지금 한국의 고등학교는 예전 한스가 다니던 수도원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들이 방황을 하고 방황을 이겨내지 못할까봐 보지 말아야할 책 '금서'란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자신의 삶을 찾고자 방황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레바퀴 밑에서'는 학생들의 금서가 아니라 필독서였다.

읽은 책 : 수레바퀴 밑에서,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1988년, 우석  

2007/02/26 10:09 http://blog.hani.co.kr/noriteo/3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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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하서명작선 92 하서명작선 92
헤르만 헤세 지음, 이병찬 옮김 / (주)하서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읽은 책은 <수레바퀴 밑에서,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1988년, 우석>이지만 검색에 나오지 않아서 

다른 출판사 책으로 올립니다.

 

<수레바퀴 밑에서 줄거리>

한스 신학교 시험을 치르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총명한 아이였다.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그에게 양친이 부자가 아닌 이상 좁은 길이 있을 뿐이었다. 주의 시험을 치르고 신학교로 들어간 뒤 튀빙겐 대학에 들어가 목사가 되든가 가정교사가 되든가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신학교도 고등학교도 학문도 아무 것도 못 한다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아마 견습공이 아니면 치즈 가게나 사무소에 들어가 인간으로 일생을 평생동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인간 가족으로 끝마치겠지. 그런 인간을 한스는 멸시하였다. 어떻게든지 뛰어난 인물이 되려고 했다.(39쪽)

한스는 주시험을 앞두고 자신의 장래를 걱정했으나 시험 결과는 2등, 차석입학이었다.

학교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의 유능한 일원으로 바꾸는 곳?

원시림이 개척되고 정리되어 힘으로써 제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학교도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을 붕괴하여 굴복시키고 힘으로써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의 사명은 당국에서 시인한 원칙에 따라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의 유능한 일원으로 바꾸어, 결국에는 군대식의 빈틈없는 훈련에 의해서 훌륭하게 최후의 완결을 맺어 여러 가지 성실을 그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다.(61쪽)

신학교에서 원시림 같은 인간 하일러를 만나다

한스는 입학 초기에는 차석 입학생으로서 신학교의 기대주였다. 한스는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리려고 애썼다. 그래서 열심히 책상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그들의 우정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볼 때 시기와 그리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소년 시인 하일러를 만났다. 하일러는 특수한 인간이요, 공상가이자 시인이었다. 공부만 하는 학생이 아닌데도 만물박사였다. 그는 지식 자체를 경멸했다. 하일러는 자유로웠고 감상적이었다. 다른 친구와 싸운 뒤에 울었다. 그는 자신의 울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한스는 매일 밤 벌벌 떨며 규정된 공부 시간에 늦지 않도록 열심히 서두르다가 갑절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일러는 이런 한스의 근면성을 공격했다.

"그거야 품팔이꾼이나 할 짓이지. 너는 어떤 공부든지 좋아서 자진해서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다만 선생들이나 너의 아버지가 무섭기 때문이지. 첫째 둘째가 되면 뭘 하니? 나는 스무째이지만, 그래도 너희들 꽁생원보다는 바보가 아니야."(95쪽)

일종의 길든 고양이 같은 한스와 방랑 시인 같은 하일러. 서로 친해질 수 없을 거 같은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하일러를 저버린 한스

어느날 하일러는 음악 연습실 독차지하는 루치우스와 싸웠다. 루치우스는 도망쳤고 추격전을 벌이다 교장에게 들켜 하일러는 감금을 언도받았다. 학생들 중 골치덩어리였던 루치우스를 혼내준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자도 있었으나 아무도 한스조차 하일러의 편을 들지 않았다. 하일러는 한스에게 "너는 비겁한 놈이야, (한스) 기벤라트! 형편없는 자식"(103쪽)이라고 말했다.

고민 끝에 하일러와 우정을 선택하다

"꼭 부탁해. 하일러! 나는 꼴찌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너와 친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어. 어때, 난 네 친구가 되고 싶은데, 그리고 다른 놈과는 아무도 상대하지 않아도 좋다는 걸 보여 주마."(112-113쪽)

한스의 마음 속에 변화가 일어났다.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듯. 그는 하일러에 대한 죄의식에 눈 떴다. 그리고 하일러와의 우정을 택했다. 한스가 친구와의 우정에 행복감을 느끼며 열중할수록 학교의 생활이 서먹해졌다. 선생님들은 모범적이었던 한스가 요주의 인물인 하일러의 나쁜 감화에 패배당했다고 생각했다.

천재적인 인간과 선생님의 관계

선생님들은 하일러 같은 인간을 싫어했다.

천재와 교수들 사이에는 옛날부터 뛰어넘기 어려운 깊은 틈이 있다. 교수들에게 있어서는 천재적인 인간이 학교에서 보여주는 것은 대개 교수를 존경하지 않고, 열 네 살의 나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며, 열 다섯 살에 연애를 하고, 열 여섯에 술집에 드나든다. 또한 금지된 책을 읽고 대담한 작문을 쓰며, 선생님들을 흔히 조롱조로 쳐다보며, 교무 일지에는 언제나 선동자나 감금 후보자로 적혀지는 불량한 학생들이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자기 반에 한 사람의 천재를 두는 것보다는 열 사람의 얼간이를 갖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선생님의 역할은 정상을 벗어난 인간이 아니라, 라틴어를 잘 하고 산술을 잘 하는 꼼꼼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데 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114쪽)

교장 선생님, 한스에게 하일러와 우정을 끊으라고 강요하다

"피곤하지 않도록 하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퀴 밑에 깔리고 말 테니까."
(중략)
"좀 더 묻겠는데 기벤라트, 자네는 하일러와 열심히 교제하고 있는 것 같더군. 그렇지 않나?"
"네, 좀 친하게 지냅니다."
"다른 학생 이상으로 교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는 제 친구이니까요."
"대체 어떻게 되어서 친하게 되었지? 두 사람은 성격도 아주 다르던데."
"모르겠습니다. 제 친구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그 친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는 침착하지도 못하고 불평분자야. 재능은 있을지 모르지만,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해. 자네가 그를 멀리한다면 나로서는 기쁘겠는데 어떻겠나?"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
"안 된다고? 도대체 왜?"
"왜냐하면 그는 제 친구인 걸요. 간단히 저버릴 순 없습니다."
"음, 그러나 다른 학생과 좀더 가까이 지낼 수도 있지 않나. 저 하일러의 나쁜 감화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자네뿐이야. 그 결과는 벌써 눈에 보여. 대체 그의 어느 점에 자네는 매혹을 당하고 있는 거지?"
"저로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를 버린다면 저는 비겁자가 됩니다."
"허어, 그래. 그러면 자네에게 강요하는 건 그만두지. 그러나 차츰 그에게서 떠나 주었으면 좋겠네. 그렇게 되면 나로서도 좋은 일이야. 아주 기쁜 일이지."(117-118쪽)

학업을 멀리하는 한스, 그에게서 떠나간 하일러

한스는 점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학업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학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예전의 모범생이자, 장래의 수석이 될 학생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하일러가 사라졌다. 몸서리치는 수도원을 뛰쳐나와 그의 의지가 명령이나 금지보다 강하다는 걸 교장선생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결국 사흘 째 되는 날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하일러는 탈주로 퇴교 조치를 당했다.

고향으로 내려온 한스 - 한스도 수도원을 떠나다

학교나 아버지나 몇 명의 교사의 잔인한 명예욕은 아무런 후회도 없이 짓밟아 버림으로써, 이 나약하고 아름다운 소년을 이런 지경에까지 몰고와 버렸다는 걸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째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위험한 소년 시절에 매일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던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 버렸던거? 왜 라틴어 학교에서 일부로 그를 친구들로부터 멀리해 버렸던가? 왜 낚시질이며 돌아다니며 노는 것을 금지시켰던가? 왜 심신을 갈가리 찢어놓은 것 같은 쓸 데 없는 공명심의 공허하고 저속한 이상을 불어넣어 주었던가? 왜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마땅히 쉬어야 할 휴가를 그에게 주지 않았던가?(138쪽)

교장선생과 의사는 한스를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신경쇠약 치료차 가라고 했지만 사실상 퇴교조치였다. 그전에 완치되더라도 벌써 뒤떨어진 한스는 휴학한 수 개월 동안, 몇 주일간의 학과라도 회복할 가망이 없었다. 아버지 기벤르트는 한스에게 실망의 분노를 느꼈나. 한스는 누구에게나 소외당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거 같은 마음이 들어, 몽상과 잡념에만 빠져 들었다.

창백한 옛날의 신학교 학생, 한스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건강한 생활에는 내용과 목표가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데 그것을 젊은 기벤라트는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스를 서기로 취직시키든가 수공이라도 가르쳐 보려고 하였으나 아들은 아직 허약하였기 때문에 먼저 원기를 북돋워 주어야 했다. 그것보다 우선은 진심으로 그의 앞날을 걱정해야 좋았을 것이다.(158-159쪽)

'진심으로 그의 앞날을 걱정해야 좋았을 것이다.'란 문장이 불행한 결말을 암시해주었다.

엠마와 사랑에 빠지는 한스, 한스를 버리는 엠마

구두장수 훌라크씨를 도와 사과즙 짜는 일을 하다가 훌라크씨 댁에 와 있던 엠마를 만났다. 철저히 세속적인 여인인 그녀를 만난 뒤 한스에게는 온갖 것이 달라져 곱게 마음을 물들이는 거 같았다. 쾌감에 빠진 것이다. 저녁이 되자 한스는 훌라크씨 댁에 엠마를 보러갔다. 엠마는 한스에게 "내게 키스해 주지 않겠어요?"(174쪽)라고 말했다. 한스의 입술과 엠마의 입술이 닿았을 때 한스는 전신에 전율을 느꼈다.

다음 날 둘은 다시 만났다.
"당신도 날 사랑해요?"
그녀는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까 하였으나 머리를 끄덕일 수박에 없었다.
다음날 엠마를 찾았지만 없었다. 엠마는 가버렸다.

그녀는 인사도 없이, 고별도 없이 떠나가 버렸다. 그가 마지막 밤에 그녀에게 찾아갔을 때 언제 떠난다는 것을 그녀는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 같지 않게 그에게 몸을 맡긴 것이라든지, 그녀의 웃음 소리며 키스를 지금에서야 새삼스레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그녀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184쪽)

기계공 일을 시작하다, 그리고 갑작스런 한스의 죽음

아버지의 권유로 기계공 일을 시작했다.

그토록 고생하며 애썼던 공부와 땀, 그토록 심신을 바쳤던 수많은 기쁨과 그토록 뽐내었던 자만심과 공명심, 그리고 희망에 부푼 몽상! 이 모든 것은 한때 구름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이 모든 것도 이제 와서 보면 온갖 동료들보다 뒤늦게, 모든 사람들에게 조소를 받으며 제일 서투른 견습공이 되어, 일터로 들어가는 것이었다.(185쪽)

한스는 익숙하지 않은 기계공 일에 쉽게 피로를 느꼈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비웃음이었다.
"주 시험에 합격한 대장장이!"(191쪽)

한스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을 힘겹게 버텼다. 그의 두 손은 타는 듯 아팠고, 못은 더 커져 물집이 되었다. 거기에 주인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아 욕을 퍼부었다. 예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던 아우구스트는 내일 한 잔 하자고 제안하였다. 한스는 일요일에는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동의하였다.

술집에서 한스는 직공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도에 넘치게 술을 마신 한스는 너무 술을 많이 마신 것이 씁쓸하게 느꼈다. 아버지와 충돌할 일과 내일 또 일터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들로 인해 두통을 느꼈다. 곧장 집으로 갈 계획이었느 직공들은 또다른 술집 앞에 이르자 들어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이에 한스는 그들을 뿌리치고 혼자서 집으로 향했다.

어떻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도대체 무어라고 말해야 하나?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이제 영원한 품속에 쉬어야 할 것 같고, 잠들어야 할 것 같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았다. 아주 녹초가 되어서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204쪽)

다음 날 9시가 되어도 한스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스는 한낮이 되어서야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강에서 발견되었다.

누가 한스를 죽였을까

교장 선생님의 한스의 장례 행렬을 뒤따르며 라틴어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 애는 정말 훌륭하게 될 수 있었을텐데,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에게 불행한 결과가 생긴다는 것은 정말 비참한 일이 아니겠소?"(207쪽)

구두장수는 프록코트를 입고 묘지 문을 나가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저기 가는 저들도 이 애를 이런 지경에 빠지게 한 것에 한 몫한 사람들이죠."그는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뭐라고?" 기벤라트는 펄쩍 뛰었다. 그리고는 구두장수를 이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천만의 말씀을.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진정하십시오. 기벤라트 씨! 나는 다만 학교 선생들을 말했을 뿐이죠."
"왜, 무엇 때문인가?"
"아뇨,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당신이나 나나 아마 이 애를 위해 여러 가지 소홀히 한 점이 많았겠지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206-20쪽)

읽은 책 : 수레바퀴 밑에서,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1988년, 우석 
 

2007/02/26 08:58 http://blog.hani.co.kr/noriteo/3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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