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 자유로운 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의 기술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4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안성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1. 누가 바보인가?

바보는 누구일까. 수학을 못하는 사람, 아니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이 바보는 아니다. 정말 바보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바보라니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그 일부분인 인간 사회와 거리를 두는 것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취한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 안에서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가지고 인질극을 벌이고, 엔진 하나가 고장 난 상황에서 다른 사려깊고 분별 있는 승객들과 협동하는 대신에 휘파람을 불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스튜어디스에게 점심 식사를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매한가지 일이라고 생각한다.(사바테르, 2006: 11)

그 누구도 위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다면 편안하게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할 것이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사회라고 보고, 비행기의 승객을 우리라고 보면 의문이 풀린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이다. 여러 사회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조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인 정치이기 때문이다.

2. 바보 되지 않기

바보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바보로서 살지 않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사회를 떠나는 것이다. 무인도를 찾아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

사회를 떠나지 않으면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 정치형태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 뒤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어떤 입장에 설지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입장을 결정하고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1. 자신과 사회 이해하기

1) 사회적 인간으로서 개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 속, 곧 사회 속에서 태어난다. 사회 안에서 보호받으며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지만 사회의 법과 제약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가한다. 법과 제약이 지켜질 때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과 제약을 없애는 순간 인간으로서 보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모든 법과 제약을 지켜야만 하는가란 의문이 생긴다.

사회의 법과 제약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니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한 면이 있다. 자신이 사회를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은 태어나자마자 사회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제약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은 이미 결정된 상태이고, 자신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2) 사회의 법과 제약은 약속일뿐

사회의 법과 제약은 사람들끼리 맺은 약속일뿐이다. 따라서 견고해 보이고 오래된 법도 바꿀 수 있다. 새로 사회 구성원이 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다른 사람들과 조정하여 새롭게 법과 제약을 만들면 된다. 자신을 구속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에 따르는 것을 복종, 따르지 않고 새롭게 바꾸려는 행위를 저항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저항을 하는 까닭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여 새로운 법과 제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저항은 결코 사회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정치는 복종과 저항, 이 두 행위를 합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사회의 법과 제약을 만들거나 수정할 때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자신이 복종할 수 있는 법과 제약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마음에 안 들고 저항하여 바꾸고 싶은 법과 제약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사회 법과 제약에 복종하는 이유와 저항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정치적 행위의 시작이다.

3) 정치는 갈등 조정 과정

정치가 갈등의 원인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고 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면 갈등이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경우 겹치고, 원하는 것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갖고자 갈등이 생겨난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 정치이다. 어떠한 집단적인 지휘나 강제력도 없이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정치가 없으면 더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조화가 깨지고 각 개인의 자유가 더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4) 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복종한다

역사에는 여러 정치형태가 존재했다. 현재 많은 국가들은 옛 그리스 사람들의 발명품인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 형태가 과연 효과적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생각이 깊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고 그 사람보고 명령을 내리라고 해야하는 것이 더 나을 거 같아 보인다. 얼핏 보기에 민주주의만큼 비효율적인 것이 없어 보인다. 생각이 얕고, 탐욕과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참견하고, 투표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주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실제 민주주의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정치 형태보다 더 많은 갈등과 더 적은 평온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택했고, 현재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를 택했다. 난 민주주의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한다. 민주주의가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정치형태, 예를 들어 왕정이나 전체주의 등의 경우 개개인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회의 법과 제약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드물었다. 다른 정치형태보다 더 많은 갈등이 생기고 더 적은 평온이 오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형태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역설적이지만 저항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란 정치형태에 복종한다.

5) 어떤 집단보다도 개인이 우선

개인주의란 민족, 인종, 국가와 같은 어떤 집단 보다도 우선시하는 태도이다. 정치형태도, 법률과 제도도, 법률과 제도를 집행하는 국가도 개인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란 정치형태에 복종하는 것은 개개인의 이익이 가장 잘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법률과 제도에 복종하는 까닭도 각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사회란 집단의 시작점이자 구성원인 개인을 무시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같은 이념에는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을 경우 주객이 전도되어 개인이 집단을 위해서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사회 문제를 살펴보고 입장 정하기

1) 경제적 불평등과 사유재산제

경제적 불평등은 사유재산제에 기초한다. 사유재산제가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이므로 사유재산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사적인 개인도 사유재산제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제가 폐지된다면 사적인 개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소유가 제한된 공간인 군대를 생각해보자. 군대에서 개성을 지닌 개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각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군번과 계급일 뿐이다. 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도 저항하지만 사적인 개인의 소멸에는 더 크게 저항할 것이다. 사적인 개인이 사라지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사유재산제를 유지하면서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해가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각 개인이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에서 보장해준다면 완화된 경제적 불평등은 받아들일 수 있다.

2) 환경보호주의와 생태주의

환경보호에 대한 입장은 크게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환경보호주의와 생태주의가 있다.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입장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필요하므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생태주의는 인간은 지구상의 많은 생물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특권이 없으며 다른 생명체의 이해관계보다 인간의 이해관계가 우선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생태주의는 극단적 환경보호주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권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권리보다 더 중요할 것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다른 동물처럼 살아가야할까.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갖고 있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르다.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존재이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보존하며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환경보호는 지지하지만 극단적 환경보호는 받아들일 수 없다.

3) 전쟁과 평화

전쟁은 각 개인에게는 좋은 것이 없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삶 자체를 앗아갈 수 있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각 개인의 입장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드물다. 전쟁 없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무력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여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평화주의와 무력을 악이라고 생각하나 절대적인 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국가가 군대를 조직하여 폭력을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반군국주의가 있다. 평화주의는 악과 싸우기 위해서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일종의 악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난 참된 의미에서 모든 무력을 절대 악이라고 생각하는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내 재산과 신체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 공권력을 긍정한다. 공권력 중 일부인 경찰력이 약해지면 개인 간의 폭력이 증가한다. 따라서 도리어 더 강력하지만 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공권력, 초국가적인 세계정부가 있어 모든 국가 간 폭력을 줄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초국가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만 군대를 폐지한다면 다른 국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될 뿐이다. 전 세계 국가가 함께 폭력을 줄여나가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다. 그 방법이 반군국주의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의무병역을 폐지하여, 군대에서 경험하게 되는 규율과 획일성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진정한 개인주의자 되기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세상 속에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으며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다른 사람의 이익도 자신의 이익처럼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다.

1. 세상 속으로 뛰어 들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살펴보고, 여러 사회 문제를 생각해보고 입장을 정했다면 그 다음 할 일은 분명하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자신과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바보보다, 관심이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객으로 머무는 사람이 더 멍청한 바보이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에 저항하여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2.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 사회적 이익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다른 이의 저항에 함께하는 행동이 연대이다. 연대하기는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연대하는 것이다. 자신과 크게 관련이 없지만 다른 이의 저항에 함께한다면 다른 이도 자신의 저항에 함께할 것이다. 연대의 시작은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함께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페르난도 사바테르,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웅진지식하우스, 2006.

2007/04/28 22:30 http://blog.hani.co.kr/noriteo/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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