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본 목민심서

목민심서를 누군가 현대판으로 다시 썼다면 아마 자기계발 서적으로 분류될 것 같다. 목민심서가 지방 행정 관료들의 지침서로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처리를 해야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총정리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게는 그렇게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책으로 보였다. 자기계발 서적에서 계속 들어왔던 이야기를 또 듣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었고 기존 정치 질서를 인정하면서 개혁을 꿈꾸는 정도로 여겨졌다. 단지, 그 당시 19세기 초에 이렇게 실용적인 책을 쓴 정약용의 실사구시 정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목민심서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정치학 세미나를 통해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깨달았다.

책 바탕에 깔려 있는 민본사상과 애민사상

목민심서에서 주권재민 사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당대 기존 질서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지방행정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른이 아이를 보살피 듯, 나라가 백성을 보살피는 관계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 당시 조선시대에 왕과 신하, 일반 백성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 당시 당대 질서를 부정하기를 적양용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기존 질서를 부정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마련된 뒤에야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체제를 인정하는 형식적 한계만 보고 목민심서를 판단하다보면 중요한 내용을 놓칠 수 있다.

정약용은 단순히 이론적인 사상으로서 민본사상, 애민사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실천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보여주는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취임 전 하룻밤은 반드시 이웃 고을에서 자고 임지 고을 경내에서 자서는 안된다. 대개 새 수령의 행차에는 수행하고 영접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주 많아 경내에서 자면 백성들이 해를 입게 된다.(33쪽)

수령의 생일에 여러 아전과 군교들이 성찬을 바치더라도 받아서는 안된다. 아전과 군교들이 바치는 성찬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를 빙자하여 가혹하게 거둬들이는 것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63쪽)

목민심서에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애민사상이 담겨 있다. 물론 이 두 사상은 전근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두 사상이 전근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했으니 현대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화사상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이지만 관료들이 정말 일반 시민들을 위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현대적 의미의 시민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과 시민을 사랑하고 시민을 위하는 애민사상은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만큼 국가 행정에 대한 체계적 진단과 처방을 담은 책이 있는가

국가 관료제의 실상, 작동 방식,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와 진단, 처방이 모두 담겨 있는 책이 목민심서이다. 이 정도로 체계적 조사를 바탕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책이 있는가 생각해보자. 현대에 와서도 현대 관료제에 대해서 체계적 분석을 시도한 책은 드물다. 현대에 와서도 찾기 힘든 책을 그 당시 19세기 초에 썼다면 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업무를 시작한 다음날 해야할 일로 정약용이 제시한 일이 고을 지도 그리기였다.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방법론을 제시했는지 알 수 있다.

생각건대 이 지도는 가장 필요한 것이다. 만약 본 현에 화공이 없으면 솜씨가 변변찮아도 괜찮으니 이웃 현에서 데려와야 한다. 반드시 노련한 향임과 아전, 군교 등이 관장하여 지도를 만들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땅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모두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쓸모가 없다. 반드시 먼저 경위선을 그어놓고 1칸을 10리로 하여 동쪽 100리 거리에 있으면 지도상에는 동쪽 10칸에 있게하고, 서쪽으로 10리 거리에 있으면 지도상에는 서쪽 1칸에 있게 그려야 하며, 현의 관아가 꼭 지도의 중앙에 있게 할 필요는 없다.(41쪽)

개인윤리와 정치윤리의 통합

목민심서에서는 개인윤리와 정치윤리가 통합하여 다루고 있다. 유교의 전통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 부분이 서양사상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윤리와 정치 윤리를 구별하고 심지어 반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정약용은 개인윤리와 정치윤리를 구별하지만 둘 사이를 반대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발전된 차원으로 인식했다. 현재에 와서도 정치인의 개인 윤리성을 살펴보는 게 우리의 문화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느껴지는 개인윤리와 정치윤리의 통합을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통합이란 측면에서 다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부도덕한 사람이 정의로운 정치를 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더 비합리적이지 않을까.

몸을 닦은 후에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고을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인들 다스릴 수 있겠는가? 집안을 잘 다스리는 데는 몇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데리고 가는 사람의 수는 반드시 법대로 해야 하고, 둘째 치장은 반드시 검소해야 하고, 셋째 음식은 반드시 절약해야 하고, 넷째 규문(閨門)은 반드시 근엄해야 하고, 다섯째 청탁은 반드시 끊어야 하고, 여섯째 물건을 사들이는 데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조목에 법도를 세우지 못하면 수령으로서의 정사를 가히 알 만하다.(65-66쪽)

이론과 실천의 통일

정약용은 학문과 실천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아래 김현성에 대한 글을 통해서 관료들이 실제 실천은 하지 않고 학문에만 힘쓰는 것을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나 읆조리고 바둑이나 두면서 정사를 아전들에게 맡겨두는 것은 큰 잘못이다.

김현성이 여러 번 주군(州郡)을 맡아 다스렸는데, 손을 씻은 듯 깨끗하게 직책에 봉사하여 청렴한 소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실무에는 익숙하지 못했고 성품이 심히 소탈하고 너그러워 매질하는 것을 일삼지 않았으며, 담담하게 동헌에 앉아 종일 시를 읊조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김현성이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지만 온 고을이 원망하여 탄식하고, 티끌만한 것도 사사로이 범하지 않되 관청 창고는 바닥이 났다”고 하여, 이 말이 한 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53쪽)

이렇듯 학문을 통해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고 현대의 비판적 지식인’상과 부합되는 면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질서 개혁 추구

정약용이 강조한 것은 기존 질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사회 질서의 개혁이었다. 공맹사상을 가지고 이야기했다고 이를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복고 사상을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전거로서, 다른 예를 찾기 힘드니 요순시대를 삼았던 것이다.

읽은 책 : 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창비, 2005.

2007/04/08 15:14 http://blog.hani.co.kr/noriteo/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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