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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 경제 위기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 부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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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한 사기극 - 


I. 극 제목에 대하여

폴 크루그먼의 교수의 ‘Peddling Prosperity: Economic Sense and Nonsense in 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의 책을 역자는 ’하찮은 번영: 기대 체감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라고 번역하였다. 제목의 ’Peddling'을 ‘Prosperity'를 꾸며주는 형용사로 본 것이다. 하지만 책의 서론에서 볼 수 있듯이 크루그먼 교수는 3막짜리 연극처럼 구성했다.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 한편의 시대극의 제목으로 과연 ’하찮은 번영‘이 맞는가 의문이 든다.

이 연극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직업에 따라 나눠보면 정치가, 경제학자, 정책기획가이다. 이 중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책기획가들이다. 이야기의 주요 내용이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들에게 경제학자들과 정책기획자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어떻게 선전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정책기획자들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그 결과 어떤 정책이 시행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극의 내용에 맞게 ’Peddling'을 동명사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주어는 물론 주인공인 정책기획가들이다. ‘peddle'의 타동사로서 의미는 행상하다, 소매하다, 퍼뜨리다 등이 있다. 'prosperity'를 목적어로 본다면, 이 책의 제목은 번영을 행상하기, 번영을 소매하기, 번영을 퍼뜨리기 등이 될 것이다. 행상이나 소매가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와 정책기획가들의 이미지가 비슷하다. 주로 보수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사상을 정치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포장해서 판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보수경제학자들이 정책의 도매상이고 정책기획가들이 소매상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극 제목으로 ‘번영을 소매하기’란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제목을 보고 어떤 관객이 오겠는가. 조금 그럴 듯 하게 팔리게 바꾸어보자. ‘번영을 팝니다!’가 좋을 것 같다. 제목만 봐도 정책기획가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번영을 판다고 난리를 벌이는 광경이 떠오르는 것 같다.

II. 배경

케인스 학파가 경제학을 평정(?)한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1970년 대까지 서유럽, 일본과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생활수준향상이 이루어졌다. 풍요의 시대였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이 기대 체감의 시대의 시작이라 부른 1973년부터 생활 수준이 오랫동안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 경기 정체란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를 놓고 학자들과 정책기획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각자 나서서 왜 현상의 원인과 처방전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방전을 내놓은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무엇일까.

III. 인물

1. 케인스 - 케인스학파

왜 경기가 후퇴할까. 모두가 동시에 현금을 축적하려고 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답은 지출이 줄면 소득도 준다는 것이다. 상대도 구매를 하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려고 하고, 나도 구매를 하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려고 하니, 나도 팔지 못해 지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탁아 조합의 예를 들어 보자. 유통되는 쿠폰의 수가 모자란 상황이다. 조합원들이 평균적으로 원하는 쿠폰 보유량보다 적게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쿠폰을 확보하려고 한다. 따라서 외출을 자제함으로써 쿠폰을 갖으려고 한다. 모두가 외출을 꺼려서 탁아 조합이 침체에 빠진다. 이때 한 달에 최소 두 번 외출해야 한다는 규칙을 제도화한다. 이는 사용할 쿠폰 중 2장은 이미 확보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쿠폰 유통량을 늘려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반전되어 유통량이 증가하여 조합원들 모두가 자주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쿠폰은 경제에서 통화와 같다. 그의 해결책은 통화량을 늘려주면 경기 후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화량을 늘려주었는데도 기업과 가계에서 축적하려고만 한다면, 공공사업을 확대하여 정부가 직접 지출을 하면 된다. 물론 이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2. 프리드먼 - 통화주의자들

밀턴 프리드먼의 요점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은 불필요한 것을 넘어 경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니 단순하고 기계적인 통화 준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의견처럼 불황이 통화량의 감소로 발생한다면, 통화 당국은 경제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없다. 통화공급을 꾸준히 유지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케인스 이론은 왜 경제에 해로운가. 보일러를 쓰는 온수기를 생각해보자. 보일러가 욕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온수 수도꼭지를 돌리면 한참 뒤에 뜨거운 물이 나온다. 너무 뜨거워서 온수를 잠그니 이번에는 찬물이 나온다. 샤워를 하는 사람이 경제이고, 이에 반응하는 보일러는 통화 정책 당국이다. 통화량이 부족하다는 신호에 한참 늦게 돈을 풀어서 경기침체(찬물)를 실컷 맛보고, 이제 거꾸로 경제호황(뜨거운 물)이 되었는데도 돈을 계속 풀려서 뜨겁다 못해 델 정도가 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결국 정부 통화정책은 경제의 변동폭을 키우는 결과만 가져온다는 비판이다. 해결책은 수도꼭지의 온수를 일정하게 두는 것이 최선책이듯 통화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과연 프리드먼의 말처럼 통화량이 측정하기 힘든 것이고, 통화 정책 당국의 결정이 늦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하는 점이다. 연방준비은행이 실제로 발행하는 것이나 지불 수단으로 직접 쓰일 수 있는 현금에 당좌 예금을 더한 합계를 통화라 한다면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통화정책의 반응속도가 느리지는 않다.

3. 루카스 - 합리적 기대학파

로버트 루카스는 경기 후퇴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이 현금을 보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수요 감소가 특수한 현상인지 보편적 현상인 디플레이션인지 알기 힘들다. 따라서 경기 후퇴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침체 국면임을 깨닫게 되면 자동 조절된다.

그리고 루카스는 예측 가능한 모든 통화 정책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연방준비이사회가 공식 실업률이 1%증가할 때마다 통화공급을 1% 증가시키는 규칙적인 정책을 하고, 이 정책을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고 하자. 이때 기업들은 규칙적인 정책에 따라 실업률 통계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가격을 인상하므로 통화확대는 산출물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가격에만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설명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증가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이론적 설명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과연 기업이 가격을 결정할 때 통화 정책과 통화 정책을 예측할 정도로 거시 경제 지표를 주의 깊게 살펴보냐는 것이다.

4. 공급 중시 경제학파

공급 중시 경제학자들은 통화 정책과 같은 수요 측면의 정책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조세 감면이 주는 인센티브 효과가 크기 때문에 세금을 인하하면 경제활동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세수가 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수요 측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통화 공급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경제 전체의 신용량에 비해서 통화 공급에 해당하는 양은 너무 적다는 것이다.

5. 신 케인즈학파

루카스의 말처럼 기업과 가계는 합리적일까. 보스턴 주택시장을 보자. 이곳에서는 팔리지 않는 집들로 몇 년 동안이나 넘쳐났다. 왜 사람들은 주택 가격을 내리지 않았던 것일까. 답은 파는 사람들이 가격을 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밀처럼 동질적 상품이 아니라 주택시장이나 노동시장 같은 경우 차별화된 자산을 갖고 있다. 가격이 낮을수록 잘 팔리지만 팔릴 수 있는 정해진 가격은 없다. 운 좋으면 서두르는 사람한테 비싼 가격에 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고 비합리적이라고 판매자들을 볼 수 있을까. 그들은 어느 정도 합리적일 뿐이다.

이런 시장의 특징은 매우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보스턴 주택시장의 침체처럼 시장이 불완전 경쟁 시장이고, 완전하게 합리적이지는 못한 개인들이 있다면 시장은 비합리적인 결과인 장기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황이 경제 전체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즉각 대폭 가격과 임금을 하락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 화폐의 공급의 증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6. 전략적 무역론자

전략적 무역론자들은 미국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경제가 침체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항공산업의 예를 통해서 설명한다. 항공산업에서 유럽의 지원으로 에어버스 회사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보잉사가 독차지할 수 있는 이익이 감소했다는 논리이다. 유럽의 지원으로 에어버스가 성장했듯이 전략 산업에 국가 지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고용 당 부가가가치가 큰 사업에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을 늘이고, 국제적 경쟁자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업을 유지해나가야만 실질 소득이 상승한다는 논리이다.

반론은 국제 경쟁을 승자가 엄청난 이윤을 보장받는 두 나라 대표기업간의 투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산업은 그렇게 경직되어 있지 않으며, 미국이 승리해도 국내 기업들 간의 경쟁으로 가격과 이윤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산업에 지원을 해야할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정 산업에 보조금 형식의 지원을 한다면 다른 산업의 자본과 노동은 배제하게 되는데 정부가 그런 업무를 수행할만큼 객관적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실제 미국 경제에서 1991년 기준 수출은 미국 국내 총생산의 10%, 수입은 11%였다. 또 1991년 미국의 산출물의 76%는 재화가 아닌 서비스로 구성되었다. 이 서비스 분야는 국제 경쟁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IV. 사건과 비극적 결말

여섯 명의 주요 인물들과 주장을 소개했다. 과연 1970년대 이후 누가 정치가들과 손을 잡고 경제 정책을 이끌었을까. 극의 제목을 보고 눈치챘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 경제학을 대변한 케인즈학파도 아니고 보수주의 경제학을 대변하는 통화주의자들, 합리적 기대학파 사람들도 아니다. 번영을 판다고 외친 공급 중시 경제학파 사람들이었다. 과연 실제로 그들은 번영을 팔았을까.

그들은 근본적이고 대규모적 고도 성장을 약속하였다. 그들 뜻대로 미국에서는 레이건 집권 기에 대규모 감세가 행해졌다. 이들의 감세는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부가적인 소득에 지불하는 세율인 한계 세율을 낮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균형하게 고소득층 가계의 세율을 낮추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12년 동안에 최상위 1%의 가계는 소득이 두배가 되었다. 6%의 성장률에 해당하는 결과이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 1980년대는 말그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평균 가계 소득은 11% 증가하였지만, 중간 소득은 불과 4% 증가했다. 소득의 양극화, 불균형 문제가 심화된 것이다. 여기에 민간 저축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1980년에 가처분 소득의 9.1%였던 것이 1987년에는 5.1% 수준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재정적자가 급속히 불어났다.

소득 양극화, 정부 재정 적자 심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들이 말했던 고도 성장은 왔는가. 성장률은 연도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 어느 시기의 평균 성장률을 계산할지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만약 보수주의의 실패를 보여주고 싶다면 1980년말부터 1992년말까지 공화당이 집권했던 전 기간의 평균 성장률 2.1%를 전호 호시절이었던 1947년부터 1973년까지 평균 성장률 3.4%와 비교하면 된다.

그렇다면 레이건의 집권시기와 맞물려 이루어진 경기 회복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정부와 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연방준비이사회의 통화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1979년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통화를 죄자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경기 침체가 야기되었다. 그 뒤 1982년 연방준비이사회가 정책을 바꾸자, 경제도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경기 회복의 숨은 주인공은 연방준비이사회의 통화 정책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이 하지 않은 일을 자기들이 했다고 사기를 친 꼴이다. 그들의 뒤를 이어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전략적 무역론자들이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목은 여전히 비슷했다. 클린턴 버전의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V. 한국판“번영을 팝니다!”절찬리 상연 중

인터넷으로 실시간 세계뉴스가 전해지지만 경제사상은 꼭 뒤늦게야 한국에 온다. 미국 유학파 학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자리를 잡기까지 걸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일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레이건의 정책과 닮았다. 레이건이 미국에서 집권했던 시기가 20년도 더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공급 중시 경제학파의 목소리 말이다(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정책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공급 중시 경제학파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크루그먼의 이 극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하는 말도 같다. 매년 7% 고성장을 약속한다. 그 방법으로는 감세를 말한다. 한국이라고 특별해서 결과는 다를 것인가.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수한 현상이라고 보는 완전하게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 것일까. 결과도 미국과 비슷할 것이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부동산세 감세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08년 세제개편안’을 9월 1일에 기획재정부는 이미 내놓았다. 소득 불균형에 따른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하다.

경제학의 해결 난망의 미스터리라는 경제 성장률이 시대와 국가에 따라 왜 다른가하는 문제는 한국 정부에게는 미스터리가 아닌 것 같다. 해결책이라도 예전 미국식 정책과 다르다면 의심쩍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믿어보겠으나 해결책도 똑같다.

한걸음 더나아가 기존에 있었던 모든 신자유주의 정책의 종합편을 상연할 계획인 것 같다. 영국에서 실패로 끝난 공기업 민영화를 시행할 계획을 짜고 있다. 주로 자연 독점 시장에서 영업하는 공기업들을 대거 민영화할 경우 그 결과는 영국과 같을 것이다.

VI. 기대체감 시대의 경제학의 의미

단순한 정책 기획가들의 생각이 팔리고, 학자들의 훌륭한 생각은 팔리지 않는 이 시기에 경제학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의 공연의 부제인 ‘기대 체감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의 극을 통해 경제학이 보여준 의미를 정리해본다.

● 경제 성장의 근본 원인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 독점 시장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 국가도 만능은 아니다. 따라서 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이런 의미들이 단순한 경제학들에 묻혀 정책에 적용되지 않을 때 경제학은 무의미한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지만, 훌륭한 사상은 영원하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크루그먼의 말처럼, 언젠가는 그 의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가 오기를 희망한다.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참고자료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향연>, 김이수,오승훈 옮김, 부.키, 1997. 
 

2008/09/25 22:38 http://blog.hani.co.kr/noriteo/17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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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 자유로운 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의 기술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4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안성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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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누가 바보인가?

바보는 누구일까. 수학을 못하는 사람, 아니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이 바보는 아니다. 정말 바보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바보라니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그 일부분인 인간 사회와 거리를 두는 것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취한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 안에서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가지고 인질극을 벌이고, 엔진 하나가 고장 난 상황에서 다른 사려깊고 분별 있는 승객들과 협동하는 대신에 휘파람을 불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스튜어디스에게 점심 식사를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매한가지 일이라고 생각한다.(사바테르, 2006: 11)

그 누구도 위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다면 편안하게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할 것이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사회라고 보고, 비행기의 승객을 우리라고 보면 의문이 풀린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이다. 여러 사회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조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인 정치이기 때문이다.

2. 바보 되지 않기

바보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바보로서 살지 않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사회를 떠나는 것이다. 무인도를 찾아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

사회를 떠나지 않으면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 정치형태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 뒤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어떤 입장에 설지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입장을 결정하고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1. 자신과 사회 이해하기

1) 사회적 인간으로서 개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 속, 곧 사회 속에서 태어난다. 사회 안에서 보호받으며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지만 사회의 법과 제약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가한다. 법과 제약이 지켜질 때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과 제약을 없애는 순간 인간으로서 보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모든 법과 제약을 지켜야만 하는가란 의문이 생긴다.

사회의 법과 제약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니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한 면이 있다. 자신이 사회를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은 태어나자마자 사회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제약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은 이미 결정된 상태이고, 자신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2) 사회의 법과 제약은 약속일뿐

사회의 법과 제약은 사람들끼리 맺은 약속일뿐이다. 따라서 견고해 보이고 오래된 법도 바꿀 수 있다. 새로 사회 구성원이 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다른 사람들과 조정하여 새롭게 법과 제약을 만들면 된다. 자신을 구속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에 따르는 것을 복종, 따르지 않고 새롭게 바꾸려는 행위를 저항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저항을 하는 까닭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여 새로운 법과 제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저항은 결코 사회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정치는 복종과 저항, 이 두 행위를 합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사회의 법과 제약을 만들거나 수정할 때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자신이 복종할 수 있는 법과 제약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마음에 안 들고 저항하여 바꾸고 싶은 법과 제약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사회 법과 제약에 복종하는 이유와 저항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정치적 행위의 시작이다.

3) 정치는 갈등 조정 과정

정치가 갈등의 원인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고 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면 갈등이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경우 겹치고, 원하는 것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갖고자 갈등이 생겨난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 정치이다. 어떠한 집단적인 지휘나 강제력도 없이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정치가 없으면 더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조화가 깨지고 각 개인의 자유가 더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4) 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복종한다

역사에는 여러 정치형태가 존재했다. 현재 많은 국가들은 옛 그리스 사람들의 발명품인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 형태가 과연 효과적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생각이 깊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고 그 사람보고 명령을 내리라고 해야하는 것이 더 나을 거 같아 보인다. 얼핏 보기에 민주주의만큼 비효율적인 것이 없어 보인다. 생각이 얕고, 탐욕과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참견하고, 투표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주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실제 민주주의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정치 형태보다 더 많은 갈등과 더 적은 평온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택했고, 현재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를 택했다. 난 민주주의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한다. 민주주의가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정치형태, 예를 들어 왕정이나 전체주의 등의 경우 개개인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회의 법과 제약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드물었다. 다른 정치형태보다 더 많은 갈등이 생기고 더 적은 평온이 오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형태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역설적이지만 저항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란 정치형태에 복종한다.

5) 어떤 집단보다도 개인이 우선

개인주의란 민족, 인종, 국가와 같은 어떤 집단 보다도 우선시하는 태도이다. 정치형태도, 법률과 제도도, 법률과 제도를 집행하는 국가도 개인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란 정치형태에 복종하는 것은 개개인의 이익이 가장 잘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법률과 제도에 복종하는 까닭도 각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사회란 집단의 시작점이자 구성원인 개인을 무시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같은 이념에는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을 경우 주객이 전도되어 개인이 집단을 위해서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사회 문제를 살펴보고 입장 정하기

1) 경제적 불평등과 사유재산제

경제적 불평등은 사유재산제에 기초한다. 사유재산제가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이므로 사유재산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사적인 개인도 사유재산제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제가 폐지된다면 사적인 개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소유가 제한된 공간인 군대를 생각해보자. 군대에서 개성을 지닌 개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각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군번과 계급일 뿐이다. 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도 저항하지만 사적인 개인의 소멸에는 더 크게 저항할 것이다. 사적인 개인이 사라지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사유재산제를 유지하면서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해가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각 개인이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에서 보장해준다면 완화된 경제적 불평등은 받아들일 수 있다.

2) 환경보호주의와 생태주의

환경보호에 대한 입장은 크게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환경보호주의와 생태주의가 있다.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입장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필요하므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생태주의는 인간은 지구상의 많은 생물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특권이 없으며 다른 생명체의 이해관계보다 인간의 이해관계가 우선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생태주의는 극단적 환경보호주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권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권리보다 더 중요할 것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다른 동물처럼 살아가야할까.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갖고 있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르다.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존재이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보존하며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환경보호는 지지하지만 극단적 환경보호는 받아들일 수 없다.

3) 전쟁과 평화

전쟁은 각 개인에게는 좋은 것이 없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삶 자체를 앗아갈 수 있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각 개인의 입장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드물다. 전쟁 없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무력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여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평화주의와 무력을 악이라고 생각하나 절대적인 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국가가 군대를 조직하여 폭력을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반군국주의가 있다. 평화주의는 악과 싸우기 위해서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일종의 악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난 참된 의미에서 모든 무력을 절대 악이라고 생각하는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내 재산과 신체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 공권력을 긍정한다. 공권력 중 일부인 경찰력이 약해지면 개인 간의 폭력이 증가한다. 따라서 도리어 더 강력하지만 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공권력, 초국가적인 세계정부가 있어 모든 국가 간 폭력을 줄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초국가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만 군대를 폐지한다면 다른 국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될 뿐이다. 전 세계 국가가 함께 폭력을 줄여나가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다. 그 방법이 반군국주의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의무병역을 폐지하여, 군대에서 경험하게 되는 규율과 획일성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진정한 개인주의자 되기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세상 속에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으며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다른 사람의 이익도 자신의 이익처럼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다.

1. 세상 속으로 뛰어 들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살펴보고, 여러 사회 문제를 생각해보고 입장을 정했다면 그 다음 할 일은 분명하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자신과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바보보다, 관심이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객으로 머무는 사람이 더 멍청한 바보이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의 법과 제약에 저항하여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2.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 사회적 이익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다른 이의 저항에 함께하는 행동이 연대이다. 연대하기는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연대하는 것이다. 자신과 크게 관련이 없지만 다른 이의 저항에 함께한다면 다른 이도 자신의 저항에 함께할 것이다. 연대의 시작은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함께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페르난도 사바테르,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정치학, 웅진지식하우스, 2006.

2007/04/28 22:30 http://blog.hani.co.kr/noriteo/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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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본 목민심서

목민심서를 누군가 현대판으로 다시 썼다면 아마 자기계발 서적으로 분류될 것 같다. 목민심서가 지방 행정 관료들의 지침서로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처리를 해야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총정리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게는 그렇게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책으로 보였다. 자기계발 서적에서 계속 들어왔던 이야기를 또 듣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었고 기존 정치 질서를 인정하면서 개혁을 꿈꾸는 정도로 여겨졌다. 단지, 그 당시 19세기 초에 이렇게 실용적인 책을 쓴 정약용의 실사구시 정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목민심서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정치학 세미나를 통해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깨달았다.

책 바탕에 깔려 있는 민본사상과 애민사상

목민심서에서 주권재민 사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당대 기존 질서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지방행정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른이 아이를 보살피 듯, 나라가 백성을 보살피는 관계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 당시 조선시대에 왕과 신하, 일반 백성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 당시 당대 질서를 부정하기를 적양용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기존 질서를 부정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마련된 뒤에야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체제를 인정하는 형식적 한계만 보고 목민심서를 판단하다보면 중요한 내용을 놓칠 수 있다.

정약용은 단순히 이론적인 사상으로서 민본사상, 애민사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실천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보여주는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취임 전 하룻밤은 반드시 이웃 고을에서 자고 임지 고을 경내에서 자서는 안된다. 대개 새 수령의 행차에는 수행하고 영접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주 많아 경내에서 자면 백성들이 해를 입게 된다.(33쪽)

수령의 생일에 여러 아전과 군교들이 성찬을 바치더라도 받아서는 안된다. 아전과 군교들이 바치는 성찬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를 빙자하여 가혹하게 거둬들이는 것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63쪽)

목민심서에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애민사상이 담겨 있다. 물론 이 두 사상은 전근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두 사상이 전근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했으니 현대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화사상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이지만 관료들이 정말 일반 시민들을 위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현대적 의미의 시민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과 시민을 사랑하고 시민을 위하는 애민사상은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만큼 국가 행정에 대한 체계적 진단과 처방을 담은 책이 있는가

국가 관료제의 실상, 작동 방식,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와 진단, 처방이 모두 담겨 있는 책이 목민심서이다. 이 정도로 체계적 조사를 바탕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책이 있는가 생각해보자. 현대에 와서도 현대 관료제에 대해서 체계적 분석을 시도한 책은 드물다. 현대에 와서도 찾기 힘든 책을 그 당시 19세기 초에 썼다면 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업무를 시작한 다음날 해야할 일로 정약용이 제시한 일이 고을 지도 그리기였다.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방법론을 제시했는지 알 수 있다.

생각건대 이 지도는 가장 필요한 것이다. 만약 본 현에 화공이 없으면 솜씨가 변변찮아도 괜찮으니 이웃 현에서 데려와야 한다. 반드시 노련한 향임과 아전, 군교 등이 관장하여 지도를 만들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땅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모두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쓸모가 없다. 반드시 먼저 경위선을 그어놓고 1칸을 10리로 하여 동쪽 100리 거리에 있으면 지도상에는 동쪽 10칸에 있게하고, 서쪽으로 10리 거리에 있으면 지도상에는 서쪽 1칸에 있게 그려야 하며, 현의 관아가 꼭 지도의 중앙에 있게 할 필요는 없다.(41쪽)

개인윤리와 정치윤리의 통합

목민심서에서는 개인윤리와 정치윤리가 통합하여 다루고 있다. 유교의 전통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 부분이 서양사상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윤리와 정치 윤리를 구별하고 심지어 반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정약용은 개인윤리와 정치윤리를 구별하지만 둘 사이를 반대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발전된 차원으로 인식했다. 현재에 와서도 정치인의 개인 윤리성을 살펴보는 게 우리의 문화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느껴지는 개인윤리와 정치윤리의 통합을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통합이란 측면에서 다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부도덕한 사람이 정의로운 정치를 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더 비합리적이지 않을까.

몸을 닦은 후에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고을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인들 다스릴 수 있겠는가? 집안을 잘 다스리는 데는 몇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데리고 가는 사람의 수는 반드시 법대로 해야 하고, 둘째 치장은 반드시 검소해야 하고, 셋째 음식은 반드시 절약해야 하고, 넷째 규문(閨門)은 반드시 근엄해야 하고, 다섯째 청탁은 반드시 끊어야 하고, 여섯째 물건을 사들이는 데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조목에 법도를 세우지 못하면 수령으로서의 정사를 가히 알 만하다.(65-66쪽)

이론과 실천의 통일

정약용은 학문과 실천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아래 김현성에 대한 글을 통해서 관료들이 실제 실천은 하지 않고 학문에만 힘쓰는 것을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나 읆조리고 바둑이나 두면서 정사를 아전들에게 맡겨두는 것은 큰 잘못이다.

김현성이 여러 번 주군(州郡)을 맡아 다스렸는데, 손을 씻은 듯 깨끗하게 직책에 봉사하여 청렴한 소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실무에는 익숙하지 못했고 성품이 심히 소탈하고 너그러워 매질하는 것을 일삼지 않았으며, 담담하게 동헌에 앉아 종일 시를 읊조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김현성이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지만 온 고을이 원망하여 탄식하고, 티끌만한 것도 사사로이 범하지 않되 관청 창고는 바닥이 났다”고 하여, 이 말이 한 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53쪽)

이렇듯 학문을 통해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고 현대의 비판적 지식인’상과 부합되는 면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질서 개혁 추구

정약용이 강조한 것은 기존 질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사회 질서의 개혁이었다. 공맹사상을 가지고 이야기했다고 이를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복고 사상을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전거로서, 다른 예를 찾기 힘드니 요순시대를 삼았던 것이다.

읽은 책 : 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창비, 2005.

2007/04/08 15:14 http://blog.hani.co.kr/noriteo/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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