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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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적이면서 호기로운 제목이었다. 제목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제목부터 이미 멱살잡고 한판 붙으면서 시작하는 책. 지금까지 어느 누가 동양철학과 맞짱을 나란히 둘 생각을 했을까? 동양철학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연상되곤 하는 단어가 유교, 불교, 공자, 맹자, 예, 도처럼 다소 고분고분하면서도 조용한 어감의 단어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런 이미지가 오해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제목부터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에서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를 제시해 보였다.

 

  이 책의 특징으로는, 서양의 사상가 위주로 철학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던 기존의 교양서들과 다르게 동양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시대는 필요에 따라 고대에서부터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면 동양의 사상가와 서양의 사상가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도 한다. 동서양의 철학을 각각 나누어서 배우고 이후에 대학 교양과목에서 리차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를 교재로 택해서 배워온 나에게 이 책은 철저하게 동양의, 동양에 의한, 동양을 위한 철학 교양서로 다가왔다. 비록 지금 세계가 서구화되고고 세상의 주류를 차지하는 세력이 서양으로 꼽힌다고 해도 분명히 비주류는 존재하며 비주류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힘의 논리에서 다소 억눌려 있어서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이지 오히려 어보면 금광일 수도 있다. 동양 철학의 매력이자 강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동양에 대한 편견을 파괴하듯이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동양철학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모험을 떠나 도전하고 독립이라 할 수 있는 주제로 묶인 철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창조적인 주제로 묶은 뒤 선언하고 이제 미래를 향한 기획가 꿈을 담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왜 이거만 사진이 작아졌는지 미스터리)

 

  생각해 보면 내가 수능을 볼 때 선택해서 열심히 공부하던 윤리 과목에서도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서양 철학이었다. 동양에 살고 있는 내가 정작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깊게게 배우지 못한 것이다. 주류인 서양 철학을 배우느라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마저도 내가 동양 철학 중에서 주류만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득이하게 주류 비주류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것이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지 않던 나는 이 책에서 "양자"라는 사상가를 처음 접했고, "묵자"와 "양자"가 당시에 사상적으로 양대산맥을 이루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묵자"가 단순히 사상을 이론적으로 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용병 집단을 결성해서 강대국의 침략으로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를 해결해주는 천군(하늘이 내려준 군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교과서에서는 알려주지 않던 얌전한 동양의 이면의 모습을 이 책에서 접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있으면서도 동양에 이미 스파르타쿠스보다 130년 이전에 비슷한 행적을 걸어간 "진승"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 또한 처음으로 알았다. 단순히 흥미로운 일화를 전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에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내재적인 결함을 묻고 이를 스파르타쿠스와 연관지을 수 있는 저자의 안목에 좋은 평가를 주고싶다.

 

  맹자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그의 사상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은 점이 많아서 놀랐다. 책에 나오는 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맹자는 실제로 지극히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있는 사람"은 물질의 풍요를 누려보았기에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있는 사람"은 더 나은 물질을 가질 수만 있다면 예의의 가치를 돌보기를 소홀히 할 수 있다. 반면 "없는 사람"은 멸시와 조롱에 익숙하리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물질인 밥보다 자존심을 더 내세울 수 있다. 밥은 굶으면 그만이지만 자존심은 무너지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으며 저런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던 그의 사상에 놀라던 나인데 이미 동양에서 몇십 세기 이전에 존재하던 사상이라니, 동양 철학의 깊이와 위대함을 다시 한번 체감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서양에서 나온 사상도 누가 먼저다를 떠나서 동양에 존재했던 것이리라.

 

  이외에도 동양의 뜻밖의 여러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동양 철학 내에서도 주류였던 공자 사상은 당대 제후 등 권력을 가진 세력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칭송받게 된 배경이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겸애를 주장하던 묵자의 주장은 그 이해관계와 맞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묵살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결과적으로는 국가 통치에 도움이 되는 유교나 불교 사상을 위주로 기록되어 내려왔다는 점도 이 책을 읽어보면서 다시금 체감했다. 이토록 다양한 사상과 일화들이 존재했다니.. 동양 철학 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싸움이 존재하며 그중에서도 비주류에 주목한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 서양 철학에서 비주류로 내려오는 철학 쪽을 배운 적이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로부터 시작해서 이어내려오는 상상력에 대한 이론인데, 이런 내용을 배웠으면서 왜 동양 철학에 있어서 비주류는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약간은 후회도 된다. 어디에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주류가 부각됐을 뿐이지 비주류도 분명히 존재 의의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주류로 내려오는 사상이 얌전하고 수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기에 전부가 그렇다고 오해받기 쉽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동양에도 서양의 과격한 사상 못지않게 다양한 사상이 존재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동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된 경우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 <나홀로 집에>나 현대 서구 사상가를 예시로 들면서 읽기 쉽게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원래 한자를 어려워하는 나라서 한자가 나오면 피하기 바빴는데 이 책에서는 그래서 더 수월하게 읽어내려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또한 각각의 편이 네이버에 연재됐던 내용이라 그런지 책의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그냥 아무 편이나 열고 읽기 시작해도 부담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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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상징, 인간
유요한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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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간결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세 단어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제목 자체에서 이미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는 다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곧 이 책과 함께하는 여정이었다.


가장 아래 부분인 근본에 인간이 있다. 만물의 영장 같은 흔하고도 오만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결국 근본적으로 인간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기를 인간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특성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있기에 그를 극복하려하고, 실제로 극복해내는 존재(시대에 따라 신선, 초인, 초능력자, 영웅 등으로 나타난다)를 상정하고 그들을 닮으려 하는 존재. 그 과정에서 상징(이 책에서는 단순히 종교적인 상징 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물의 원형이라는 내용의 상징까지를 포괄해서 상징이라고 부르고 있다)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보다 더 종교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런 과정을 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 이렇게 요약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종교,
상징,
인간
으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상호작용이 있는듯하다.
자신의 시대나 위치를 막론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위를 지향하니까.
인간이 근본이지만 그런 인간에게는 속된 면과 성스러운 면이 공존한다.
상징도 문화권이나 시대에 따라서 똑같은 대상에 대한 상징이더라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런 상징을 통해서 좀더 종교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
그것이 곧 삶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비록 과학이 만물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과학만능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우리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종교적인 면모는 나타나고 있다.
그런 부분은 이 책에서도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내용을 적절하게  인용해서 잘 말해주고 있다.


 

 

인용 이야기가 나와서 좀 더 살펴보자면, 이 책에서는 전반적으로 인용이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특히, 문학작품인 <칼의 노래>를 통해서 종교라는 존재에 대해 진입장벽이 높지 않되 너무 느슨하게 풀어지지도 않게 잘 풀어내간 점이 매력적이었다. 종교학 관련 인문서에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이 함께하는 구성이라니, 그것도 이름조차 어려운 외국 작가의 작품이 아닌 친숙한 작품이라 더욱 편안하게 와닿았다.

또한 단순히 우리 문학작품을 책에 인용하는 것뿐만아니라

제주도나 남도 지방의 전통 풍습(무당, 굿 등)을 군데군데 잘 배치해서 

기존에 보던 종교학 관련 서적에서 볼 수 없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종교학에 대해 먼저 연구가 시작된 서양의 풍습 등을 이야기 한 뒤 자연스럽게 우리의 풍습도 가미한다. 기존의 서양 서적을 번역한 데서 오던 어딘지 모를 어색함이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던 이유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풍습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아메리카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개되는 이야기는 자칫 서양의 그것만 다루어서 지루하게 느껴졌던 기존의 책들에 도전장을 던지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이야기 자체도 차분한 설명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참 괜찮다.

특히 민감해질 수 있는 페미니즘 관련 주제에 있어서도 현명하게 논란의 불씨를 비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 대중도 마음 편히 읽도록 추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것은 나도 한번 더 정독하고나서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정말 괜찮다.(나는 별로면 솔직하게 별로라고 말한다)

간만에 좋은 책을 읽어서 의미있는 날이었다.

군데군데 의미깊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시금 읽어보면서 이것저것 메모하고 좀더 친해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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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이
정승구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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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번 집어서 끝까지 단번에 읽는 일은 내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간만에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재미있다!

  첫 장면부터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는 수완, 시간 순서상 지그재그로 촘촘하게 엮이되 혼란감은 줄이고 흡입력을 높여주는 구성, 약간 한쪽으로 특징이 치우친 점은 있지만 그래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등장인물들. 이 모든 것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얼핏 보면 각각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 내용을 하나로 묶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진짜 영화같다... 였다. 분명히 글씨로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한편의 영화같이 다가왔다. 영화감독이 쓰는 소설이란 이런 것일까.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 또한 없어보이는 주인공 나.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가 딱히 없어보이고 늘 공허함에 시달리는 민주. 그리고 말보다 더 소중한 능력을 지닌 아이 왕눈이.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는 이 세명이 어우러져 마법같이 그려내는 이야기 한 편. 첫문장부터 생각하게끔 만든다.

  "삶은 여러 형태로 우리를 홀리지만, 죽음은 단 하나의 얼굴로 다가온다. 죽을 떄가 되면 인생의 주요 순간들이 빠른 몽타주로 보인다고 들었다. (중략) 존재가 유한하다고 해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내 삶이 의미 있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중략) 나는 아직 살고 싶다."

  결국 위의 문장에서 시작된 작품이 아래의 문장으로 변하는 여정이다. 

  "인생에서 자신이 태어난 생일보다 중요한 날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를 알게 되는 날이다.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었다. 때가 되면 '의미'는 알아서 나를 찾아왔다. (중략)"

  이 두 문장 사이에서 주인공에게는 소중한 존재도 생기고 삶의 의미도 와닿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결코 평탄치만은 않은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그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봐야지만 이해가 될 것이다. 내 삶은 결코 내가 조종할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의 근원을, 그리고 거기에 얽힌 사연을 알고싶어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왜 갇혀있던지도 모르고 살아오던 존재가 내가 누구인지 알게되는 과정. 어찌보면 한편의 막장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는 요약이지만 결코 막장은 아니다.오히려 진지하다. 탄탄한 배경지식과 한시도 손을 뗄수없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매력이 잘 어우러져서 한편의 진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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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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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시리즈 강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왔다시간관계상 직접 참여하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강연이 책으로 정리되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그리고 드디어 읽었다.

  이 책은 크게 1부 나는 누구인가인간의 본질에 답하다와 2부 어떻게 살 것인가삶의 태도가 곧 당신이다로 구성되어 있다각각의 부가 4,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 구성에 있다장마다 서로 다른 저자가정확히는 특정 분야의 저명한 인물이 저자로 나와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펼친다다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 분야가 있다그런데도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이다요약하자면 내가 누구인지 되돌아보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자.“ 정도일 것이다이렇게 적어놓으면 식상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자기 분야의 지식과살면서 겪은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을 적당히 버무려서 일반 대중이 보기에도 재미있으면서 어렵지 않고 친숙하게 느끼도록 배려한다최대한 배려를 했음에도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싶은 용어나 인물 등의 부분은 각주를 달아놓는 친절함이 돋보인다그렇기에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다고 자부하는 고등학생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줄 수 있을 만큼 그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책 내용 중에서도 나오는 부분이다인문학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서 너무 현학적이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책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좀 더 되짚어보자면우선 1장의 강신주 저자가 자본주의에 대해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한 마디로 요약하자면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런 인간 중심적인 사회가 되도록 사랑으로 극복하자는 이야기.

  다음으로 2장에서 고미숙 저자가 현대인의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짐을 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이 대목에 공감하지 않을 현대인은 거의 없을 거라 짐작된다읽으면서 한병철의 <피로사회>, <투명사회>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5장에 나온 슬라보예 지젝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그의 시각은 늘 새롭기 그지없다강남스타일을 그의 시선으로 해석해낸 부분은 이 책의 별미이다진정한 지식인에 대한 그의 견해도 참 좋았다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접근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상으로 어떻게 더 적절한 정리를 할 수 있을까.

  6장에서 최진석 저자가 동양 고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적용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친 부분도 충분히 책 한 권으로 따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용석 저자가 7장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다일단 정용석 저자는 생물 분야의 전문가라는 점이 특이하다간학문적 접근을 접할 수 있던 기회는 드물게 해외 도서를 통해서나 있었는데국내 저서인 이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책 한 권 이상의 의미가 있다과학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면서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상당히 신선하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강연을 직접 듣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내용이었다강연의 내용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지만 강연장의 그 열기는 느낄 수 없을 터이다그 점은 다소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7번에 걸쳐서 이루어진 강연을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잘 제시해 놓았다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내용이 비슷비슷하지는 않고 저마다의 접근법이 존재해서 지루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구성이 참 좋았다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전체를 읽고나서 마무리를 하거나 장별로 요약해주는 짤막한 글이 뒤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법하다서문은 있는데 뒤에는 이에 대응될 만한 구성이 되어있지 않아서 이 점은 보완하면 어떨까 싶다그런 점을 빼고도 이미 100점 만점에 99(인간적인 점수)이기에 불만은 없지만 이 책이 지나가는 여느 책과 다

르게 느껴지는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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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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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한번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자리에서 흩어져 사라진다전화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 앞에 위치해 있어야만 했다화자와 청자그리고 지금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이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들을 수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전화의 발명으로 인해 여기라는 제약이 사라졌다그 때 당시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랬기에 웬만한 신기한 일은 겪어봤을 지위에 있는 브라질 황제가 깜짝 놀라며 큰 상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이어져 녹음 기술의 발명으로 이제 지금이라는 제약도 사라졌다이후 기술의 발전은 점차 가속도가 붙는다. 5년 전에는 지금 기술의 발전상을 제대로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그럼 대화의 필수 요소 중에서 극복되지 않은 것이 이제 화자와 청자가 남았다즉 나와 당신이 남은 것이다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사라질 수 없다내가 사라지면 나의 시점으로 보는 세상은 끝이 나기에그렇다면 기술로 극복될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바로 당신이다.

  이 책에서는 당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일종의 기술로 극복된 대화 사례가 나온다이런 대화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보이지만 사람이 달에 착륙해 발자국을 남기고 인공적인 장기를 몸에 이식하기도 하는 지금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TV를 핸드폰으로 보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지금 상상 못하는 것이 나중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그런 점을 이 작품은 잘 파고들었다이 책에 나오는 전화통화는 상대방이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기술이라는 요소로 어찌어찌 극복하여 일종의 기적처럼 제시되고 있다.

 

기적을 믿으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안 믿는 사람머리로는 믿을 수 없지만 가슴으로는 믿는조금은 갈팡질팡하는 사람온전히 다 믿는 사람나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세 번째 부류라고 답할 수 있다이 책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고루 나온다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천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기적을 믿다 못해 추종하는 사람이를 믿지는 않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한마디로 장사를 하려고 오는 장사꾼이를 자신의 종교적인 업적을 높일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종교인특종을 잡으려고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언론들끊임없이 이성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믿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 사건을 둘러싸고 이 세상의 축소판을 보여주듯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며 이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천국에서 전화가 온 일이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행복하기만 했다면 점차 그에 대한 과한 관심으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기적은 번지고 번져 곳곳에서 추종자가 나타나기에 이르고 일종의 신흥 종교처럼 변해가기도 한다여기에 개입하는 사람 중 기적을 믿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은 소중한 누군가를 이미 천국으로 보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이런 사람들의 특징으로는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 자주 오래 생각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젤이 살아있을 때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이제 그는 과거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이 문장의 주인공인 설리처럼그런 사건의 중심으로 설리라는마찬가지로 소중한 아내를 잃은 인물이 개입하게 된다그러면서 점차 아름답지만은 않은기적의 또 다른 모습도 드러나게 되고 문제는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천국에서 보내오는 자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는 대부분 한결같다끝은 끝이 아니며지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우리가 집착하게 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그리고 다시금 행복하게 살자고또한 모두가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낼 수 있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그들이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보내오더라도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결국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현재에 충실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의미이고 나아가서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된다는 아주 긍정적인 메시지를 앞에 두고이 책의 인물들은 그 수단인 휴대폰에 집착한다소위 말하는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핸드폰 모델이 몇 천 대씩 팔리는가 하면그 통화가 처음 이루어진 장소를 마치 성지처럼 둘러싸고 모여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달을 보라고 했는데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다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러하다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고 미처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앞서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기적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이자 참된 의미를 쫓기보다는 자기도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자 수단에 불과한 기계에 매달린다중요한건 이미 다 전해진 뒤인데도이런 복잡한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바뀌게 되는 인물도 나타나고 결국 우리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한다는 사실을페이지를 넘길수록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아주 이상적인 환경인 동화나라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오히려 현실적인 여러 요소들이 개입돼서 더욱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오히려 기적이라는 요소의 특성상 동화처럼 이상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을 법인데작가는 그런 쉽고 단순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그렇기에 더욱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누구나 기적을 바라는 때가 있다나도 그랬고 한번쯤은 내게 기적이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지만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내게 주어진 오늘이 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그리고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수도 있다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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