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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말은 한번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자리에서 흩어져 사라진다. 전화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 앞에 위치해 있어야만 했다. 화자와 청자. 그리고 지금.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들을 수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전화의 발명으로 인해 여기라는 제약이 사라졌다. 그 때 당시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랬기에 웬만한 신기한 일은 겪어봤을 지위에 있는 브라질 황제가 깜짝 놀라며 큰 상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이어져 녹음 기술의 발명으로 이제 지금이라는 제약도 사라졌다. 이후 기술의 발전은 점차 가속도가 붙는다. 5년 전에는 지금 기술의 발전상을 제대로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자, 그럼 대화의 필수 요소 중에서 극복되지 않은 것이 이제 화자와 청자가 남았다. 즉 나와 당신이 남은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사라질 수 없다. 내가 사라지면 나의 시점으로 보는 세상은 끝이 나기에. 그렇다면 기술로 극복될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 바로 당신이다.
이 책에서는 당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기술로 극복된 대화 사례가 나온다. 이런 대화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보이지만 사람이 달에 착륙해 발자국을 남기고 인공적인 장기를 몸에 이식하기도 하는 지금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TV를 핸드폰으로 보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 상상 못하는 것이 나중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점을 이 작품은 잘 파고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전화통화는 상대방이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기술이라는 요소로 어찌어찌 극복하여 일종의 기적처럼 제시되고 있다.
기적을 믿으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안 믿는 사람. 머리로는 믿을 수 없지만 가슴으로는 믿는, 조금은 갈팡질팡하는 사람. 온전히 다 믿는 사람. 나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세 번째 부류라고 답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고루 나온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천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기적을 믿다 못해 추종하는 사람. 이를 믿지는 않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한마디로 장사를 하려고 오는 장사꾼. 이를 자신의 종교적인 업적을 높일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종교인. 특종을 잡으려고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언론들.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믿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 사건을 둘러싸고 이 세상의 축소판을 보여주듯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며 이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천국에서 전화가 온 일이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행복하기만 했다면 점차 그에 대한 과한 관심으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적은 번지고 번져 곳곳에서 추종자가 나타나기에 이르고 일종의 신흥 종교처럼 변해가기도 한다. 여기에 개입하는 사람 중 기적을 믿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은 소중한 누군가를 이미 천국으로 보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으로는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 자주 오래 생각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젤이 살아있을 때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그는 과거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이 문장의 주인공인 설리처럼. 그런 사건의 중심으로 설리라는, 마찬가지로 소중한 아내를 잃은 인물이 개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아름답지만은 않은, 기적의 또 다른 모습도 드러나게 되고 문제는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천국에서 보내오는 자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는 대부분 한결같다. 끝은 끝이 아니며, 지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우리가 집착하게 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행복하게 살자고, 또한 모두가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낼 수 있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보내오더라도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결국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현재에 충실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의미이고 나아가서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된다는 아주 긍정적인 메시지를 앞에 두고, 이 책의 인물들은 그 수단인 휴대폰에 집착한다. 소위 말하는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핸드폰 모델이 몇 천 대씩 팔리는가 하면, 그 통화가 처음 이루어진 장소를 마치 성지처럼 둘러싸고 모여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 달을 보라고 했는데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러하다.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고 미처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앞서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기적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이자 참된 의미를 쫓기보다는 자기도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자 수단에 불과한 기계에 매달린다. 중요한건 이미 다 전해진 뒤인데도. 이런 복잡한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바뀌게 되는 인물도 나타나고 결국 우리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아주 이상적인 환경인 동화나라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오히려 현실적인 여러 요소들이 개입돼서 더욱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기적이라는 요소의 특성상 동화처럼 이상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을 법인데, 작가는 그런 쉽고 단순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누구나 기적을 바라는 때가 있다. 나도 그랬고 한번쯤은 내게 기적이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게 주어진 오늘이 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리고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수도 있다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