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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깊이의 상실
작가 이름만 보고 구매하는 책들이 있는데 줄리언 반스의 책이 그렇다. 줄리언 반스는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로 《플로베르의 앵무새(Flaubert's Parrot)》(1984),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 1/2 Chapters)》(1989), 《레몬 테이블(The Lemon Table)》(2004),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The Sense of Ending)》(2011) 등의 장·단편소설을 비롯해 수필집, 회고록을 여러 권 펴냈다. 몇 년 전에 출간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Levels of Life)》(다산책방, 2014)는 소설과 중수필 형식을 오간다. 1부와 2부에는 항공사진가인 펠릭스 투르나숑의 생애와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허구적 사랑 이야기를, 3부에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초반에 뜬금없이 느껴지던 19세기 후반 실존 인물들과 열기구 이야기는 책 후반부로 접어들어서야 어우러진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이 낫겠는가?" (3부 「깊이의 상실」에서)
줄리언 반스는 사별의 슬픔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고통에 비유한다. 2008년 30년을 함께 한 아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37일 만에 죽었다. 그리고 5년 후,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방식으로(글로) 아내를 애도한다. 아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그저 32살에 아내를 만났고, 62살에 부인과 사별했다고만 적었다. 부인의 이름은 헌사에 딱 한 번 등장한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직접 쓰는 대신 남겨진 슬픔, 부인이 죽은 후 자신이 느낀 것에 관해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며,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크리스마스, 당신의 생일, 아내의 생일, 첫 만남의 기념일, 결혼기념일이 그렇다. 그리고 그런 날들 위로 새로운 기념일들이 뒤덮인다. 공포가 시작된 날, 아내가 처음으로 쓰러진 날, 아내가 병원에 간 날, 아내가 퇴원한 날, 아내가 죽은 날, 아내를 묻은날." (3부 「깊이의 상실」에서)
어린아이가 가상의 친구와 이야기하듯 부인에게 이야기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그녀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열쇠고리엔 같은 열쇠가 두개 꽂혀 있다. 한때 아내의 것이었던 걸 보며 기이한 지속성을 느끼고, 둘이 하던 걸 혼자 하면서 아내의 부재에 가슴이 아린다.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아내를 또다시 죽이는 일이기에 그만둔다. 주변 사람들은 개를 키워 보라고 권하지만, 개가 아내를 대처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 또한 덜하다는 말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깊어지듯, 슬픔 또한 그럴 수 있다고 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시간에 의해 치료되지 않는 슬픔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가지고 가야 할 슬픔이있다는 걸.
"예전에 신문의 부고를 읽을 때면 나는 쓸데없이 죽은 사람의 나이에 견주어 내 나이를 계산하고는 ‘몇 해 남았네, (혹은 벌써몇 해 지났네)’라고 생각하곤 했다. 요새는 부고를 읽으면 고인의 결혼생활이 몇 년이나 되는지 계산해보게 된다. 나보다 더 오래 결혼생활은 한 사람들이 부럽다." (3부 「깊이의 상실」에서)
사랑이란 참 묘해서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존재가 아닌 부재를 통해서도 애정이 느껴진다. 아내를 잃은 그의 슬픈은 깊고 깊어 애절하다. 그래도 작가는 말한다.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것보다, 사랑하고 그 사람을 잃는 아픔까지 겪어야 하더라도 후자가 낫다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슬픔이 내재하여 그 슬픔은 언젠가 찾아온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라 혼자 중얼거렸다. "다들 건강하길. 나보다 오래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