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정끝별 해설, 권신아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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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박완서 작가의 말이다. 나 또한 이런 이유로 시를 읽는다. 오늘 나는 위로받기 위해 시집을 펼쳤다. 장정일의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을 읊조린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 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 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사람들이 나지막이 노래 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을 흘렸지요  (장정일,「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전문)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 시처럼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 알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이 시집에 해설을 쓴 정끝별 시인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여성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우리의 시가 조금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른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41쪽)이라고 했다. 그래 시가 조금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지친 마음 시와 함께 시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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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13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완서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삶을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시를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시를 안 읽고 인문학으로 포장한 힐링 도서만 찾는 현상이 안타깝습니다.
 
한밤의 아이들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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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은 입담이 좋은 타고난 이야기꾼이 글로 쓴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람들을 생각들을 이 세상에 가져오고 또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을, 그리고 가능성의 한계들을 가져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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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르몽드 인문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엮음 / 휴먼큐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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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석학들의 글을 묶어 놓은 책이라 기대하고 구매했는데 엉성한 편집 탓에 별 두 개.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중간에 달린 출처나 주석도 그렇고 언제 쓰인 글인지, 어디서 발췌한 것인지 아니면 전문인지 알 수 없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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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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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MEDIA 2.0, 2008)은 이언 매큐언의 다른 소설 《속죄》(문학동네, 2003)나 《토요일》(문학동네, 2007)처럼 책 속에 깊이 빠져 읽지는 않았다. 턱걸이로 겨우 장편소설에 분류될 만큼 짧은 소설이었는데, 쉽게 몰입해 읽을 수 없었다. 매력을 못 느낀 소설 속 캐릭터 때문인가?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보호와 도덕성, 안락사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이 소설 속엔 한 여자(몰리)를 사랑한 네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작곡가 클라이브일간지 편집장 버넌영국 외무장관 가머니 그리고 몰리의 남편 출판 재벌 조지그리고 소설은 몰리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개인적으로 언론인 버넌과 정치인 가머니 사이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가머니와 몰리 둘 사이에서 찍은 가머니의 은밀한 사진이 몰리의 남편 조지를 통해 버넌에게 전해져 언론에 공개되는 과정과 가머니의 부인이 이 사진에 관해 언론을 통해 인터뷰하는 장면그리고 이 인터뷰 전과 후 급격하게 바뀌는 대중과 주변 언론의 반응에 대한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우리가 언론을 통해 얼마나 쉽게 좌지우지되는지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이를 또 얼마나 교묘하게 이용하는지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한국을 보면 정치사건보다 연예계 소식이 언제나 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고 그로 인해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이 연예인들의 연애사건이나 개인사 기사에 의해 가려지는 일이 흔하니까 말이다


작곡가 클라이브가 등산하는 중에 떠오른 교향곡 악상과 도움이 필요한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과 이 사건을 통해 클라이브와 버넌 사이에 오가는 논쟁도 인상 깊었다. 도덕성의 기준이라는 것타인의 도덕성을 개인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도덕성에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있다면 그 기준은없다면 도덕성은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의 판단에 맡겨두고 그 개별성을 인정해야 하는 건가소설 속에서 절친한 버넌과 클라이브 사이가 벌어진 것도둘을 파멸로 이끈 것도 각자 개인의 잣대로 상대의 도덕성을 평가하면서부터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를 안다는 것과 옳고 그르다 판단하는 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봤는지 되돌아보게 한다잘 안다는 것과 옳다 그르다 평가하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은 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이자 중요한 장소인 암스테르담은 국가와 개인의 자유와 도덕성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이건 괜찮고 저건 안된다는 법적 제재와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국가의 기준으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게 옮은 것인지 말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대마초, 안락사, 동성애가 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법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장소에 따라 합법인 게 불법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것에 절대성을 부여해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위험한 일이다. 소설의 결말은 조금 뜬금없었지만 이언 매큐언을 좋아한다면, 맨부커 수상작을 좋아한다면 읽어 볼 만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아는게 없다. 대체로 우리 모습은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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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이제니 지음 / 창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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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만두 진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밤의 공벌레` 전문)

공허한 마음을 먹는 거로 달래며 먹고 또 먹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 내게 넌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던 시간이 있었다. 2월 14일,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 달콤한 초콜릿 대신 따뜻한 시집, 책 한권 건네고 싶다. 온 힘을 다해 살아온 당신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당신에게,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며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이 시를 빌려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은 온 힘을 다해 살았다. 그러니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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