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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암스테르담》(MEDIA 2.0, 2008)은 이언 매큐언의 다른 소설 《속죄》(문학동네, 2003)나 《토요일》(문학동네, 2007)처럼 책 속에 깊이 빠져 읽지는 않았다. 턱걸이로 겨우 장편소설에 분류될 만큼 짧은 소설이었는데, 쉽게 몰입해 읽을 수 없었다. 매력을 못 느낀 소설 속 캐릭터 때문인가?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보호와 도덕성, 안락사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이 소설 속엔 한 여자(몰리)를 사랑한 네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작곡가 클라이브, 일간지 편집장 버넌, 영국 외무장관 가머니 그리고 몰리의 남편 출판 재벌 조지. 그리고 소설은 몰리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언론인 버넌과 정치인 가머니 사이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가머니와 몰리 둘 사이에서 찍은 가머니의 은밀한 사진이 몰리의 남편 조지를 통해 버넌에게 전해져 언론에 공개되는 과정과 가머니의 부인이 이 사진에 관해 언론을 통해 인터뷰하는 장면, 그리고 이 인터뷰 전과 후 급격하게 바뀌는 대중과 주변 언론의 반응에 대한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얼마나 쉽게 좌지우지되는지,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이를 또 얼마나 교묘하게 이용하는지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을 보면 정치사건보다 연예계 소식이 언제나 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고 그로 인해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이 연예인들의 연애사건이나 개인사 기사에 의해 가려지는 일이 흔하니까 말이다.
작곡가 클라이브가 등산하는 중에 떠오른 교향곡 악상과 도움이 필요한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과 이 사건을 통해 클라이브와 버넌 사이에 오가는 논쟁도 인상 깊었다. 도덕성의 기준이라는 것, 타인의 도덕성을 개인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도덕성에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 기준은? 없다면 도덕성은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의 판단에 맡겨두고 그 개별성을 인정해야 하는 건가? 소설 속에서 절친한 버넌과 클라이브 사이가 벌어진 것도, 둘을 파멸로 이끈 것도 각자 개인의 잣대로 상대의 도덕성을 평가하면서부터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를 안다는 것과 옳고 그르다 판단하는 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봤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잘 안다는 것과 옳다 그르다 평가하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은 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이자 중요한 장소인 암스테르담은 국가와 개인의 자유와 도덕성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이건 괜찮고 저건 안된다는 법적 제재와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국가의 기준으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게 옮은 것인지 말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대마초, 안락사, 동성애가 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법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장소에 따라 합법인 게 불법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것에 절대성을 부여해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위험한 일이다. 소설의 결말은 조금 뜬금없었지만 이언 매큐언을 좋아한다면, 맨부커 수상작을 좋아한다면 읽어 볼 만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아는게 없다. 대체로 우리 모습은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