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박완서 작가의 말이다. 나 또한 이런 이유로 시를 읽는다. 오늘 나는 위로받기 위해 시집을 펼쳤다. 장정일의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을 읊조린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 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 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사람들이 나지막이 노래 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을 흘렸지요 (장정일,「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전문)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 시처럼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 알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이 시집에 해설을 쓴 정끝별 시인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여성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우리의 시가 조금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른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41쪽)이라고 했다. 그래 시가 조금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지친 마음 시와 함께 시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