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열린책들 세계문학 26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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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위주로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좋았다. 혹은 그저 그랬다 뿐, 줄거리도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어찌 이럴 수 있는지, 허무하다. 읽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재밌었어", "별로였어"가 전부라니….

괴테에 빠져 지내던 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열린책들, 2009)을 비롯해 《이탈리아 기행 1, 2 》(민음사, 2004), 《파우스트》(문학동네, 2006), 《신곡》(열린책들, 2009)을 읽었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발췌하거나 독후감을 쓴 것도 아니어서 더하다. 발췌라도 할 걸, 짧게나마 감상을 남겨 둘 걸 후회가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휴~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읽은 책에 대해 남겨야지.

젊은 남자의 슬픈 짝사랑 이야기로만 기억에 남아 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면 그저 그렇다. 그런데도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읽으며 밑줄을 긋고 소리 내 읽은 건 괴테란 대문호의 필력과 내면을 꿰뚫어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사랑 이야기 안에 녹아낸 베르테르의 혼란과 열정, 변덕스러운 마음, 삶의 권태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그려낸 당시(1700년대 말) 독일 신분 계급 사이의 갈등, 인습에 대한 회의와 불안은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동경과 애정을 담아 자연을 예찬한 부분에선 나 또한 환희를 느꼈다. 

"강물은 소곤거리는 갈대 사이로 미끄러지듯 잔잔히 흐르며, 황혼의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하늘의 사랑스러운 구름을 비쳐 주었네. 숲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귓가를 울리고, 수많은 모기 떼가 마지막 붉은 햇살 속에서 대담하게 춤을 추고, 태양의 움찔거리는 최후의 눈길이 윙윙거리는 풍뎅이를 풀숲에서 해방시켰네. 사방에서 윙윙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내 주의를 땅바닥으로 잡아끌었고, 척박한 바위 틈새에서 힘겹게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이끼와 메마른 모래언덕 아래로 자라나는 덤불은 성스러운 생명이 자연의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을 알려 주었네.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뜨거운 가슴으로 품으며, 그 넘쳐흐르는 풍성함 속에서 마치 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네." (「8월 18일」 편지에서)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는 가슴 아프지만, 그가 사랑한 로테나 알레르트(로테의 남편)의 처지에서는 베르테르의 사랑이 일방적이고, 이기적으로 여겨졌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베르테르가 죽은 후,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베르테르의 자살 소식에 로테는 실신하고 알베르트는 로테를 돌보느라 베르테르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이게 끝일 수는 없다. 

로테에게 베르테르는 떼어버리고 싶은 스토커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녀가 흥미롭게 여기는 것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로테가 자신과 알베르트의 행복을 위해 죽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며 자살한 베르테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베르테르는 알고 있었다. 로테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움으로 눈물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걸.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아름다운 여름날 저녁에 산에 올라가면, 내가 그 골짜기를 얼마나 즐겨 올랐었는지 기억해 주시오.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 풀이 석양의 햇살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면, 교회 묘지의 내 무덤을 바라봐 주시오.” 라며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난 이 요청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익숙하게 일상을 함께 나누던 소중한 사람이 그것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란 이유로 자살했는데 그가 좋아한 일을 생각하며 그의 무덤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다. 로테는 알베르트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베르테르에게 총을 빌려준 남편을, 그의 자살을 막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을까? 오지랖 넓은 거 알지만 남겨진 로테와 알베르트, 베르테르의 어머니와 절친한 벗 벨헬름을 비롯해 베르테를 사랑한 남겨진 사람들이 걱정된다. 

내 잣대로 베르테르의 행동이 현명했다, 어리석었다 평가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 당사자의 심정이 어떨지, 헤아려 보지 않으면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없고 그렇다면 그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사랑해본 적이 없는 난 베르테르의 심정이 어떨지 모른다. 하지만 갖가지 일들에 마음이 짓눌려 희망도 기쁨도 없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엔 마음 상하고 우울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숨 막히는 압박감에 고통스러웠다. 그러기에 베르테르가 말한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고 “저런 어리석은 바보! 참고 기다렸더라면 시간이 해결해 주었을 텐데. 차츰 절망감도 가라앉고 위로해 줄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 텐데”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을 선택하며 '사랑하는 로테와 알베르트를 위해서'라고 한 베르테르의 말엔 의문이 든다.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고 싶었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로테를 위해서였을까? 로테가 평생 자신을 생각하길 바라며 선택한 건 아니었을까?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네. 인간은 원래 기쁨이나 슬픔이나 아픔을 어느 정도까지는 참아 낼 수 있지만, 도에 넘치는 경우에는 즉시 파멸에 이른다네. 그러니까 여기서 문제는 누군가가 강인하느냐 나약하느냐가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정도를 과연 참아 낼 수 있느냐는 것일세.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을 겁쟁이라 부르는 것이 무례한 일이듯,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 세상이 온통 깜깜하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으며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고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네! 나라는 존재를 느끼게 해주던 사람이 떠나 버렸기 때문일세. (...) 끔찍한 마음의 고통에 쫒겨 앞뒤 생각 없이, 사방을 뒤덮을 죽음 속에서 모든 고뇌를 종식시키려고 아래로 몸을 내던진다네. 이보게 알베르트, 이런 사연을 안은 사람들도 있다네! 그런데 이것이 질병의 경우가 아니라고 말할 텐가? 이리저리 뒤엉키고 서로 모순되는 힘들의 미로 속에서 천성이 벗어날 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네." (「8월 12일」 편지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이 변한다던 베르테르였지만 로테를 향한 마음은 요지부동이었고, 로테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녀만이 전부라고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악덕이고, 친구들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거로 행복을 더 해줘야 한다고 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아픔을 남기고 떠났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이런 사랑은 하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사랑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사랑이 좋다. 지루할지라도 말이다. 

 

서문에서 괴테는 이 책을 통해 베르테르와 같은 충동을 느끼는 이들이 그의 슬픔에서 마음을 위로를 받기 바란다고 했는데, 어디서, 어떤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와 같은 열정으로 괴로워한 (사랑의 열병으로 미쳐버린) 하인리히와 과부를 사랑한 머슴은 베르테르를 통해 위로를 받았을까? 베르테르는 이들을 보며 절망하고 아파했는데, 위로라니…. 모르겠다. 

다만, 베르테르처럼 “일찍 여행을 중단”한 사람들을 비난하기 전,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떠한 고통을 받았는지 깊이 헤아려 봐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기독교에서 자살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데 이들에게 베르테르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이렇듯 일찍 여행을 중단하였다고 화내지 마십시오. 세상 어디를 가나, 힘들게 일하고 보수를 받고 기뻐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저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로지 아버지 곁에서만 마음이 편합니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오로지 아버지 면전에서 누리렵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께서는 그런 아들을 물리치시겠습니까? (「11월 30일」 편지에서)

책을 덮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로테가 베르테르를 싫어했다면 어땠을까? 베르테르가 미저리처럼 로테를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아,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더 횡설수설하기 전에 인상 깊었던 구절로 마무리하는 수밖에. 

"우리가 원래 모든 것을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또 우리 자신을 모든 것에 비교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행복과 불행은 우리 스스로를 비교하는 대상에 달려 있네. 그리고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네. 우리의 상상력은 남보다 더 높이 올라서려는 본성의 부추김을 받고 문학의 비현실적인 영상들에 자극을 받아서, 우리 자신이 가장 못나 보이고 나머지 모든 존재가 우리보다 더 훌륭하고 완벽해 보이는 형상들을 만들어 낸다네. 이런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네. 우리는 종종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바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소유한 듯 보이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마저 전부 그 사람에게 주어 버리고서 그 사람은 참으로 안락하고 즐겁게 산다고 믿네. 그래서 행복한 사람 한 명이 완벽하게 만들어지는데, 그 사람은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낸 사람일 뿐이라네." (「10월 20일」 편지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산도 넘어야 하듯, 이런 일도 체념하고 순응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소. 물론 산이 없다면 길이 훨씬 더 편안하고 짧을 것이오. 그렇지만 산이 일단 가로막은 이상, 넘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12월 24일」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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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6-12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테의 의도와는 다르게 ˝베르테르 효과˝라고 자살쇄도; .... 세상은 참 기이해요.

게으른독서가 2015-06-16 23:35   좋아요 0 | URL
그로니까요. 저도 `베르테르의 열병`에 시달렸어요. 읽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게 첵인 것 같아요.

cyrus 2015-06-1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도 읽어보면 기분이 이상하게 답답해져요. 소설을 읽은 유럽 청년들이 베르테르를 모방한 이유를 알겠어요.

게으른독서가 2015-06-16 23:38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뭐라 딱히 정의 내릴 순 없지만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쉽게 다른 책으로 옮겨갈 수도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