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인형 속에 인형이 있는 마트료시카를 소재로 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 그림책입니다. 작가의 손에서 정성스레 빚어진 마트료시카 일곱 자매가 먼 나라, 어느 집 소녀의 손에 놓입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고요한 밤이 오자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이들만의 시간이 펼쳐집니다.
유은실 작가는 마트료시카 이야기를 오랫동안 생각하며 내 안의 아이를 줄곧 불러내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그리움과 고마움을 느끼며, 단단한 목각 인형에 깃든 여린 영혼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김지현 작가는 저마다의 향기로 가득하고 조금은 처연한 영혼의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차곡하고 보드라운 소묘, 엷게 스며든 물감 자국, 화가의 손길이 지나간 모든 곳에 지극한 정성이 느껴집니다. 다정한 글과 서정적인 그림이 들려주는 마트료시카 이야기는 우리 영혼에 깊은 잔향을 남깁니다.

품이 넓은 순으로 포개진 인형, 마트료시카 이야기는 탄생에서 시작합니다. 작가는 일곱의 몸을 빚고 하나하나 숨을 불어넣어 줍니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가 생겨납니다. 그들은 차례로 손아래를 품고 멀고 낯선 곳, 한 소녀가 사는 집에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때로는 한 몸이 되어, 때로는 각자 서서 서로의 존재를 느낍니다. 적막이 흐르는 밤이면 일곱 영혼들이 나와 달빛 아래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루는 첫째가, 하루는 둘째가, 또 하루는 여섯째가 이야기를 꺼내고 나머지 여섯이 가만히 귀를 기울일 겁니다. 가장 작은 일곱째를 잃어버린 어느 날, 가장 큰 첫째는 품 안의 흰 나비를 날려 보냅니다. 흰 나비는 콩알만 한 아이를 좇아갑니다. 달빛도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숲 한가운데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원래 있던 자리, 마트료시카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야기는 인형에게 생명이 깃든 첫 장부터 환상적으로 출발하여 곱게 만발한 꽃, 이국적인 풍경, 아늑한 시골집 그리고 영혼들의 숲을 비추며 신비로운 분위기로 채워집니다. 이야기 속 이야기로 빠져드는 서사의 몰입감과 공간이 주는 낭만적인 감성이 마음을 파고듭니다.

첫째부터 일곱째까지 고유한 문양을 각인한 마트료시카는 인생의 일곱 굽이를 닮아 있습니다. 일곱 세월의 결합이며 하나의 생을 비유합니다. 소녀의 방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할 때 각자가 새긴 인생의 순간들이 나란히 지나갑니다.
모두를 품는 첫째가 지닌 것은 ‘제일 너른 품과 가장 큰 꽃그늘, 깊은 주름 그리고 큰 손’. 풍성하게 꽃피운 만큼 고단했고 다난했던 만큼 너그러울 수 있는 노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직 첫째의 꽃다발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는 연륜에서 나온 성숙한 자아를 연상시킵니다. 그보다 젊은 둘째는 힘겨운 회한에 잠겨 있고, 중년의 셋째는 권태롭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넷째는 앞이 아득한 길을 홀로 걸어갑니다. 익숙한 품을 막 떠난 어엿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다섯째 소녀는 달콤한 품 안에서 무언가 골똘히, 여섯째 아이는 싱그러운 그늘 아래서 행복을 느끼고, 이제 막 꽃망울을 쥔 일곱째는 언니들을 따라 피어날 것입니다. 인생의 시간은 이 순서로 기억되고 역순으로 덮입니다.
멀고 낯선 곳에 다다랐던 마트료시카는 유년의 어느 시절을 방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깊은 기억이자 가장 중심인 일곱째, 내 안의 아이를 찾아서 말이지요. 그리고 잃어버린 어린 영혼을 찾은 순간, 마트료시카와 흰 나비, 마트료시카를 안고 잠든 소녀가 일치되는 듯합니다. 나의 생은 어느 굽이를 어떻게 지나고 있을까, 내가 잃은 작은 아이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잠든 영혼을 일깨워 포근한 성찰을 이끄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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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진짜 선택을 시작해야 한다.
마흔의 내 인생을 차갑게 비난하며 주자 앉을지.
아니면 뜨겁게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지.
그러니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마흔에
다 풀고 정점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50대가 되면 오히려 더 잘 풀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마흔은
완성되는 나이가 아니라
뭐든지 되다 마는 나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나이가
바로 마흔이다.


이제부터는 진짜 선택을 시작해야 한다.
마흔의 내 인생을 차갑게 비난하며 주자 앉을지.
아니면 뜨겁게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지.
그러니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마흔에
다 풀고 정점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50대가 되면 오히려 더 잘 풀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마흔은
완성되는 나이가 아니라
뭐든지 되다 마는 나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나이가
바로 마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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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냅시다
엄두!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도 늘 부족하다며 스스로 박한평가를 내린다.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도 위험하지만 나는우리는 특히 한국 사회의 여성들은 너무 겸손하다. 근거가있는데도 자신감이 너무 없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수가 나처럼 자신을 불신하고 완벽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며 주눅들어 있을지 모른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교육받고, 그런 취급을 받다 보니 그 마음이 당연한 거라고 믿게 되었다. 조금 욕심내도 좋을 법한데 양보하거나 지레 포기한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다며 뒤로 빠진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아직 부족하다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변화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벌인 일이라도 어지간하면 뒷수습을 할 수 있다. 분명 할만하니까 했을 거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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