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양장)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편역 / 미래타임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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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성경처럼, 세상 사람 절반 이상이 알고 있는 책이 있다면 바로 단테의 신곡이 아닐까.

이 유명한 신곡을 이제 다시 만나본다.

종교 서적이라는 장르가 주는 벽 때문인지 고전은 늘 그 깊이에 궁금함을 품어 왔음에도 선뜻 책을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책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그림이 있어 조금 더 접근이 친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책의 삽화의 이유처럼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그림으로 곁들여 그 이해를 보태는 일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무려 단테의 신곡이 그림과 함께라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대의 거장, 혹은 작자 미상의 화가가 그린 단테의 신곡의 장면 장면들.

이보다 더 좋은 삽화가 있을까?

1300년 창작된 신곡은 예술 혼을 가진 사람들을 오래도록 전율케 했고 깊이 사유하게 만들었다. 각자가 느낀 신곡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상상하고 해석하여 세상에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작품들.

귀스타브 도레, 아리 셰퍼, 윌리엄 블레이크, 니콜라 푸셍, 로마 카사 마시모, 존 로댐 스펜서 스탠홉, 아리 셰프, 카를 외스텔리,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크리스토발 로하스시, 가브리엘 페리에, 구글리엘모 지라르디, 쿠엔틴 메치스 등 열거하기에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가들의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책 여기저기 담겨 있어 읽는 내내 흥미와 재미를 가증 시켰다.

그중 귀스타브 도레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보였고 가브리엘 단테의 경우,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를 흠모하여 자신의 이름 앞에 단테를 붙였다는 주석이 있을 정도니 얼마나 책의 위상이 컸는지 어림 짐작되기도 했다.

그림 중에는 작가가 기재되지 않은 것 역시 꽤 많았는데 따로 명시된 바는 없지만 아마도 작자 미상의 것으로 생각된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기꺼이 지옥으로 떠났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신곡은 이태리의 시인이자 철학가인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차례로 순례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의 교화서'로도 불릴 만큼 그 깨달음이나 묘사에 있어 그리스도의 교리가 기본이 된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성금요일 저녁 무렵, 단테는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있게 된다.

문득 깨어나자 점박이 망토를 쓴 표범, 광폭한 사자, 굶주린 늑대의 괴수들을 마주하는 단테.

야수들과 함께 그의 스승인 시인 베르길리우스 또한 만나게 되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자상하고 배려심 가득한 스승의 도움으로 다양한 고비를 넘기고 인류만큼이나 다양한 영혼을 마주하며

여정 전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감동하고 반성하며 정화된다. 이윽고 그의 현생과 신곡 모두에 영향을 미친 베아트리체(천사로 묘사된다)와 궁극적인 하느님을 만나는 천국까지 이르게 되는 사후 세계로의 여행이다.

1옥부터 가장 깊은 지옥 9옥으로 이루어진 지옥은 마치 거대한 깔때기 모양으로 묘사되는데

이곳에 있는 영혼들은 '하느님을 분노케 하여 죽은 자들'이 온다고 한다.

제1옥은 림보(Limbo)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차용되던 '림보'가 신곡 지옥의 제1옥의 이름이었다니.

얼마나 많은 예술이 이 오랜 이야기의 영향을 받았는지 도입부터 새삼 느껴지기 시작했다.

림보는 고대 '튜튼족'의 말로 거품이나 경계처럼 무엇인가 주변에 붙여져 있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성자의 망령을 시작으로 지옥을 마주하는 단테.

단테의 이 기나긴 사후 세계로의 여정은 수호천사와도 같은 존재 베르길리우스의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안내되는데,

흡사 낯선 여행지의 큐레이터처럼 곳곳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책은 단테와 그가 주고받는 대화에서의 삶에서의 행실에 따라 늪, 숲, 구덩이 등 영혼들의 최후를 마주하며 느끼는 '인식'과 '통찰'이 있으며

지옥과 연옥, 천국으로의 여정 전체에서 만나는 수많은 망자들에게 단테가 그때그때 질문을 건넨다.

그들은 영혼 이전의 삶의 형태, 죄악의 이유, 왜 '이곳'에 머물게 되었는지를 단테에게 설명해 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지옥의 1옥 림보. 평소 그 무늬만 알고 있었던 애욕의 사례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2옥 케르베로스를 지나

제9옥에 당도하기까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다종다양한 타락의 모습들, 재물을 탐닉했던 영혼, 인색함으로 젖은 혼, 향락 수도사, 부당한 성직자 등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만한 갖은 죄악이 등장한다. 또한 예수를 배반한 유다, 이단자, 우상을 섬긴 자,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 등 그리스도에서 죄에 해당되는 말 그대로 '신을 분노케 하는 이유'들의 표상이 지옥에 떨어진 이유였다.

이유만큼 형벌 또한 상상도 못할 것들이 많았는데 예수가 그랬듯 십자가를 지는 형벌, 작살에 찔리거나 마귀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뱀이 득실대는 구덩이에 빠져 목이 물리거나 몸의 다른 곳을 물어 뜯기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묘사도 있다.

글만으로도 잔혹하고 비참하지만 적절하게 수 놓아진 그림들 덕분에 상상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어 더 생생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신곡에서 가장 흥미로운 파트는 연옥이었다.

연옥은 가톨릭 교리에서 죽은 이의 영혼이 살아 있는 동안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라고 믿는 곳이다.

정죄산을 오르는 영혼들의 행렬. 가니메데스, 찬송하는 천사들. 사유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1300년에 성경이라는 소재만으로 이런 글이 창작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운 따름이었다.

여러 사연 중에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보이는 '정중함', '공손함'을 기반으로 하는 느낌이 들었고 '생각'과 '말'과 '행실'에 대한 죄를 뉘우치는 고백의 표시가 있던 대목 등 책 속 단테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이 정화의 산을 오르며 벗어내는 것이 살며 우리가 무심코 행동했던(죄지은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자정 시간과도 같았다.

그리스도와 가톨릭 교리에서 보자면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도록 설계된 것으로 느껴졌고

그 죄를 스스로 지각하여 삶에서부터 영혼의 세계에서조차도 정화하고 정화하여 끝내는 천국으로 이르는 길로 가고자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상징적인 영혼과의 많은 대화들, 천사들과의 만남, 빛과 묘사, 레테의 강에서 속죄하는 사람들. 을 바라보며 '참회하는 자'는 그리 멀리 있지 않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엄중한 죄를 지었음에도 더 높은 정죄산(위로 갈수록 죄를 벗어낸다)에 있는 영혼들이 있었는데 이는 놀랍게도 타인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 힘입어 죄를 일부 면한다는 것이었다.

정작 대상은 모를지라도, 타인을 향한 순수한 기도가 그 영혼을 정화하는데 이롭게 작용한다는 점은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일. 요즘은 참으로 보기 드문 고운 일만 같다.

나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 내면의 마음을 수시로 돌아보게 되었던 연옥에서의 이야기가 지옥과 천국에 비해 길게 느껴지기도 했고 살아온 만큼 되돌아보아야 할 고뇌의 시간 역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단테가 사후 세계의 여정 속에서 느낀 세밀한 감정과 찰나에 스쳐가는 고뇌의 조각들은 인간을 대표하여 순례에 나선 것으로 읽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이입되어, 마치 내가 그 정죄의 산에 오르는 느낌도 들곤 했다. 연옥이 신곡의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옥과 천국의 묘사보다도 더 크고 중요하게만 느껴졌다.

신곡은 사람의 생에서 끝나지 않고 사후의 세계의 공간을 그려 냄으로써 죄와 벌, 그리고 삶의 묵은 때를 정화해 정죄의 의미,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순례하며 소위 '회계한다'라고 일컫는 영혼 정화 과정을 아주 세밀하고도 대담하게 잘 그려내었다.

여러 대문호의 신곡을 향한 찬사는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압축된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완역본과 성경마저 읽고픈 마음이 몽실몽실 생겨났다.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 내면의 정화는 너무나 중요한 의식과도 같이 생각된다.

평소 신곡이 어렵게 느껴져 접하지 못했던 그 누구라도 읽기에 좋겠지만 이미 신앙을 맘에 품은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 깊이가 짙어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책이다.

600여 쪽에 달하는 책 한 권을 정리하여 소개함에도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데 4배에 가까운 완역본의 분량을 압축하여 더 편안하고 쉽게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을 펴낸 저자와 그림을 함께 엮은 아이디어에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올해는 더 열심히 고전을 읽어 보고 싶다고 다시 생각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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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부터는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다 - 1만 명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후회하지 않는 50대를 사는 법
오츠카 히사시 지음, 유미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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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을 닮은 책. 


책 사이사이 편집 디자인 때문인지, 촉감이 부드러운 종이 때문인지. 


모양은 예쁘고 맛은 여운이 남았던. 


62년생 오츠카 히사시.


나이라는 레벨을 언제부터인가 민감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스물이 지난 지점일까. 30대를 모두 체감하기도 전에 다가온 40. 


그리고 어쩌면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가올 50대 인생 2막 역시 똑같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궁금증 한 스푼. 슬픔 두 스푼. 이런 지점에 서서, 새해의 도서를 고르던 차에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모국인의 중년의 Case는 참 많이도 듣고 봐왔지만


일본 분, 그러니까 다른 나라 중년의 인생 2막의 준비는 또 어떻게 다를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언제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어쩐지 작정하고 하지 않으면 영원히 미루어지는 느낌이다. 


'오십부터는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다'. 총 6장으로 나누어진 인생 체크리스트.라고 할까? 


책은 흡인력이 있어 참 빠르게 읽어졌다. 


그럼에도 며칠을 책의 내용을 곱씹을 수 있었고 여러 번 책을 다시 꺼내 2가지의 체크 리스트를 나에게 한번 적용해 써 보기도 했다. 


써본 2가지의 체크리스트는 이것이다. 


하나는 p61-62의 '자기분석을 위한 14가지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p240 - 241 '리얼하게 작성해 보는 자기소개서'다. 


2가지 모두, 꽤 정밀하게 자기 분석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질문들이라고 생각된다. 


종이를 꺼내 직접 작성해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고 또 많은 생각의 잔가지를 쳐 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히사시는 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삶의 부분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06장에서 말하는 인간관계에서도 가감 없는 관계 총점검이, 


05장에서 말하는 하루를 나누는 일정이나 주간 일정표 등에서도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얼마만큼의 비중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부족한 것에 집중하라 꼬집는다. (색칠을 해서라도!)


그리고 고독을 준비하는 마음, 젊은이들과의 끊임없는 소통 또한 중요함 등을 환기한다. 


소통 그 자체로의 중요함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 누구의 인생을 막론하고 '소통'은 인간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스킬이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드는 대목이다. 그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건강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책은 한 직장을 오래오래 다닌 남성, 회사원이라면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만끽할 수 있을 도서라고 생각되나 


여성 독자로서 100퍼 공감이 어렵기는 했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도 그 부분만큼은 2-3장의 분량으로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 자신의 불찰'이라고 말하지만 뭐 꼭 그렇지만은 않다. 


50대를 맞이한 여성의 사연이나 CASE를 일반화하여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다종다양한 것도 맞지만


성별을 떠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가 선사하는 체크 포인트는 여성인 내게도 충분히 돌아볼 것이 많았다고 생각되기에 불찰까지는.


조금 아쉬운 부분은 저자의 배경이 한국이 아니어서, 실제적으로 제공되는 국가적 차원의 도움 자료는 기관의 언급이 있었지만 


스스로가 찾아볼 항목임에도 선뜻 찾아지진 않는다. 비슷한 한국의 것을 주석 등으로 제공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번역의 부분에서...) 


조금은 세세한 자기 점검의 소중한 시간. 더불어 2022년 목표도 조금 세밀하게 써볼 수 있었다. 


만약 내게 인상 깊었던 이 2가지 체크리스트 외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보자면, 유서를 작성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젠 주변이 아닌 나에게로 삶의 시선을 돌려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생의 선택이 모두 환경과 부모, 혹은 가족이었던 삶에서 온전하게 나에게로 회귀할 시간.


어쩌면 그 기점이 50이 아닐까. 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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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 시대의 지성 찰스 핸디가 전하는 삶의 철학
찰스 핸디 지음, 강주헌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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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기에 참 좋은 양장본

읽다가 어느 글 고랑에 멈춰 서도 책장을 구기거나 갈피를 끼우지 않아도 되고 갈피를 대신할 심지가 있는 작은 배려,

책을 읽다가 어느 쪽으로 펼쳐도 한쪽으로 밀려 닫히지 않고 손가락 몇개의 힘으로도 잘 펼쳐지는 책.

이런 형태의 제본을 뭐라고 하던가. 내가 생각하는 읽기 좋은 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편지글은 참 오랜만이다.

찰스 핸디(Charles Handy).

여러 찬사가 있었지만 그중 'DB 트레 포드'라는 아마존 독자의 글이 생각난다.

'이 책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지혜"라고 할 수 있다'라고.

최고 경영 전문가이고 철학가이기 이전에 그의 한평생의 지혜를 사랑하는 가족, 손주들(손주 리오와 샘, 네퓨, 스칼렛)을 위해 엮은 것이다.

나는 찰스 핸디의 '지혜의 편지'라고 부르고 싶다.

총 21통의 편지는 각각 편지마다 그가 살아오며 쌓은 통찰과 진솔한 삶의 방향성, 삶의 정수라고 해야 할까.

생의 가치, 인생 전체에 깔려있는 소중함이라고 해야 할까.

살며 느낄 수 있는 아주 많은 부분들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다.

철학과, 신념, 그리고 누군가는 성공이라 부르는 스스로의 만족감. 그 어디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랑, 인류애, 자기애, 우정과 친구. 그리고 정서적 친밀감과 인간다움을 잃지 말라는 독려까지도. 사실 어떻게 그 많은 삶의 보이지 않는 보물을 다 기록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고 싶은 말과 전하고 싶은 참됨은 많았겠지만 아마도 그는 조카들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왜 '덕'을 놓지 않아야 하는가를 꼭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교양을 내포한 참된 삶. 그리고 스스로의 신념과 자기 성찰 안에서 또한 자유롭게 살아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를.

찰스 핸디는 영국 소설가들 등 다양한 인용을 아끼지 않는데, 읽어온 소설과 시 등의 소개는 이야기의 재미를 한층 더한다.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글 역시도 같은 이유에서 차용되었다.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그립다' 이 인용은 그저 신을 믿지 않는다는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철학가들의 뒤를 이유 없이 좇기보다는 스스로의 인생에 걸맞은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보태어지는 것이었다.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더 많이 상상하고 자라나는 호기심과 질문을 결코 멈추지 말라고 그는 말한다.

돈에 관한 철학이 엿보이는 열다섯째 편지 역시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리에 관한 소중함을 담은 열 여섯째 편지도.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묘하게 아픈 말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형식으로 서로에게서 사라질지 모르는 불 완전한 존재이기에.

그의 편지는 모두 따스한 어조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공감되었던 것은 아홉 번째 편지에서 산책 이야기였는데, 아침 식사 전의 산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의 사소함에서도 삶은 진동하는 것 같다.

그는 산책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라고 이름 지었다. 친구의 다른 말로는 '만유'라 표현했다고 한다.

산책은 보편적이지만 경이로웁고 항상 곁에 머무는 자연이 동반된다.

아름다운 일이다.

책에서 그의 산책이 스스로의 하루와 삶 자체를 아예 다시 정의하는 기준이 된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도 산책은 의미 있는 일이어서 꽤 공감되었다.

이유 없는 산책, 그 자체로도 늘 의미가 있었다.

내가 걷는 것은 정신을 맑게 유지해 준다는 점이 그와 같은 이유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건 서로 마주 보아 대립하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이어서

그 자체로 좋다.

많은 말과 철학이 편지 곳곳에 버터처럼 녹아 있었지만 재능과 덕스러움(virtouts)에 관한 중에 '진정한 만족감'에 대한 부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만족감은 너희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 이 좋은 것이 선순환되기를.

무엇보다 꿈을 이제 막 가져가는, 자유가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인지 아직 잘 정립이 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청소년들이 읽어낸다면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한 걸음 벗어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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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멘탈을 위한 감정 수업 -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고 예민해지는
이계정 지음 / 한밤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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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에도 상처받고 예민해지는'이라는 부제가 있는 유리 멘탈을 위한 감정 수업.

유리처럼 여리고 쉽게 깨질 것만 같은 요즘 우리 '멘탈'

멘탈이라는 말을 참 자주 쓴다.

멘탈이 깨진다는 건 충격을 받거나, 일시적으로 멍해지는 상태.랄까

최근 다수의 심리학, 인지 심리학, 정신 분석 관련 도서를 읽었다.

한 권씩 책을 읽어갈수록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분명 긍정적 도움은 되고 있었으나 평생 아프고 상처받은 가슴의 상흔이

며칠 만에 물로 씻은 듯 나을 수는 또 없었는지. 아직도 비슷한 심리 도서에 시선이 멎는다.

책 『저, 우울증입니다』 가 스스로의 우울을 진단하고 운 좋게 마음의 감기를 알아챘을 때 비뚤어지지 않은 시선으로 맘의 병을 '바로보기' 였다면. 또 다른 책 『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는 어른들의 지독한 슬픔, 꼬일 대로 꼬인 관계에서 오는 맘의 혼란을 각자가 살아온 기억과 환경을 토대로, 상처받은 어른 아이의 마음 그 그림자를 어린 시절의 적절한 사례에서 다각도로 분석하고 왜 그런지 인지하도록 돕는 이야기였다면, 『유리멘탈을 위한 감정 수업』은 비슷한 구조를 취하긴 하지만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감정'이라는 '멘탈의 형태' 그 자체에 다가간다.

누구나 한 번 이상 느껴온 것들.

책은 우리가 자주 만나는 감정들, 공허감, 수치심, 외로움, 슬픔, 우울, 서운함, 피로, 분노, 불안, 쓸쓸함, 죄책감, 무기력, 소외감, 질투심. 이렇게 14가지로 크게 나누고 각 단원에서 이 감각을 하나씩 본다.

물론 다른 심리 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사례를 차용하고 글의 후미에 코멘트를 남기는 형식의 글이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사례를 들어 누군가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나'라는 '시점'을 문제에서 꺼내어, 어떤 다른 사건에 빗대어 간접 체험을 하게 하고 이윽고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어림짐작하게 하여 이해를 돕는 대화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책이 그러하다.

누군가의 삶, 있음 직한 이야기, 시, 소설, 미지의 공상 창작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일기가 아닌 이상, 거의 모든 글은 일종의 '사례'일지도 모른다.

심리 도서는 특히나 만질 수 없지만 실재하는 감성에 관한 것을 다루기에 이런 방식을 많이 애용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도서들이 사례를 이용한다. 그래서일까? 비슷한 상황은 많지만 각자만의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해서,

방향 제시나 시원한 결론은 없어 뒤 주장이 빈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활자가 아닌 대화였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런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명하고 공감되어 더 빠른 긍정적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책에 있는 일부 대목처럼 '모든 감정에는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에.

어떤 감정이 반짝하고 나타났을 때 자연스러운 신호로 받아들이라 말한다.

스스로의 감정안에서 도피하지 말며 스스럼없이 결을 지키라고.

많은 책들이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듯 문제의 출발은 '인식'이고 '인지'이다.

소박한 것부터 조금씩 채워보자.

불안은 언젠가 지나간다.

흔들려도 괜찮다.

오직 나만을 위한 길. 나의 진심과 마주하다 등... 참 많이도 들어온 말 같고, 해준 것도 같은 말들.

어쩌면 책이 말하고 싶은 궁극적인 것은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나와 내 안의 나 사이를 먼저 좋게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나랑 내가 좀 더 돈독해지도록.

우리의 감정은 피할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니니,' 피하기보다는 즐겨보자'라고 말이다.

소외감을 다룬 편에서 '삶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관계에서 찾아온다.'라는 글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는 것도 관계지만 나와 내 마음에도 내밀한 관계가 있음을 한 번 더 인지할 수 있었다.

거듭되는 심리 도서 읽기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새로 먹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수용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자주 나쁜 감정을 느끼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분, 내 감정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들이 가볍게 읽기에 적합한 도서라고 생각된다.

책 속에 소개된 지그문트 바우만(폴란드의 사회학자)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역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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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예서의시 18
박천순 지음 / 예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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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겨울이 머뭇거리며 사라져 가는 1월

굳은 내 맘속에도 연초록의 씨앗 조심히 품는 계절이다.

어쩐지 그간 한 번도 시가 고파온 건 겨울은 아니었는데..

불현듯 짤막하고 농밀한 글의 뭉치가, 운율이, 시상이 궁금해져 선택하게 되었다.

시집은 아마도 처음 서평 하는 것 같다.

이번 책으로 알게 된 시인 박천순의 시집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는 제목에 쓰인 대표작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가 수록되어 있다.

시의 마음이 계절이라면 봄이 가진 설렘처럼 사랑과 희망의 암시가 녹아 있다.

가만히 다가가 살을 대야만 느껴지는 미세하고도 확실한 숨결.

그곳에 시인은 손을 얹는다.

다 전송되지 않은 마음들과 눈, 눈. 그 눈의 결정들이 담겼다.

2부에는 1부에서 심어둔 시의 씨앗들이 움튼다.

빗 망울들이 구름이 되기도 하고 후드득 떨어진다.

'사랑의 눈동자', 회담 숲의 편지, '허밍 버드', '노부부' 등에서 느껴지듯 사랑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긴 응시와 피어남. 마음껏 흐드러지는 느낌. 그 속에서 가을 같은 이별 또한 만난다.

3부에 접어들면 겨울은 마음 깊이 숨어지고 어딘가 새로운 봄이 먼저 온다. '발효되는 것'(시인의 표현)은 아픔으로 피어나는 미지의 영역 어디쯤이었을까? 아픔에 무뎌지는, 더뎌지는, 표현이었으리라.

시 '리셋'(p88)처럼, 조금씩 흐트러진 선들을 천천히 다듬어 나간다.

4부에는 안개가 사라져야만 떠오르는 말간 아침처럼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한다. 우연히 느껴지는 포착이 아닌 무수한 관찰에 의한 발견임이 표현에 스며있다.

5부에는 봄을 열망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봄은 아마도 사랑일까? 한 편의 시로 꽃피울 글과 형용사들일까. 나날이 새로워지는 삶의 단면일까.

새로운 캔버스를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버리는 것이 클수록 얻는 것 또 한 크다는 어느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많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 '면'을 준비하며 끝과 시작을 함께하는 암시.

빠른 호흡보다는 느긋하게 즐기고픈 글감이 바로 '시'이기에

시를 한 번에 몰아 읽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음미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긴 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어느 날은 여러 시가 후두둑 들어와 안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시 한 편으로도 책을 덮기도 했다.

해서, 시가 도착 한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이제야 서평을 남긴다.

시인의 시상은 여기저기에 콕콕 숨어 있었다.

흐드러지는 사랑이 피고 지고

삶의 기운과 여운이 어우러지는 듯

따로 또 같이.

그녀는 장마 속에도, 검은 아침과 비가 가득한 커피 잔 그 안에서도 일상의 세밀한 감각을 애타게 찾는다.

4부 '초록 시집'의 나비들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상을 향한 화자의 고찰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떤 한 편의 시가 짜릿하게 전이되지는 않았지만 부분 부분 섬세함이 잘 숨어 있어 보석을 발굴하곤 했다.

나는 시집에 담긴 시를 눈이 아닌, 소리 내 읊기도 했는데 이윽고 말을 걸어오는 시 때문에

질문과 생각이 빗발치는 사색의 순간은 분명 즐거움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시집 한 권. 누군가의 머리맡에 가볍게 놓아 주고 싶다.

시인의 글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어 조금 옮기며 서평을 줄인다.


‘마법의 달이

발밑에서 떠올라도

별이 이마를 때려도

머리를 열고

하늘을 보는 거야



모래알보다 많은 글씨가

지평선에

신기루로 떠오르면



한 줄 한 줄 읽으며

한평생 걸어가는 거야‘



- p84~ 85 ‘읽기 쓰기‘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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